위로 안 되는 위로의 말들. 12화
다른 나라들도 '때'에 대해 완전히 자유롭진 않다.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만 나이를 따지는 줄 아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나라만큼은 아니어도 나이를 따지긴 한다. 결혼하고 배우자가 될 사람을 찾는 과정이나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어느 정도 성공을 했어야 한다는 기준들은 그 유연함에 차이가 있을 뿐, 기준이 아예 없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기준에 대해서 유독 엄격한 편인 것은 사실이다. 그 기준 자체가 엄격한 것도 있겠지만, 그 기준이 적용되는 영역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많은 듯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경쟁적이어서 '때'를 놓지면 인생이 망가지거나 실패자, 패배자가 되는 것처럼 여길 때도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심지어 실패했거나 지친 사람들에게, 상처투성이가 되어 무너져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네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라고.
과연 그럴까? 타이밍을 놓지만 무조건 안 좋을까? 실패는 무조건 나쁜 것일까? 지치고 힘들어도 잠시 쉬어가고 지쳐있으면 안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니다'. 물론, 무엇이든지 빨리하는 게 좋은 건 사실이다. 결혼도 가능하면 빨리 하는 게 좋고, 취업도 빨리하는 게 좋다. 성공도 빨리 하는 게 나쁠 것은 없다. 하. 지. 만. 그 앞에는 큰 전제가 붙는다. [내가 그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고, 그게 나를 위해 최선이라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빨리, 빨리 해내는 것이 좋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결혼을 빨리 했는데 내가 나를 잘 몰랐고, 상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했다면 그 끝은 어떻게 될까? 빨리 간만큼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빨리 돌아오게 될 수도 있다. 취업이 빨리 되어서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다니다 보니 본인은 조직에 절대 맞출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그런데 매달 따박따박 꽂히는 월급에는 익숙해졌다면? 사람들은 '성공'만큼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초년 등과]의 위험에 대한 경고에 공감이 가더라. 자신을 충분히 알아갈 시간을 갖지 못하고, 실패해 본 적 없이 어린 나이에 성공만 이룬 사람들은 그 성공을 어떻게 감당할 줄 몰라서, 그다음엔 무엇을 할 줄 몰라서 방황하게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 게 현실이다.
그나마 이런 문제들은 인생의 '큰' 문제들이다. 그리고 사실 나이가 들만큼 들었고 결혼 생각은 있는데 사람을 만날 노력을 하지 않고 있거나, 경제적으로 독립을 했어야 할 나이에도 철 없이 부모의 등에 빨대를 꼽고 있는 사람, 이미 늦은 나이에도 철 없이 이상만 꿈꾸는 사람에게는 사실 '네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라는 말을 하는 게 이해도 되고, 때로는 필요하기도 하다. 이는 그런 사람들은 보통 평균 이상의 멘털을 갖고 있거나 위기의식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갖고 있지 않은 상태이고, 그럴 때는 외부의 자극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경우들은 조금 다르다. 지금 당장 시험을 못 봐서, 입시에 실패해서, 취업을 못해서, 사업에 망해서 좌절하고 절망하여 무너져 있는 사람에게는 '네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라는 말을 해서는 안되고, 할 필요도 없다. 이는 그렇게 작은, 미시적인 경우에는 사실 '이러고' 또는 '그러고' 있어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우리가 목표로 달렸던 것에 좌절했거나 우리의 타임라인과 계획대로 뭔가가 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그것이 인생의 끝인 것처럼 여길 때가 있는데, 사실 세상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지금 당장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도 나중에는 이상하게 꼬여 있을 수도 있고, 지금 당장 엉망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그 과정을 극복하면 대단한 사람이 되어있기도 하다. 내 주위만 보더라도 학부시절에 공부도 안 하고, 학점도 나쁘던 사람들이 오히려 돈을 잘 버는 직장들을 잘 옮겨 다니고 당시에 놀면서 익힌 친화력으로 영업을 잘해서 돈도 더 잘 버는 경우들이 있더라.
인생의 '때'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누군가가 특정한 상황에 있고 그게 보편적인 기준에 비춰봤을 때, 통상적인 케이스에 비춰봤을 때 느리거나 잘못되어 보여도 그 사람은 다를 수 있단 것이다. 그리고 설사 지금 뭔가를 바로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지쳐서 일어날 힘조차 없는 사람에게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일어나서 다시 뭔가를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자동차에 기름이 1/3만 차 있는 상태에서 액셀을 밟고 가는 게 오래, 멀리, 빨리 갈까? 아니면 기름을 가득 채운 후에 가는 게 오래, 멀리, 빨리 갈까?
인생의 '때'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 그리고 조금 늦거나 느려도 된다. 방향이, 그리고 그 방향으로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가는 게 더 중요하다. 중간에 수 십 번, 수 백번도 더 넘어지면 그 사람이 조금 느리게 가게 될 수는 있겠지만, 포기만 하지 않고 가면 그 사람은 자신의 방향을 찾아갈 것이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느리게 가게 된 것이 주위를, 그리고 본인을 볼 수 있게 해 줌으로써 달리기만 했다면 발견하지 못했던 길을 발견하게 해주기도 하더라.
그렇기 때문에 '때'를 운운하며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자극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보편적이고 생각하는 '때'가, 내게는 답이었던 '때'가, 다른 사람에겐 '때'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때'도 본인이 스스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을 때야 비로소 닿을 수 있기 때문에 무너지고 넘어져 있는 사람은 일어나는데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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