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TC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on de Cyrene Mar 19. 2022

낮은 낮이라 일이 되지 않지만

프리랜서로 사는 순간들. 10화

학부 때도, 회사를 다닐 때도, 대학원에 가서도 일관된 패턴이 있었다. 낮에는, 정확히 말하면 오후에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앉아서 뭔가를 진득하게 하는 일은 잘 안됐다. 사람을 만나고, 움직이고, 에너지를 쓰는 종류의 일은 잘되었지만 진득하게 앉아서 글이나 보고서를 쓰거나 읽는 건 잘 안됐다. 그런 일들은 주로 아침에, 점심을 먹기 전이나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에 잘 되는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회사를 다닐 때는 오후에 항상 딴짓을 했다. 회사를 다니는 2년을 실질적으로 막내로 지냈 자리는 뒤로 사람들이 오가며  모니터를 슬쩍   있는 자리였다. 그래서 자리에서  짓을 하는  불가능했고, 나의 '딴짓' 항상 다른 곳에서 이뤄졌다. 선후배나 동기들과 회사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사들고 잠시 수다를 떨거나, 담배를 피우지는 않지만 흡연가인 선배나 동기와 흡연 공간에서 수다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낼  있는 시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눈에 띄지 않고,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 뭔가 오후에 넘치는 에너지를 참고, 버텨야 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그런 게 필요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낼  번째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군생활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짬이 없을  선임들 눈을 피해서 혼자 긴장을 풀고 있을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던 화장실 변기 . 작대기가  개가  때까지도 화장실 변기 칸은 내가 유일하게 긴장하지 않고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로 있을  있는 공간이었고, 그때는 그게 그렇게 비참하게 느껴졌었는데 사회초년생인 내겐 변기 칸이 다시 일이 안될  박혀 있을  있는 공간이 되어줬다. 선배들은 점심시간에 책상에 엎드리거나 의지를 뒤로 젖혀 놓고 잠을 자기도 했지만 막내인 내가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보니 변기 칸이 내가 유일하게 마음 놓고 낮잠을   있는 공간이 되어줬다.


하지만 변기 칸은 엄연히 말하면 '쉬는' 공간이었지 낮에 넘쳐나는 에너지를 조절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내게 그런 공간은 엘리베이터 공간 뒤에 있는 창고로 쓰이는 공간. 내가 다녔던 회사는 전체가 통창이었고, 사무실은 25층에 있었다. 당연히 뷰가 엄청나게 좋았지만  자리는 창가에서 멀고  층의 중간에 가까웠기 때문에  뷰를 누릴 수는 없었고, 나는 우연히 발견한 엘리베이터 뒤에 잡다한 물건을 놓는 공간에서  뷰를 누렸다. 화장실이나 밖에 나가는 척하면서 커피를 들고  공간에 앉아 통창으로 시원하게 뚫린 시야를 누리던 기분은 잠시나마 천국에 있는,  에너지가 창을 통해  발산되는 느낌을 주곤 했다.


나만 낮에 그런 종류의 일이 안 되는 것도, 중간에 졸린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회사를 다닐 때 선배들도 꽤나 자주 자리를 비웠고, Google에서 인턴을 할 때는 잠시 누워 쉬는 공간에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뿐 아니라 마사지를 받는 시간도 예약이 꽤나 치열했던 것을 보면 인간은 원래 하루 종일, 오후 내내 앉아서 무엇인가를 하도록 만들어진 종족이 아니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더라.


학부 때는 시험기간에도 자리에서는 주로 엎드려 잠을 잤고, 대학원에서도 낮엔 공부가 안되어 아침 일찍 학교에 와서 잠시 공부를 하다 낮에는 빈둥대다 저녁에  것을  하고 집에 갔던 패턴이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도 달라질 리는 없다. 낮에 회의를 하고, 사람을 만나러 다니는 일을 한다면 오후를 꽤나 '생산적으로', '생계와 관련 있게' 보낼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주로 글을 쓰거나 연구, 공부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낮에는 여전히 일이  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운동을 남들이 안 하는 낮 시간에 한다. 2시에서 6시 사이 어디 즈음에. 아침에 일을 좀 하고, 밥 먹고 조금 소화가 되고 나른해져서 일이 안될 때 즈음에... 그렇게 운동을 한 타임 뛰고 나면 혈액순환이 되고 엔돌핀이 돌아 다시 일을 할 수 있으니까.


항상 그렇게 규칙적으로 사냐고? 아니다. 이렇게 사는 패턴을 지키고 싶지만 그게 항상  되지는 않는다. 밀린 일이 있으면 일을 끝내야 한단 압박 때문에 일이 되지 않는 오후에도 컴퓨터를 붙들고 있고, 생산성이 높지 않은 상태여도 왠지 운동을 하는 것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는  죄책감을  들기 때문이다. 낮에는 일이 안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붙들고 있는  불안하고 압박이 심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 시간 정도 운동한다고 크게 달라지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운동하면 긴장이 풀릴 뿐 아니라 운동하면서 오히려 생각이 정리되어서 그게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정말 컨디션이 좋은 날 마음먹고 운동하면 2-3시간은 하니까 그렇게 무리만 하지 않으면 낮에 운동을 하는 게 약이 된단 것도, 그 정도 비운다고 일이 달라지지 않는단 것도 안다. 평생 낮 시간은 그렇게 보내면서도 잘 버텨왔고, 인정받아 왔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놓인 일이 있으면 일이  되는 낮에도 컴퓨터를 붙들고 책상 앞에서 미련하게 버틴다. 프리랜서로서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2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럴 거면 제주에 살까 싶다가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