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살 이유. 5화.
이 시리즈 앞의 글에서 나는 회사원이 가지는 분명한 한계에 대해서 꽤나 길게 설명했다. 그렇다면 나는 회사원으로 사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일까? 아니다. 회사원의 아들로 태어나, 몇 년 전까지 회사원이셨던 아버지를 두고 있고 동생도 회사원인데 내가 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리 없다. 만약 그랬다면 동생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걸 하라고 하지 않을까? 나의 첫 사회생활도 대기업이었고, 나는 그 안에서 물리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많은 것을 받고 배웠기 때문에 나는 회사원으로 사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가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회사원이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넘어 좋은 일이다. 이는 회사가 만들어져야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져서 더 많은 매출과 수익이 만들어질 수 있고, 또 그래야지 혼자서는 생존할 능력을 갖추기 힘든 사람들도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경제적 가치를 통해 생계를 해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는 그 존재 자체로 선악을 따질 수 없다.
물론, 때로는 회사가 그 구성원들에게 보상을 너무 적게 해주는 것 같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회사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우리는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라는 '대마불사'의 시대에 살지 않는다. 2011년과 2021년 포츈 글로벌 500대 기업 리스트를 보면 불과 10년 사이에 183개 기업이 그 리스트에서 탈락했는데, 이는 우리가 아무리 거대해 보이는 기업도 10년 안에도 급격하게 쇠락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기업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인재'를 끌어올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서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높은 비용을 들여서 인재를 영입하는 기업들은 그 정도 수준의 능력을 갖춘 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렇게 채용을 하는 것이지 착한 기업이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상을 많이 주는 기업에는 당연히 좋은 인재들이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력시장에서 다른 기업들과 경쟁이 붙다 보니 비용도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원이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기 위해서는 '대체 불가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여러 기업들이 모시고 싶어 할 것이고, 경쟁이 붙으면 연봉은 올라가기 마련이니까.
문제는 그런 대체 불가능한 능력을 갖추기도 힘들지만 대부분 회사들은 그런 능력이 필요 없다는 데 있다. 몇몇 기업들을 제외한 대부분 기업들은 주어진 임무를 성실하게 잘하면서 오랫동안 있을 사람을 필요로 한다. 이는 기업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개인의 힘과 능력으로 운영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특히 그렇다. 그렇다 보니 대기업들은 대부분 가장 뛰어난 인재보다는 최소한의 능력을 갖춘 오래 일할 것 같은 사람을 채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채용은 줄 세워서 능력이 특출 난 사람부터 선발해야지'라는 듯한 분위기가 있는데, 사회초년생들의 경우 그 [능력]이라는 건 사실 객관적으로 입증되기가 힘들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 일을 잘하는 건 또 다른 문제가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학력과 학점을 보는 건 학점이 기본 이상이 되면 그 사람이 최소한 나태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참고 사항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학점이나 다른 지표들을 보는 건 '능력'이 아니라 '버티는 힘'을 보는 것이다. 더군다나 학점은 학교 별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아니 사실 같은 학교에서도 교수님마다 학점을 다른 기준으로 주기 때문에 학점이 능력의 기준치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기업들이 스펙이 좋다고 무조건 채용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우리 아버지께서는 20-30위권에 속하는 대기업에 다니셨는데 아버지는 유명 해외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서류평가에서 탈락시키셨다고 한다. 이는 그 사람이 어떤 능력이든지 탁월한 면이 있긴 하겠지만 경험적으로 봤을 때 회사에 만족하지 못해서 오래 다니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고, 탁월한 신입이 들어오는 게 회사의 단기적인 성과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회사들은 신입을 채용할 때 그 사람의 능력보다도 '오래 다닐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더 중요시할 수밖에 없다. 조금 더 연봉을 높게 줄 수 있는 회사들은 '오래 다닐만한 연봉'을 주겠지만 그럴 여력이 되는 회사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처럼 복잡한 사회생활의 시작점에 선 사람들은 어디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좋을까? 나는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박사과정 말미에는 아는 동생이 대표로 있는 10인 정도의 마케팅 대행사에서 그 회사가 2년이 안 되는 기간 안에 30명 정도 되는 것을 경험했고, 그 후로는 다양한 일을 프리랜서로 하면서 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라를 하다 보면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첫 연봉/직장이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라는 통념이 있는 듯한데 내 주위 사람들을 보면 오늘날에 그 말은 반은 맞지만 반은 잘못된 말이다. 내가 첫 회사생활을 시작했던 2008년만 하더라도 그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채용시장은 굉장히 경직되어있었고, 이직이 그렇게 활발하지는 않은 편이었다.
지금도 그런 경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도 조금은 더 유연해진 것으로 보인다. 내 주위에는 첫 연봉을 2천만 원 중반대에서 시작해서 5-6년 만에 5천만 원 전후를 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5-6년 전에 2천만 원 중반대 연봉을 받다가 이직을 잘해서 스톡옵션을 주는 회사에 가서 올해로 15년 차인 내 회사 동기들보다 더 많은 돈을 모은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흔한 것은 아니지만 업계에 따라서는 그게 가능한 시대가 되었고, 사실 이직 시장에서 더 중요한 건 '첫 연봉' 보다는 '이직하는 시점의 연봉'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첫 연봉보다도 자신의 능력과 노력, 성과에 따라 연봉이 얼마나 빨리, 많이 오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첫 직장을 잡는데도 전략이 필요하다. 대기업의 경우 첫 연봉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맞고, 중소기업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도 맞다. 하지만 앞의 글에서도 설명했듯이 대기업은 철저히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대기업 안에서 개인의 능력이 엄청나게 발휘되거나 늘기는 쉽지 않다.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회사생활을 하다 퇴사한 사람들이 갈 곳이 없는 것은 그들이 굉장히 오랜 시간을 시스템의 일부로 보냈다 보니 시스템 없이 자생할 능력이 길러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중소기업 사장님들 중에는 처음 몇 번은 대기업 출신을 채용했다가 그들의 한계를 경험한 후에는 차라리 신입을 더 채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대로 중소기업의 경우 회사생활이 엄청나게 힘들 수밖에 없다. 이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보니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고,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한 사람이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단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다양한 일을 해야 하는 건 그 사람이 그 안에서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중에 독립해서 본인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치를 기를 수 있단 뜻이다.
중소기업에서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자신이 다니던 기업에 일을 맡기던 사람들을 클라이언트로 해서 회사를 차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사실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업종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들인데, 자격증이 주어지는 변호사, 의사, 세무사, 회계사, 변리사 등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어느 정도 이상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런 패턴으로 자신의 사무실을 차리고, 홍보나 마케팅은 물론이고 제조업에서도 그런 일들은 항상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을 할 생각이 있는 사람은 업종의 특성을 잘 보고 중소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대기업, 그것도 좋다고 알려진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이력서에 그 한 줄이 많은 것을 쉽게 만들어준단 것이다. 사람들은 그 한 줄을 보고 나의 기본적인 업무능력에 대해서는 신뢰하고 일을 시작하는 걸 나는 적지 않게 경험했고, 그 덕분에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는 분명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이런 도움이 무형적이라면 조금 더 현실적으로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시스템 속에 있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 중에는 대기업에서는 뭔가 대단한 것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런 건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대기업의 경우 모든 게 시스템과 매뉴얼로 운영되다 보니 첫 사회생활을 그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시작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효율성을 극대화시켜 놓은 그 시스템 안에서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일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누군가가 가르쳐줘서가 아니라 대기업은 그 안에 들어가면 그렇게 일하게 되어있다.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듣는 건 그들이 그렇게 시스템적으로 일하는 게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중소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주어지는 걸 다 했어야 하다 보니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일하는 점에서는 분명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사업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는 끌어올리지만 사업을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끌어올리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시점인 2001년에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최고 기술경영자였던 에릭 슈미트를 모셔온 것도 그러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만약 본인이 자신의 사업을 하거나 자신만의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할 생각이 없다면 대기업은 최고의 선택이다. 처음부터 '어느 정도는' 안정된 연봉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나이까지'는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돈을 최대한 알뜰하게 모으고 안정적으로 재테크를 하면서 노후를 위한 계산을 하며 충실하게 회사원 생활을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시리즈의 앞의 글들에서 설명했듯이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르다는 데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것도 정말 아주 많이 길어야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인데, 우리 사회의 경제 구조상 지금의 10-40대는 엄청난 금수저가 아니라면 70-80대까지는 경제활동을 해야 할 확률이 매우, 매우 높다. 이는 우리는 언젠가는 조직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가 조직에서 나가는 순간까지 쌓은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먹고살아야 한단 것을 의미한다. 다시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조직이 나를 받아주기 위해서는 내 능력치가 명확해야 하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사실 오늘날에는 첫 사회생활을 대기업에서 시작하느냐, 중소기업에서 시작하느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단기적으로 보면 대기업이 당연히 편하고 물질적으로도 조금 더 풍요롭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각각의 장단점이 분명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왜 이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그 후에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힘들고 그 정도로 현실을 알 수도 없다. 그리고 지금은 계획이 완벽한 것 같아도 막상 현실을 마주하면 그 계획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알게 될 확률도 매우 높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는 어디라도 취업이 되어야 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이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그 후에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은 그래야 나의 첫 사회생활이 의미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든지 그런 고민을 하고, 본인이 있는 곳의 장단점과 한계를 인식한다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 안에서 무엇을 어디까지 배우고 언제, 무엇을 위해, 왜 옮길지에 대한 그림과 계획을 만들고 수정, 보완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고민과 생각을 하지 않고 지금 당장의 연봉과 현실만 본다면 우리가 있는 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놓치고 말 것이다.
개인적으로 첫 사회생활을 프리랜서로 맨 땅에 헤딩을 하면서 시작하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는 그 수준과 정교함의 차이는 있어도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 일을 해 보는 건 개인이 세상에 온 몸을 부딪혀서 알게 되는 것보다 많은 것을 빨리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으로 일을 시작한 사람들은 적지 않은 경우 일이 커지기 시작할 때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서 사람을 잃고, 그로 인해 자신의 일의 규모도 키우지 못하는데 그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첫 사회생활은 시스템 안에서 시작하기를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첫 직장은 언제쯤 옮기면 좋을까?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설명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