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벨과 열정페이의 허와 실

프리랜서로 살 이유. 7화.

by Simon de Cyrene

인생의 가장 예민한 시기를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해외에서, 외국인학교에 다녔다. 5살부터 8살,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 모범적으로 자란 사람들, 아니 어쩌면 모범적으로 자라지 않은 사람들과도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30대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집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싫어하고, 개인을 중시한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개인주의자는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다름이 틀림이 아닌 것으로 존중하는 반면 이기주의자는 자신 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틀렸다고 생각하는 괴물 같은 존재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이기주의자와 달리 진정한 개인주의자는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도 존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은 가급 적하지 않는다.


집단주의자들은 '너는 우리와 다르니까 틀린 거야'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모든 것을 비슷하고, 획일적인 기준에 맞춰야 하고 거기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개인은 없고 집단이 항상 우선시되는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이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집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때 하나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으로 뭉쳐야만 생존할 수 있었고,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에는 폐허가 된 땅에서 서로 뭉쳐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최소한 1970년대까지는 집단의 생존이 개인의 생존과 일치되었고, 지금의 30대들의 부모님만 해도 그런 시대에 태어났다. 20-30대에는 그런 부모님에게서 집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데 더해서 남자들은 대부분이 다름은 틀림으로 여기는 군대에 다녀오니 우리나라에서는 집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을 수밖에 없다. IMF시대의 금 모으기 운동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집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그런 문화는 기업에도 그대로 있다. 기업의 생존을 위해 월급을 조금 덜 받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게 미덕인 문화.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이 90년대까지 그런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 지금은 임원들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일을 배운 사람들이 관리자이다 보니 우리나라 기업들도 그런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문화는 '조직을 위해 희생하면 평생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상황'에서만 잘 유지된다는 데 있다. 그 환상은 IMF 때 깨졌는데, 그 시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익숙한 문화 속에서 살아가려 한다. 이러한 괴리감이 요즘 사람들이 워라벨을 찾고, 열정 페이에 분노하게 만들었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나는 우리나라 대기업 중에 기업문화가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는 첫 직장에서도 그런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회식에서 강제로 술을 마셔야 하는 것도, 송년회에서 막내들이 여장을 하고 춤춰야 하는 것도, 9시 전에 퇴근했는데 실장님이 퇴근을 안 하셨으면 7시 20분까지는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것도, 그전에 출근하는 게 눈치가 보여 컴퓨터를 켜놓고 퇴근하거나 실장님만 나가시면 6시에 칼퇴하는 선배들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기다 정말 일다운 일을 하는 시간보다 보고서를 쓰는데 쓰는 시간이 긴 것에는 분노를 느꼈다.


첫 직장에서는 연봉이 높았는데, 10년 동안 대학원을 갔다 방황하는 시간을 보내고 지인이 대표인 소형 대행사에 갔을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연봉이 10년 전보다 1천만 원 이상 낮아져 있었다. 작은 기업이고 형편을 알았기 때문에 내게 주겠다고 한 연봉도 스스로 낮춰서 들어간 것도 있지만 사실 기존 직원들의 연봉 수준을 어느 정도 알았기에 내가 그들보다 그렇게 많이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같은 업계에 있는 지인들에게 들어보니 그 회사의 연봉 수준은 분명 업계에서도 낮은 편이긴 했지만 말도 안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 대표에게 분노하지 못했다. 이는 내가 회사에 들어간 이후 대표와 거의 매일 회사 상황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보니 그 친구가 직원들의 연봉을 그 수준으로밖에 책정할 수 없는 이유를 너무나도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대형 광고회사에서 나와 아무 기반 없이 회사를 시작했다 보니 단가를 낮춰서 일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광고업계에서는 그런 일들조차 언제 날아갈지 모르니 모든 비용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유지해야 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런 상황에 있는 회사들이 있다. 한 사람의 연봉을 올려주면 다른 사람들도 도미노로 올려줘야 하는데 고정비용이 그 수준으로 올라가면 감당이 안되기 때문에, 회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모든 비용을 아껴야만 하는 회사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런 회사들에 대해서도 '열정 페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이 과연 공평할까? 그게 맞을까?


본인이 그 연봉이 만족스럽지 못했다면 애초에 그 회사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된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이 그 회사에 들어가기로 다짐을 했다면, 상대가 그 과정에서 거짓말을 한 게 아닌 이상 자신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 그게 '계약'이니까.


물론,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노동강도가 강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그 지점에서 그 사람은 자신에게 '다른 곳은 이곳보다 처우가 훨씬 나은가? 다른 곳의 노동강도는 어떤가? 이곳에서 내가 배울 것이 있을까? 배운 것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내 인생의 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들을 던져 봐야 한다. 같은 업계라면 사실 처우와 노동강도는 비슷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핵심 질문은 뒤의 질문들인데, 만약 본인이 그곳에서 배울 것이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노동강도가 세고 지금 당장은 연봉이 낮아도 그곳에서 일단 버티는 게 맞다.


워라벨은 굉장히 중요하다. 나도 회사에 다닐 때 워라벨이 굉장히 중요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워라벨을 얘기하기 전에 자신이 왜 워라벨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배움이 없는 일을 하면서 오래 일해야 해서 워라벨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 조직에서는 빨리 발을 빼는 게 맞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일처리를 잘 못하거나 그 업종 자체가 노동강도가 강한 직종이고 일다운 일이 많아서라면 사회생활 초기에는 사실 워라벨을 조금 포기하는 게 장기적으로 본인을 위해서 나을 수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일을 하다 힘들면 그게 무조건 자신에게 좋지 않은,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듯한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고통을 참고 운동하지 않으면 멋있는 몸을 만들 수 있나? 놀 것을 다 놀면서 지식을 습득하고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나? 없다. 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일을 배울 때 어느 정도는 힘들 수밖에 없다. 아니, 힘이 들어야 실력이 늘 수 있다. 물론, 같은 힘을 써도 운동이 될 수도 있고, 노동이 될 수 있듯이 똑같이 힘들어도 도움이 되는 힘듦이 있고 그렇지 않은 힘듦이 있다. 후자라면 불만을 가지기보다는 빨리 그만두는 게 상책이고, 전자라면 그 힘듦의 시간은 자신을 위한 투자일 수 있다.


만약 자신의 힘듦이 자신에 대한 투자라면 지금 당장의 연봉이 아주 높지 않은 것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투자일 수 있다. 실제로 내가 다녔던 소형 대행사에서 실력이 일취월장한 친구들 중에 회사에 남은 친구들은 2-3년 안에 연봉의 앞자리가 최소한 2번 바뀌었고, 떠난 친구들도 그 정도의 연봉을 보장받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일은 그렇게 힘들게, 자신의 힘과 노력과 당장의 보상까지 투자하면서 배워야 할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이 충분한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하거나 역할과 기능을 할 능력이 안될 때는 자신이 받는 보상이 적은 게 당연한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면 따라오는 경제적 보상은 그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 뒤에 설명하겠지만 경제적 보상은 크게 그 사람이 창출해 내는 경제적 가치와 희소성에 의해 결정되는 데 그 두 가지를 다 잡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실력을 갖춰야 하고, 그런 실력이 입증된 사람은 경쟁을 통해서 몸값이 올라가게 되어있다.


그게 하루아침에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건 마치 운동을 전혀 하지 않던 사람이 1년 정도 운동을 하고 프로선수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워라벨과 열정 페이에 대해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비판하기 전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그 문제가 어떤 구조에서 왜 생겨나는 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 결과 워라벨이 보장되지 않고 열정 페이가 강요되는 게 악덕한 사람 때문이라면 그 조직을 떠나는 게 상책이고, 그렇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에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게 있다면 투자라고 여기고 남아야 한다.


생각해보자. 당신이 식당에 가서 밥을 사 먹거나 백화점이나 온라인에서 물건을 살 때 얼마나 까다로운가? '내가 이 정도 돈을 냈는데 왜 이런 음식/물건을 주냐?'라며 따지게 되거나 불만을 가질 때가 있지 않나? 그리고 우리는 더 많은 돈을 내면 더 좋은 퀄리티를, 적게 내면 그에 상응하는 퀄리티를 기대하지 않나? 당신은 상대에게 얼마나 힘들고 까다롭게 자신의 돈을 상대에게 넘기는지를 생각해 보자. 당신은 그렇게 까다로우면서 왜 상대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가?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서 내 주머니로 옮기는 건 원래 힘든 법이다.


여기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당신이 한 번 사 먹었던 음식, 사서 사용했는데 굉장히 좋았던 제품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음식과 물건은 비용을 조금 더 들여도 사게 된다. 우리의 연봉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충분힌 능력을 갖추고 가치를 증명했다면 연봉은 어떤 형태로든 올라가게 되어있다. 다만, 그 음식과 물건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그 음식과 물건을 만든 사람들은 그 과정을 버텨냈듯이 사람도 (자신이 있는 곳이 일을 배울 수 있고 장기적으로 그 과정에서 인생의 그림이 그려진다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까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가치가 증명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프리랜서'가 될 수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