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
지방방송국의 아나운서로 시작해 어느 외국계 회사의 마케팅 기획 대리로 경력을 이어온 지 10여 년. 정들었던 회사를 뒤로 하고, 어쩌면 가능했을 승진의 기쁨과 각종 자아실현의 가능성들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막연하게 두려워했던 그 길.
나 자신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어 맨몸으로 걸어가야만 하는 길.
나는 이제부터, 프리랜서다.
감사했지만, 힘들었던 워킹맘의 일상
내가 마지막으로 다닌 회사는 그야말로 여성친화적이었다. 전체 임직원 중 80% 이상이 여성이었고, 워킹맘의 비중도 높았기에 각종 여성 친화적인 정책도 많았다. 탄력근무제, 재택근무제 등 일만 하고 싶다면야 활용할 수 있는 선택지들도 넓었다.
나는 갓 8개월에 접어든 아이를 둔 워킹맘이었다. 아이가 너무 어리니 조금 더 있다가 복귀하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꾸역꾸역 다시 일터로 돌아간 것은, 일에 대한 나의 열정, 그리고 나 자신만의 자아실현을 향한 욕망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기까지, 나와 남편을 꼭 닮은 예쁜 딸과 함께 하는 것은 분명 행복했으나,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마치 내 인생이 ‘OO이 엄마’로 끝날 것만 같다는 예감에 초조했다. 특히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아무런 변화 없이, 출퇴근하는 남편의 일상을 보고 있을 때면 질투심과 피해의식에까지 휩싸였다. “애는 엄마가 돌봐야지.”라는 주변 어른들의 말을 들을 때면 검은 감정은 더 짙어졌다. 나 역시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고, 여러 가지 커리어를 쌓으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나에게만 ‘아이 엄마’로서의 삶을 강요하는지.
그리하여 고집스럽고 야심찬 복귀는 결국 실행되었다. 그리고 고난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고 선명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회사 근무 시간은 점심시간 제외 총 8시간. 당시 우리 회사는 오전 9시 출근-오후 6시 퇴근, 오전 10시 출근-오후 7시 퇴근 중 한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회사 근무시간을 더 줄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대중교통 기준으로 왕복 3시간에 달하는 출퇴근 시간 때문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서울 삼성역에 위치한 회사까지 가려면, 걸어서 이동하는 시간 및 버스 대기 시간 포함해 최대 왕복 4시간까지도 고려해야 했다. 아이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을 생각하면 도저히 무리였다.
결국 한 달 간 어머니, 아버지께 SOS를 요청했다. 그리고 팀장과의 협상 모드에 돌입했다. 내가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협상 테이블에 놓고, 사무실 근무 시간 조정을 요청했다. 수차례 논의 끝에, 10시 출근-4시 사무실 퇴근, 남은 업무 3시간은 재택으로 처리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넘어 산
길을 새로 트면 예상했던 고난은 없으리라고 기대했으나, 이게 웬걸, 새로운 길에는 또 다른 종류의 고난이 준비되어 있었다. 팀장과의 협의 당시에는, 평소 9시 30분이면 자 주던 아이를 생각하며 아무리 늦어도 1시까지는 잘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아이는 조금이라도 더 엄마와 있으려 졸린 눈을 비벼대며 잠을 참아댔고, 11시 넘어 겨우겨우 잠드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 날에는 12시에나 잔업을 시작해 새벽 3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아이의 생활 패턴이 겨우 안정되니, 이제 몰려오는 일거리로 몸살이었다. 연말 연초는 모든 회사들이 사업 계획을 세우는 시기다. 내 주요 업무 중 하나가 HRD 교육 제안이다 보니, 제안서를 작성해야 하는 날이면 아예 잠을 포기해야만 했다. 오후 4시에 퇴근해 5시 30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10시까지 돌보고 나서, 새벽 3~4시까지 제안서를 쓰고 나면 내가 현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건지, 꿈속에서까지 일에 시달리고 있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과도한 업무와 휴식 없는 생활로 인한 피로는 스트레스로 돌아왔고, 결국 건강에 빨간 불이 켜졌다. 아직 월경이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왈칵 하혈하는 일이 잦았고, 새벽에 일하다가 전날 저녁식사가 역류하는 바람에 큰방 화장실에서 홀로 토하기도 했다. 편두통은 고작 몇 달만에 만성이 됐다.
이러다보니 일이라고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출산 휴가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초보적인 실수들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거래처로 보내는 이메일에 첨부 파일 잘못 넣기, 제안서에 수정 전 페이지와 수정 후 페이지를 연달아 붙여 보내기, 제안서 표지 오타에 견적서 발송 실수까지. 일을 통한 성취감을 맛보는 데 보람을 느꼈던 내가, 일을 하며 하루하루 지옥을 맛보고 있었다. 이메일 하나를 보내는데 눈이 시리고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다시 한 번 방향 선회가 필요했다.
결국, 다시 나를 위한 선택
결국 나는 백기를 흔들었다. 이대로는 육아도, 일도, 내 기본 생활마저도 무너져버릴 터였다. 왕복 3시간에 달하는 출퇴근도, 매일 3~4시간에 그치는 극악의 수면 시간도, 해도 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업무의 산도, 매일 불안해하며 엄마를 찾는 내 딸도, 더 이상 참고 견뎌내서는 안 됐다.
그리하여 육아휴직 후 복귀 4개월차, 급속도로 망가져버린 몸과 정신의 조각들을 끌어안고, 나는 퇴직을 결심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