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세 번째 이야기
나는 어쩌면 운이 좋은 사람이다.
경제적으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도 아니고, 남편도 굳이 나가 일하라고 떠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취미생활에 매진하며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줄 정도니, 마음의 부담을 덜어 고마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며, 앞으로도 기꺼이 내 많은 시간을 매진할 생각이다. 남편도, 양가 부모님마저도 꺾지 못한 내 고집의 이유는 바로 내 아이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3개월의 출산휴가와 6개월의 육아휴직 기간을 보냈다. 육아의 고통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삼신의 보너스 축복이라도 받은 것인지, 아이는 소위 ‘100일의 기적’ 모범 교본이었다. 고통의 해소는 생각보다 빨리 도래했고, 평균 이하의 내 체력을 걱정한 남편의 배려 덕분에 일정 시간 육아도우미 여사님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우는 시간보다 웃는 시간이 많은 아이와 주변 여러 이들의 도움, 가끔 아이가 잠 못 드는 새벽이 아니라면 내 육아 휴직은 말 그대로 ‘휴가’였다.
이대로 퇴사 후 가장 소중한 내 아이를 돌보는 생활. 이 미래가 달콤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이는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엄마가 있어줘야 한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도 귀가 세워졌다. 일하는 엄마 때문에 벌써 남의 손에 맡겨져야 하는 아이가 불쌍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들도 왕왕 들려왔다. 생각보다 힘겹지 않은 육아 생활, 그리고 아이는 엄마 손에 커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 나를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의 삶‘으로까지 끌어갔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은 것은, 수십 년 후 내 아이, 내 딸의 미래를 그려보고 나서였다. 내 딸도 언젠가는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결혼하게 되리라. 나처럼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때 ‘아이를 키워야 해서 일을 그만두게 되는 선택지’가 필연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누군가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나서도, 누군가의 엄마라는 이름 대신 그 예쁜 이름으로 계속 불릴 수 있음을. 엄마도 도전하며,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의 영역을 가질 수 있음을, 내 딸이 나를 통해서 알 수 있기를 바랐다.
어느 워킹맘 방송인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해외 촬영이나 장기 출장을 나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SNS에 아이들 관련 악성 댓글이 달린다는 것이다. ‘엄마 사랑 필요할 땐데, 애들이 불쌍하네요.’, ‘애는 누가 돌보나요?’. 워킹맘의 책임감을 운운하는 댓글들을 보며 그가 남긴 말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혹시 딸이 있으신가요? 딸이 있다면 절대로 꿈을 가지지 말라고 해 주세요. 어차피 결혼해서 애 낳으면 애만 키워야 하니까요.”
내가 꾸린 가정, 그리고 나의 아이의 존재란 인생에서 둘도 없이 소중하다. 그러나 내가 나 자신으로서 앞으로 펼쳐나갈 나만의 꿈 역시 소중하다. 누군가에게는 이기적이라고 비난받을지언정, 엄마의 삶과 직업인으로서의 삶, 그 어느 것 하나 나는 포기할 생각이 없다.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싶다. 내가 남긴 발자국들이 훗날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야 할 내 아이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두 발에 힘을 가득 실어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