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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명이오 Mar 16. 2023

어두운 내면까지가 나의 일부인 걸 어떡하겠어

아기가 어른을 키우더라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던 삼촌이 나를 보기에는, 내가 가끔 다른 사람들처럼 삶의 의욕을 못 느낀다면 이상한 걸까?”


 “으음~ 나도 ‘남이 보는 나는 어떤 이미지일까?’하는 생각 많이 해봤지. ‘나는 진짜 누굴까?’하는 생각. 너도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으니까 가끔 친구들 만날 때 말고는 사람을 안 보고 사는 거 아니야? 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쟤는 왜 배부른 소리~~’ 어쩌구 할 수 있어. 너 지금 21살인데, 나는 21살에 주유소 숙식 알바 했었거든. 시대가 많이 변했다지만, 그래도 네가 당장 일하지 않아도 생계에 문제없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건 다행이야. 근데 사람은 다 들여다보면 자기만의 고충을 안고 살아가지. 내가 안타까운 거는 이제 막 꽃봉오리가 맺히고 피어나기 전인데 너무 좌절감을 느끼거나 하지는 말자는 거고. 네가 학력을 끝까지 해본 것도 아니고, 사회생활에 당장 뛰어들어서 돈을 엄청 많이 벌어본 것도 아니고. 뭐든지 끝까지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뭐… 집안 능력껏 엄마 아빠 돈으로 뭔가를 하면서 편하게 살거나. 하다못해 그렇게 살면 되는데 굳이 다른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릴 필요는 없어.”


 외삼촌 No.3의 생애를 다 듣고 진지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사촌동생이 갑자기 나한테 다가와서 말했다.


 “근데 누나는 집에 안 가요?”


 “어? 누… 누나 집으로 가라고? 누나 있어서 불편해?”


 “ㅇㅇ(사촌동생), 누나가 너 학교 가야 돼서 잠깐 우리 집에 와있잖아. 봐봐, ㅇㅇ(필명25)아, 사람이 아기가 그냥 말하는 한 마디에도 위축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되잖아. 이래서 사람 말이 무섭다니까?”


 “아, 그렇구나! 근데 누나가 집에 안 가면 고모가 보고 싶을 건데? 어, 고모부도 보고 싶고, 고양이들도 보고 싶을 건데?”


 “지금도 봐. ㅇㅇ아, 아기도 이런 생각을 해. 나는 너 없으면 안 슬플까? 내가 너 없으면 좋다고 박수치겠니? 그래도 내 조카인데?”


 가끔은 아기만 줄 수 있는 순수함이 어른에게 필요할 때가 있다. 아이 같은 어른을 치유할 수 있는 진짜 아기의 맑은 시선. 타인의 고민의 경중을 재고, 하찮게 여기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 진짜 어린 자의 투명한 본질이 어른을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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