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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핌비 Dec 19. 2019

8화. 딸보다 중요한 절임배추

비혼주의에서 결혼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날  

체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늘 말썽이던 편도선은 여전히 문제를 일으킨다. 항암주사를 맞고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바로 응급실로 가야 하는 나는 암 환자였다. 


항암 9회차.

이제 나도 가족도 모두 어느정도 익숙해져   항암주사를 맞고  백혈구가 500이 되기 전까지 부모님은  조용히 내 방에 들어와 열만 체크하고, 물과 냉수건을 가져다 놓는다. 나는 규칙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먹고 까물어쳐 있거나, 눈을 감고 그동안 미워했던 사람들을 용서하거나,  다 나으면 하고 싶은 일을 상상하면서 하루 하루를 버틴다. 


다행히 7번째 ,8번째  항암주사를 맞고는 응급실에 가지 않았다. 부모님도 나도 이제는 몸도 익숙해 진 것 같다며 방심했다. 부모님은 주사를 맞고 조용히 잠만 자는 동안 김장을 하기로 결정을 하셨다. 


맞다. 나는 그날 또 문제가 일어나서 급히 응급실로 향했다.  담당의사가 오고 제법 안정되었을 때, 엄마는 나에게 이야기 했다. " 혼자 있을 수 있지? 무슨일 있으면  전화해 ~ 금방 올께.  배추를 절여 나서..." 

(그 당시 집과 병원의 거리는 차로 약 10분정도 거리였다.) 



그렇다. 워낙 알뜰 했던 엄마는 딸 보다 머릿 속에는 온통 절임배추 생각 뿐이었다. 익숙해 진다는 것. 

처음 암 선고 받았을 때, 나보다 더 서럽게 울며 슬퍼했던 엄마였는데....어느 덧 나는 절임배추에 밀렸다. 딸 아프다고 두부까지 생전 처음 직접 만들어 먹이려고 했던 부모님이었기에  섭섭한 마음 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더 커서..." 배추에 딸이 밀린거야? 수육도 먹어..나 때문에 수육도 못먹고 (냄새에 예민함) " 란 진담 반 농담 반 웃으며 부모님을 보냈다.


늘 죄송한 마음이 컸지. 부모님에 대한 섭섭한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부모님 두 분이 김장을 하려고 떠났을 때, 나는 망망대해 바다에 혼자 튜브 하나로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안계셨다면? 

언니는 남아공에 있고, 남동생은 미국에 있고...

친구들은 결혼에서 각자 삶을 살고 있고... 


오롯이 혼자라는 생각이 들자. 이기적인 마음이 들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해야겠다는.친구같이 함께 할 그런 좋은 사람과...예전 같으면 돈이 많이 있으면 모든 것이 쉽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는데,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돈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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