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핌비 Dec 19. 2019

9화. 생각하기 나름.

유방암 1기는 대성통곡할 때,  3기 말은 해맑게 웃었다.

나는 유방암 3기 말 환자였다. 암 덩어리가 너무 커 바로 수술을 할 수 없어 항암주사 6회를 맞고, 암세포가 줄어들면 그 때 수술을 하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을 포함 모두들 '이 정도의 크기면 느껴졌을 텐데...'라고 이야기했지만, '평소에 자기 가슴을 만지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라고 나는 생각했다. 사실 암 확정을 듣고도 나는 아무리 만져봐도 여전히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일 외에는 모든 일에 참 무감각한 여자였다. 


모두들 한없이 불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볼 때 조차도, '죽지 않고 2년 정도 쉬는 건데, 보험도 잘 들어 놓았으니, 다행 아닌가'란 생각을 했었고, 긴 인생에 2년 ~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안식년이라 생각을 할 만큼, 긍정적 사고의 소유자였다.  


드디어 암세포가 줄어들어 수술 날짜를 받았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해보는 수술이라  겁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다. 수술실은 어떻게 생겼을까? 수술하면 몸에서 암세포가 제거되는데 왜 항암주사를  6번 더 맞아야 하지? 난 검사해서 줄일 수 있는지 물어봐야지  등등... 


2인실 

나보다 2살 어린 친구가 같은 날 나보다 먼저 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했다. 나와 같이 결혼을 하지 않은... 그쪽 부모님은 '시집들을 안 가서 병에 걸린 거라고' 혀를 차셨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


그때부터 그 친구는 성질을 제대로 내기 시작했다. 세상에 대한 한이 그렇게 많은지 울기 시작했고, 억울한 일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 등등.. 엄마에게 제대로 성질을 부리며 울고 불고... 덩달아  순애씨(핌비 엄마)까지 마음전염이 될 분위기라 엄마를 집으로 보냈다. 


한참을 우는 소리와 억울한 심정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친구다.)을 듣고 있는데 미국에 살고 있는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내일 수술이지, 괜찮아?  천하에 고영주가 겁먹은 건 아니지? "  

" 겁먹긴, 내일이면 암덩어리가 몸에서 사라지는데 누나는 좋아. 궁금했던 수술실도 구경해 보고... 엄마는 불교인데, 밑에 성당에 가서 기도 하더라.. " 동생과 한참 웃으며 엄마 아빠 흉도 보고  응원도 받고, 짠돌이 남동생이 수술 잘하면 명품지갑을 사준다고 수술 잘 받으라는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끊었다.


조용한 병실. 

그 친구와 나 둘이 남겨졌다. 

" 언니~ 죄송해요... 남동생 분이랑 통화하는 거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정말 괜찮은 걸까?  속으로 감추고 있는 건 아닐까란 걱정도 되었어요. " 

.

.


그 당시 나는 정말 괜찮았다. 

모르는 게 약이 된 건지,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는 모르지만 , 치료하고 수술받으면 나을 수 있다는 사실과 남은 항암 6회가 어쩌면 수술 후 줄지 않을까란 희망 때문이었던 것 같다. 

.

.

그러나, 사실 나는 그 당시 괜찮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마음을 들여다 보고 표현할 줄 몰랐던 것은 아닐까? 

치료받는 동안 괜찮았던 나는 항암이 모두 끝난 후, 다시 회사에 복귀했을 때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이전 08화 8화. 딸보다 중요한 절임배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