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의 국화꽃에게

by 비움과 채움

가을의 마지막 골목을 돌면, 집집마다 작은 화분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노랑, 자주, 흰색, 분홍색… 제각기 다른 빛깔로 세상을 물들이던 국화꽃들이 이제는 서서히 빛을 거두는 중이다. 꽃잎은 바람결에 말라가고, 줄기는 찬바람에 흔들리며 버텨내고 있다.


한때는 세상을 환하게 밝히던 꽃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조금만 더, 아직은 끝이 아니야.” 하고 속삭이는 듯하다. 새벽의 찬 공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낮의 따뜻한 햇살에 잠시 생기를 얻는 그 모습이 기특하고도 애처롭다.


국화는 아마 알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계절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래도 하루를 더 피워내고, 마지막 한 잎이라도 세상에 남기려는 듯 애를 쓴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순리요, 생명의 존엄이다.


봄에 피었다면 더 오래 살았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국화는 가을의 끝자락에 피어야만 했다. 추위와 맞서야 비로소 자신의 빛깔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시든 꽃잎을 보며 깨닫는다. 아름다움은 피어날 때만이 아니라, 스러져가는 순간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삶 또한 그렇다.

끝을 알면서도 하루를 더 살아내는 그 용기, 그것이 국화꽃이 가르쳐주는 가을의 마지막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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