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老眼)이라는 이름의 진단서

노안

by 비움과 채움

요즘 들어 눈앞이 자꾸 흐릿하다.

마치 얇은 안개가 시야에 스며들어, 세상을 뿌옇게 덮어버린 듯했다.

처음엔 잠을 잘 못 자서 그런가 했지만, 점점 심해졌다.


문득 5년 전이 떠올랐다.

그때도 비슷했다. 오른쪽 눈이 자꾸 뿌옇게 흐려져 병원을 찾았고, 결국 백내장 판정을 받았다.

수술대 위에 누워 불빛을 보며 ‘아, 이제 다시 잘 보이겠구나’ 했는데, 수술 후 맑게 보이는 세상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런데 이번엔 왼쪽 눈이 심상치 않았다.

며칠 전부터 글자가 겹쳐 보이고, 햇빛 아래선 더 뿌옇게 번져 앞이 잘 안 보였다.

‘아… 드디어 이놈 차례가 왔구나.’

이미 각오를 단단히 하고, 안과 진료를 예약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스쳤다.

이름이 전광판에 뜨기 전까지, 나는 각막지형도 검사, 안압 검사, 시력 검사, 심전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기계 앞에 앉았다.

이 모든 게 ‘곧 수술을 해야 한다’는 신호라 생각하며, 담담하게 의자에 앉아 결과를 기다렸다.


“○○○님 들어오세요.”

호명 소리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진료실 문을 열자, 의사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잠시의 정적이 흐르고,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환자분, 예전에 오른쪽 눈 백내장 수술하셨죠?”

“네… 했어요.”

“이번 검사 결과는… 백내장이 아니고요.”

나는 안도의 숨을 쉬려다 멈췄다.

“그럼 뭐예요?”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노안이 오신 거예요. 그래서 시야가 흐릿하게 보이시는 겁니다. 안경을 맞춰 쓰시면 한결 편하실 겁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백내장이라는 진단은 예상했는데… ‘노안’이라니.

노안, 글자 그대로라니. 노인이 되었다는 도장 하나를 찍힌 기분이었다.


진료실 문을 나서면서도,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노안이라니… 백내장이 아닌 노안이라고?"

처방전을 들고 병원을 나서는데,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어서 안경점으로 가서 맞춰야지.’

'안경을 맞춰 쓰면 눈이 맑아질까?'

어쩌면 흐릿했던 건, 눈이 아니라 나이 들어감을 받아들이기 싫었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안경점 간판이 보이자 눈이 맑아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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