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의 나, 시간 앞의 나

by 비움과 채움

목욕탕에 들어선 어느 날, 스치듯 지나치던 거울 앞에 멈춰 섰다.

무심코 비친 전신의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다.

젊은 날, 거울 속의 나는 자신감 그 자체였다.

우람한 어깨와 단단한 하체, 복부에 그려졌던 식스팩.

그래, 그때는 내 몸이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오늘, 거울은 낯선 풍경을 비춘다.

튼실했던 하체는 근육이 빠져 기린 다리처럼 앙상하고,

자랑하던 복부는 남산처럼 불룩 솟아올라 볼쌍사납기 그지없다.

머리카락은 숱이 줄고, 하얀빛이 섞여 가뭄 속 콩밭처럼 듬성듬성하다.

얼굴은 어느덧 나이테가 새겨졌고, 울긋불긋한 검버섯이 세월의 흔적처럼 자리 잡았다.

'이게 정말 내 몸인가?' 믿기 어려웠다.


나는 내 몸에게 물었다.

“운동도 꾸준히 했고,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또래보다 건강하다며 스스로를 으쓱했는데... 이게 무슨 꼴이냐고.”


몸이 조용히 답했다.

“세월은 누구에게도 예외 없지. 나이 앞엔 장사가 없다고.”


순간, 잊고 있던 나이를 떠올려 보았다.

백세 시대라지만, 아직 내 나이는 젊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몸은 다시 말했다.


“마음은 늘 청춘일지 몰라도,

몸은 시간 위에 올라탄 채, 네 마음보다 훨씬 빠르게 달리고 있어.”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면,

이젠 물결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야 할 때라는 걸.


젊음은 지나가지만,

그 자리에 익숙함과 지혜, 그리고 나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가 남는다.

거울 앞의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이 아니지만,

그래서 더 단단한 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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