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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일제문소 Jun 27. 2023

6월의 사람들

2023년 상반기 회고를 빙자한

일주일에 글 한 편씩은 꼭 쓰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경주 가서 빡세게 두 개나 썼더니 고만 흐트러져 버렸다(말하고도 굉장히 구차한데?). 사실 쓰고 싶은 글들에 대해서 메모장에 조금씩 글밥들을 넣어놓긴 했는데 다른 때와 다르게 뭔가 글이 가열차게 국수면발처럼 뽑아지질 않았다. 간혹 안 읽고 묵혀두었던 책에 뒤늦게 손이 가는 경우도 있으니 메모장에 있는 뻘글들도 부디 브런치에 올라올 수 있길 바란다. 사실 지금도 완결된 형태의 글이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와의 약속은 좀 지켜보고 싶어 부랴부랴 랩탑을 열었다.


6월은 정말 많은 일들, 많은 만남들이 있었다. 5월에 회사를 마무리하면서 나의 상반기가 끝난 느낌이었는데 6월의 끝자락이 다가오니 진짜 6월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다이내믹했던 '여름이었다' 싶어서 요주의 인물들과 함께 회고+기록을 해보려고 한다. 정말 어릴 때는 지루해죽을 것 같았던 시간들이 이제는 껑충껑충, 제멋대로 질주하는 느낌이다. 아직 한여름이 다가오지도 않았는데도 한 달하고 보름 더 지나면 처서 오고 서늘한 바람 불것네 싶다.




1. 친구 Y

어디선가 석천이 오빠가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으니 잔치할 일이 없어 이태원에서 본인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하는 거라는 말에 영감을 받은 친구 Y가 성대한 마흔잔치를 했다. 아니지 이제는 서른아홉이지. 누가 뭔가 한다고 하면 그래 니 좋으면 됐지 하는 편이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정말 성대했다. 한강에서 요트를 대여했고, 레스토랑을 대관해서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였다. 중생구제를 업으로 했던 친구이긴 했지만(KOICA 다녔음) 정말 이 정도 스케일일 줄은 몰랐다.


스케일도 스케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여러 사람들을 겪으며 마음고생이 많았던 친구의 혹독한 계절이 드디어 지나가고 그녀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봄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불편해하는 나도 그날만큼은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Y가 어떤 사람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상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상하다는 말은 그녀가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을 넘나드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대단하다는 말은 정말 말 그대로 '어나더 레벨'이라는 뜻이다.


늘 나를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드는 Y, 나의 30대 후반이 알 수 없는 서글픔으로 차는 것보다 웃을 일이 훨씬 많을 수 있었던 건 다 이 친구 덕분이다. 진심으로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고 앞으로도 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웃으면서 지내자고 꼭 전하고 싶다. 사랑한다.


2. 구)팀원 현)친구 R

팀장-팀원으로 만났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퇴사하면 친구 하자고 공공연하게 말해왔었다.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왠지 R이랑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R은 그런 사람이다. 우리 팀에 돌 같은 디자이너가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은 바위 같았고 한 명은 짱돌 같았다. R은 짱돌을 담당했다. 머리도 좋고 전완근이 발달해 돌팔매질도 아주 좋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비로소 내가 얼마나 혹독하고 별로인 환경에서 일을 했는지 더 느끼게 되었지만, R이 나의 '측근'으로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든다. 그만큼 든든했다.


그래서 자꾸 두고 나온 그녀가 마음이 쓰인다. 처음에는 일도 워낙 잘하고 단단한 사람이라 제일 걱정 안 한다고 큰소리쳤지만 내가 그녀에게 많이 의지한 것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그녀와 사람 인(人) 자처럼 기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가 없어서 힘들 것 같다는 생각보다는 워낙 환경이 나쁘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쪼르륵 기대고 버텨왔던 사람들이 겪을 헛헛함 같은 것들을 잘 헤아리질 못했다. 다들 밖에서 더 자주 많이 보고 싶지만 나만 쏙 나와버린 것이 염치가 없다.


다정도 병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사빠죄아'에 입각하여 나는 R에게 더 좋은 친구이자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한다. 사회적 성공이나 더 높은 지위 같은 것을 쟁취하는 것에는 '굳이?'라는 생각이 들어 심드렁하지만 그것들로 인해 R을 비롯한 나의 팀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와이낫, 쌉가능. 뭐부터 하면 됩니까. 그만한 멘탈 레드불이 없지. 어서 우리 R과 평일 낮에 고트델리 가서 잠봉뵈르 먹고 MMCA 전시 같이 보는 날이 오게 되길.


3. J 대표님

오늘 가만 따져보니 J 대표님을 뵌 지 아직 석 달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벌어져서 몇 년은 알고 지낸 분 같다. 이상하게 내 기준으로 하는 짓 대비(?) 여기저기 동네방네 많이 치이고 다닌 나의 입장에서 참 고마운 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분이다. 방금 말한 것처럼 여기저기 치이면서 사람에 대한 의심만 많아진 나는 대표님이 나에게 보여주시는 선의를 계속 의아해했었다. 사실 의도가 읽히지 않았기 때문에 의심스럽지는 않았고, '아니 왜 나한테 잘해주는 거예요' 정도의 느낌이랄까.


워낙 경험이 풍부한 분이시다 보니 해주시는 말씀이나 피드백 하나하나 주워 담기 바쁘다. 이제 고작 두 번 뵙고 통화만 몇 번 했는데도 내가 간파당하는 느낌. 너무 무섭고 짜릿하고 이상하고 쫄리고 그렇다. 늘 첫째로 자랐고, 가족 밖의 여러 관계 안에서도 언니로서의 아이덴티티 비중이 더 컸던 나는 나보다 더 언니, 오빠, 선배들의 말을 듣고 싶어 했고 내가 맞는지 확인받고 싶어 했었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사람들에게 휘둘리기도 하고 나의 마음을 받을 자격이 없는 엉뚱한 사람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고, 허탕도 많이 쳤다.  


그런데 J 대표님은 본인을 따라오라는 제스처보다는 옆에서 같이 걸어주시는 느낌이다. 내가 남자한테는 금방 잘 안 빠지는데 멋진 여자들한테는 금방 빠져버리는 스타일이라 그런가. 40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일과 함께 나이 먹어가는 이 과정을 특유의 웃음과 함께 지켜봐 주실 선배님이 한 명 생긴 느낌. 나도 후배들에게 10년 뒤쯤 저런 도움을 주고 저런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분이다. 사실 아직도 대표님을 만나게 된 것이 얼떨떨한데 왠지 앞으로 이런 일들이 더 많이 생길 것 같다.




6월 한 달은 정말 큰 걱정없이 보낸 것 같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났고, 가고 싶었던 곳에 갔고, 좀 또라이 같지만 '솔삼씨, 지금 이걸 해드리면 되나요?'하고 스스로를 대접하기도 했다. 좋은 하루가 모여 좋은 삶을 만든다는 카피는 정말 내가 썼지만 너무 잘 쓴 것 같다. 6월의 좋은 하루들을 모아놓고 보니 이렇게 뿌듯하고 행복한데. 소중한 하루들을 공들여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오늘만 산다는 말이 예전에는 그렇게 객기처럼 들리더니 이제는 삶에 대한 애착이 있는 수수하고 멋진 어떤 사람의 말처럼 들린다.


7월도, 남은 하반기의 하루들도 잘 모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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