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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석 Oct 15. 2021

서광

Cheesecake Vol.1 - Spring, Again

”중독물질로부터 담배는 제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요. 사람들한테서 한 발짝 물러서야 하고, 냄새도 지독하잖아요.“

”그럼 당신이 선호하는 중독물질은 뭔데요?“     


내가 묻자, 미겔은 잠시 분수대로 시선을 돌렸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야 자기혐오죠.“     


미타니 카사니, 동전이 떨어지는 곡선을 미분하는 사나이 中     




  봄입니다. 사실 뉴스에서도 봄이라고 얘기하고, 나무들도 슬슬 잎을 틔우려고 하는 걸 언뜻 본 듯하여 봄이라고 했을 뿐이지 실상 그렇게 진심으로 와닿는 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아직 날씨도 춥고, 꽃이 핀 것도 아니라서 누군가 봄이 아니라고 얘기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뭐, 그래도 올해가 되고 달력을 두 장이나 넘겼는데 관념적으로 봄이라고 할 수는 있는 거겠지요?     


  개인적으로 봄이라는 계절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단, 저랑 그다지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고 하는 편이 맞겠군요.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봄이라고 하면 화사한 계절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밝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요. 다만, 이제껏 살면서 요즘만큼 봄을 갈망하던 적이 없는 것 같아 다소 이르게 봄이라고 서두를 띄웠던 것도 있습니다.      


  사실 지난 며칠이, 개인적으론 너무나도 길었거든요.     




  조금 쌀쌀했지만 하늘은 맑았던 날이었습니다. 그래도 춥다고 할 정도는 아니어서, 간만에 가벼운 차림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겨울 옷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밖을 나왔는데도 어깨가 가벼우니 기분이 퍽 좋더군요. 그렇게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서촌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동안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군요. 잠시 그러다가 말겠지 생각했지만, 검게 변해버린 구름은 어느새 굵은 빗줄기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서촌 근처까지 도착해 버렸고, 돌아가기에는 아까워서 그냥 계속 가기로 했습니다. 운 좋게도 버스에서 내릴 때는 비가 어느 정도 잦아들어서, 우산 없이도 다닐 정도는 되었습니다.     


  그게 그때의 내겐 꽤 기분 좋은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버스 안에서 비에 쫓겨 허둥지둥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시간이 잘못 맞았다면 버스 안에서는 비가 거의 오지 않다가, 내리자마자 비가 쏟아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었을 테지요. 덕분에 우산을 사야겠다는 생각도 잊은 채로, 그대로 가려던 카페로 들어갔습니다. 사실 혹시 이따가 비가 더 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감정에 취해 잊어버리기로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혹시는 언제나 역시와 뗄 수 없는 동반자인가 봅니다. 뒤틀어진 운의 균형추를 맞춰야겠다는 듯, 카페를 나올 때쯤 기어이 먹구름은 온 힘을 다해 모든 것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까 우산 샀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을 몇 번을 되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소 깊이 들어온 탓에 근처엔 편의점도 없었고 정류장까지도 거리는 꽤 되어서, 별 수 없이 비를 맞으며 가 보기로 했습니다.     


  날씨가 아직 덜 풀려서인지, 아니면 간만에 입은 얇은 옷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인지, 생각보다 차가웠던 비에 몸이 많이 놀랐던 것 같습니다. 집에 겨우 도착하기는 했지만, 옷과 머리칼은 이미 흠뻑 젖어 빗물과 진흙에 신발장이 엉망이 되어 버렸을 정도니까요. 결국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샤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신발장을 치우고 나서야 겨우 몸을 누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자기 전에 몸이 떨리고 오한이 들더니 급기야 다음날부터는 열이 펄펄 끓기 시작했습니다. 비를 맞을 때만 해도 놀라고 끝나던 몸은 비명을 지르는 것 같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해도 물에 푹 적신 솜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집에 해열제도 있고,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스턴트 죽도 미리 사 둔 덕분에 어느 정도 몸조리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혼자라는 사실에 늘 개의치 않는 편이었는데, 아플 때 덩그러니 혼자 있는 건 퍽 서러웠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머리도 많이 복잡해지기도 했지요.     


  첫날은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는데, 문득 내가 왜 앓아눕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조금 기분 좋은 거 참고 작은 우산이라도 미리 하나 샀으면 이 정도까지 아프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보다 그게 그렇게 기분 좋을 일이었나? 애초에 서촌은 왜 가려고 했을까? 그때라도 계속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날씨라도 찾아보고 갔으면 우산도 챙기고 옷도 그것보단 두껍게 입었을 텐데. 아니, 굳이 나갈 일도 없었으니 집에 있어도 되지 않았을까?     


  나는 그날의 후회로 머릿속이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하게 헝클어지다가, 죽을 데우던 전자레인지의 조리 완료 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아득해졌던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겉이 뜨거워서 안심했지만, 속은 차가웠습니다. 조리시간을 맞추지 않았던 까닭이었습니다. 바보같이.     


    이튿날 아침에는 엊저녁에 먹었던 죽을 도로 게워내야만 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참을 수 없는 구역감에 지배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건,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필사적으로 화장실로 가는 것뿐이었습니다.     


  결국 먹은 것은 제로로 돌아갔지만, 역한 기운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만 신체의 반응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구역감이었다는 게 조금 달랐습니다. 이 지경이 되고 나니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뭔가 잘못이 있었다기보단, 맘 편히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을지도요. 아무튼 갑작스러운 자기 혐오와 우울감에 휩싸인 나는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습니다.     


  먹은 것도 없고 실컷 울고 나니 정말로 온몸에 기운이 빠져버렸습니다. 마치 내 몸과 접촉한 모든 것이 에너지를 뺏어가는 듯한 느낌. 사실 병원을 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사흘째가 되니 그래도 열은 조금 내린 것 같았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움직이기 힘들 것 같아 조금 식사를 하고, 간신히 채비를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다행히 생명에 위기를 느낀 건지, 이번엔 도로 올라오지 않고 얌전히 소화를 시키려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심하게도 하늘은 사흘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빗방울이 굵지는 않았지만, 기운을 있는 대로 소진한 환자에겐 그 정도의 비도 꽤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걸 그 때 알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지난 이틀간의 병치레가 무색한, 놀라울 만큼 무미건조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채 10분도 되지 않아 진료가 끝나고, 바로 옆의 약국에서 약을 지어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과정은 담백하게 서술했습니다만, 사실 가는 길만큼이나 돌아오는 길도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할 일들이 끝나고 나니, 혼란스러웠던 머리가 그제야 조금은 차분해졌습니다. 그리고 어제의 일을 조금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 나는 어제 그런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는지 말이죠.     




 사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꽤 힘든 일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나한테는 어려운 일이었어요. 적당함을 추구하면서 산다는 아름다운 명분은 몰두하며 사는 누군가를 보면 와르르 무너지고, 하나에 뜨겁게 집중하는 정열은 내가 이루어낸 것 이상의 성취를 볼 때 싸늘하게 식어 버렸습니다. 그런 것이 자극이자 추진제가 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오만한 나에게는 포기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날 뿐이었지요.    

 

  온 세상에 나를 부정할 이유를 만들어두고, 굳이 그런 기억을 끄집어보며 상처를 받습니다. 마치 굳은 피딱지를 뜯으면 따끔하고 피가 나지만, 간질거리는 그 느낌과 긁을 때의 시원함이 좋아 자꾸 뜯어나는 것 같이 말이죠. 흉진 상처처럼 스스로를 향한 혐오는 깊어져가지만, 미워하면 일순간 편할 수 있거든요. 나는 원래 이런걸, 하면서요.     


  그런 삶을 이어가다 보니, 모든 경로에 스스로 커다란 장벽을 짓는 꼴이 되었고, 오히려 사소한 곳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기형적인 성격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비를 운 좋게 피했다는 것조차도 진심으로 기뻐할 만큼 뒤틀려 버린 그런 성격이 되었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그땐 조금 슬프더군요.    

 

  그런 생각에 골몰해 있을 때쯤, 어느덧 다음날 새벽이 와 버렸습니다. 잠을 방해받지 않고 싶어서 쳐 놓은 두터운 커튼이 빛을 막으려고 했지만, 바람이 불면서 커튼을 살짝 젖히고 아직은 어렴풋한 빛줄기가 들어오며 방 한 켠을 비추었습니다.     


  일순간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내 마음 속에 물들인, 나에게 향한 미움을 밀어내는 빛처럼 느껴졌습니다. 타방정토에서 곧게 뻗어 나온 듯한 한 줄기의 서광은 느껴본 적 없는 따뜻함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그때만큼은 사람들이 봄을 기다리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그저 계기가 필요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나를 미워할 계기도, 나를 보살필 계기도. 어쩌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사건이지만, 그 빛을 계기로 나는 나를 조금이라도 사랑할 수 있게 노력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 계기가 방 안에 한 번 비친 새벽 햇빛임을 듣고 모두가 크게 웃을 때, 같이 크게 웃으며 넘겨보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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