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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 Oct 20. 2023

겨울이 좋은 이유

가장 따뜻한 계절


하얀 눈 펑펑 내리는 서울역.

얇은 수면바지를 입고 추위에 얼굴이 

빨갛게 얼어있던 노숙인이 

출근길 걸음을 재촉하던 한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저, 너무 추워서 그러는데 커피 한 잔만

 사 주시면 안 됩니까..”

그 남자를 노숙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기의 점퍼를 벗어 노숙인에게 입힌다.

그리고 장갑을 꺼내 손에 끼워준 후, 

돈 5만 원을 쥐어 준 후 총총히 사라진다.  


이 이야기는 한 기자가

 대통령의 신년간담회를 보기 위해 모인 시민들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역 광장 대합실에서 대기하다가 

아침 일찍 하얗게 내리는 눈을 보고 

출근길 시민들의 찍기 위해 카메라를 돌리던 중

불과 34초 동안 찰나같이 벌어진 

이 소설 같은 장면을 찍으면서 쓴 이야기다.

노숙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본 후, 

그 남자를 쫓아갔지만 

이미 그는 시야밖으로 사라지고 난 후였다.

“그냥.. 너무 추워서 커피 한 잔만 

사달라고 부탁했을 뿐인데...”

노숙인도 그날 그가 건넨 한 마디로 

낯 모르는 사람이 베푼 선의에 

얼떨떨한 것 같았다.     


어느 날 어린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어떤 계절이 제일 좋아요?”

“여름.”

“왜요?”

“여름에는 얼어 죽는 사람이 없으니까.”


어떤 계절을 제일 좋아하느냐는 질문은 사실 

감성적인 취향을 묻고 대답을 원했던 거다.

그런데 아빠는 감성 따윈 상관없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화두로 올려 

계절이 주는 ‘감성(感性)’을

 ‘인정(人情)'의 영역으로 전환시켜 버렸다. 

    

얼어 죽는 사람이 많은 겨울이, 

너무 안타까웠던 그 마음이 

비단 아빠에게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찬 바람이 강한 크리스마스 저녁, 

동네 어귀에서 찹쌀도넛 장사를 하던 

부부의 손수레로 양복입은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여기 도넛 다 포장해 주세요" 한다.

슬쩍 보니 

70개 정도로 2~3만 원어치 정도 

될 양이라 

주인아저씨가 좋아하면서 포장하는데, 

그 아저씨는 5만 원짜리 3장

(아마 지갑에 있던 모든 돈이었듯 싶은)을 

내밀며

"오늘 바람이 너무 추우니 

집에 빨리 들어가세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도넛부부는 연신 감사인사를 건네는데

그 양복 입은 아저씨는 곁에 있던 

다른 이에게도 

도넛을 나눠주고 총총 사라졌다.


추운 겨울은 몸은 얼어붙었는데 

마음에 장작불을 지피는 

훈훈한 이야기들이 많아 더 좋았을까.     

올 겨울 북극에서 내려온 찬바람과 기습적인 

폭설은 퇴근길 시민들의 발도 묶고, 

도로의 차들을 모두 널브러지게 만들었다.

공회전만 반복하며, 나아가지도 못하고 

차선도 잃어버려 여기저기 갈 길 몰라 

미아가 된 도시 한 복판의 수많은 차들..

어디선가 한 무리의 시민들이 나타나, 

갈 길 잃은 차들을 밀기 시작한다..

헛바퀴만 돌리던 차들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곧 제 길을 간다. 

그날 신문에는 폭설로 도로가 감옥이 되었다며 

늦은 제설작업을 탓하며 

분노한 시민들의 이야기로 온통 넘쳐났는데, 

그 분노의 와중에도 얼어붙은 땅 위에서 

다른 이의 차를 힘껏 밀어주던 시민들의 모습이 

외신기자들의 눈에는

 ‘분노’보다 ‘신비’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영국에서는 한 간호사가 폭설로 

모든 교통이 마비되자 

새벽 눈길을 2시간 반을 걸어 병원에 

출근한 이유가, 

코로나로 고생할 동료와 

환자들때문이라고 했다지..     


성경에서 예수님은 천국에 온 

의인들에게 

"너희들은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도 주었고 

나 그네였을 때 맞아주었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혀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 돌보아주었다"

라고 말씀하셨다.

희한한 그 의인들이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였나요?" 

라고 물으니 대답하시기를

"내가 진심으로 말하는데 너희들이 

너희 이웃들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란다.."


가진 게 없어 추위가 더 서러운 

사람들이 많을 겨울, 

그 겨울이 그래도 좋은 이유..

살을 에는 추위도 녹일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 작은 사람과 

내 작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마음들이

어디선가 가장 낮고 작은 자의 모습으로 숨어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온 대지를 덮는 하얀 눈처럼 소복이 내려 

시린 사람들을 덮어주는

가장 따뜻한 계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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