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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예영하는 오드리 Oct 21. 2022

문학과 예술의 기묘한 만남 10

루이제 린저+마리 로랑생 =가슴이 미어지는 아픈 사랑의 흔적을 그리다

10. 루이제 린저(삶의 한가운데) + 마리 로랑생(마드모아젤 샤넬의 초상화

    = 가슴이 미어지는 아픈 사랑의 흔적을 그리워하다

     

이 가을 유난히 맑은 하늘을 바라보니 왠지 가슴 한켠이 아려지면서 옛 사랑이나 추억을 들추어보게 된다. 이런 마음을 잘 알기라도 하듯이 생각나는 책이 있다. 바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이다.

처음에는 좀처럼 잘 읽혀지지 않았던 책이지만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이 주는 변화인지 책장에서 눈과 손이 저절로 향하게 되었다.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는 독일인으로서 2차 세계대전을 겪고 수많은 정치적 망명자를 비밀리에 도우며 반나치활동에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고 열정적으로 활동한다. 이로 인해 교도소에 수감도 되고, 평생동안 정부로부터 감시를 당하며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 젊은 니나는 격동적인 삶의 한 가운데서도 자신의 자유의지를 잃지 않고 온갖 역경을 극복해간다. 한 개인으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뺏길 수 없다는 듯이 희생당하지 않을 존재의 이유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말이다.    

 

혼란스런 시대에 한 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니나와는 달리, 나이 지긋한 중년의 의사이자 대학교수로 절제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슈타인. 그는 열정적인 니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자신과 너무나 다른 그녀를 자신의 곁에 둘 수 없어 괴로워하고 결국 건강까지 잃게 된다.

슈타인은 뛰어난 인품과 명예로 주위에 존경을 받지만 니나를 만나기 전까진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없이 방어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니나를 만나게 되면서 주체할 수 없는 불안정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정신적으로 예민하고 유약한 그는 니나와 그녀의 삶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의 순간들도 자초하게 된다.      

  

어디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니나는 늘 위태한 상태였기에 슈타인에게서 여러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의 묵직한 사랑을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분명 둘은 사랑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고, 니나는 다른 남자 사이에서 임신하고 자살기도까지 하게 된다. 슈타인은 감당하기 어렵지만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도와주면서 곁에 두고 싶어한다. 결국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니나를 놓아주게 된다. 


“나는 나에게는 없고 그녀에게만 있는 그녀의 순수하고 강한 특성들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다름 아닌 그녀의 용기와 생에 대한 집요한 호기심, 단호함을 말이다.”

“니나는 스스로 삶 속으로 가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 그녀는 해낼 것이다.”

니나는 이런 슈타인의 지지와 응원을 받으면서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슈타인은 그녀에게서 삶의 의지를 찾아내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놓아버린다. 시간이 지나고 슈타인이 그녀에게 보냈던 편지를 나중에 읽게 되면서 그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그의 진심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그녀가 슈타인이 남긴 편지를 통해 지금은 그의 진정한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그녀도 아련한 추억에 빠져보지만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임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 이 책의 진수가 아닐까 싶다. 지나가버린 사랑과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요즘 동양적인 수묵화같은 기법과 옅은 파스텔톤으로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색채로 나의 마음을 끄는 여성 화가 작품이 있다. 바로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류화가이자, 영화같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마리 로랑생이다. 마리 로랑생은 1883년 프랑스 파리에서 아버지 없이 사생아로 태어났다. 귀족 가문의 아버지는 그녀를 호적에 올리는 것을 원치 않았고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면서 그녀를 키워냈다. 


마리는 19세기 당대 혁신적인 물랑루즈 포스터를 그렸던 툴루즈 로트렉과 아카데미 전통에 반기를 들었던 마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녀는 20대에 입체파 화가 조루즈 브라크의 소개로 피카소를 알게 되고, 아폴리네르와 살몽 등의 유명한 시인들과도 접하여 입체파 예술의 강한 영향력 한 가운데에 있게 되었다.     

마리 로랑생은 당대 프랑스의 유명하고 다양한 예술과들과 교류하였다. 그 당시 여성이 예술계 인사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작품활동을 펼쳐보일 수 없었던 시대였기에 마리 로랑생의 이런 행보는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가 되었다.그러다가 피카소의 소개로 시인 기욤 아플리네르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기욤과 마리는 예술적 소울메이트로서 정서적 공감대가 많았는데 아마도 기욤의 시적인 감수성을 마리는 자신의 그림에 섬세하게 담아내고, 마리의 묘한 신비감을 주는 표현력을 기욤은 시적으로 풍성하게 표현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마리 로랑생의 연인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억울하게도 1911년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그들의 관계는 어이없이 끝이 나게 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된 작품들을 훔친 도둑이 아폴리네르에게 찾아와 작품의 진위여부 감정을 부탁하게 되고, 공의감에 불탄 기욤은 그 도둑이 훔친 작품들을 도로 루브르 박물관장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오히려 루브르 박물관장은 기욤을 도둑으로 몰아 우연히 정의롭게 개입했던 일로 어처구니없이 집안을 수색당하고 탐문을 당하게 된다.     

이 모나리자 도난사건 때문에 피카소까지 기욤 아폴리네르와 친하다는 이유로 법원에 끌려가면서 사건의 파장이 점점 커져갔다. 이에 아폴리네르는 너무나도 억울하고 섭섭한 마음에 연인인 마리 로랑생에게  위로받고 싶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리 로랑생은 그녀대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예술가로서의 삶과 결혼이라는 삶의 갈림길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런 사건에 휘말린 아폴리네르를 이해할 여력이 없었고, 이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그를 떠나게 되었다. 

    

마리 로랑생은 결국 기욤 아폴리네르와 헤어진 후 독일 남작 오토 폰 바트겐과 결혼한다. 하지만 알콜중독이었던 그와는 얼마 후 이혼하였고 독일국적자인 상태로 독일과 프랑스에 쫓겨나면서 유럽에서 유랑생활을 하게 되었다. 1918년 11월에 그녀는 아폴리네르가 그녀를 너무나 그리워한다는 편지와 함께 그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전사하였다는 비보편지를 동시에 받게 되었다. 마리 로랑생은 전쟁으로 인한 불안한 이민생활과 아폴리네르의 전사소식에 얼마나 혼란스럽고 괴로웠을까? 아폴리네르와 헤어지고 나서 주위에서 여러 비난을 감당해야했고 불행한 결혼 후 이혼이라는 여러 연속적인 시련으로 그녀의 마음을 붙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녀의 그림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리 로랑생의 작품 <마드모아젤 샤넬의 초상,1923> 에서 무채색과 옅은 녹색, 붉은 색이 어우러져 코코샤넬은 어둠 속에서 아련한 추억 속에 잠긴 듯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정작 코코샤넬은 자신의 진취적인 강인한 여성상이 아닌 나약하고 나른해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샤넬이 아닌 마리 로랑생 자신의 내면 속에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은연 중에 담겨 있는 듯하다.  그녀는 자신의 극적인 삶의 여정, 즉 어릴 적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 금새 뜨거웠던 사랑, 어처구니 없는 이별, 독일 귀족과의 불행한 결혼, 이미 예정된 이혼, 전쟁으로 인한 스페인에서의 이민생활, 독일 국적에서 프랑스 국적을 되찾기까지의 힘겨운 투쟁 과정 등을 자신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그녀는 내면의 아픔과 시련,상실의 감정들을 작품 속 여성들의 검정 눈동자가 가득한 눈망울에 담아 보는 이로 하여금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리며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해주고,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듯한 느낌을 몽환적으로 준다.


그녀는 아폴리네르를 생각하며 많이 슬퍼했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의 소울메이트였고,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를 떠났던 것을 무척이나 후회하며 가슴아파했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그녀가 선택한 최선이었지만 인생은 절대로 마음 먹은 대로 살아지지 않으니 말이다. 마리 로랑생과 기욤 아폴리네르는 20세기 초반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커플이었고, 서로에게 인생과 예술의 뮤즈가 되었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어이없는 오해와 열악한 여건으로 혜어질 수 밖에 없었던 불운한 커플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런 정서적 우울함이 그녀의 작품내내 우리를 안타깝게 불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아한 여인들의 가득찬 검정 눈망울이 반짝거리며 계속 여운을 남긴다.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와 마리로랑생의 <마드모아젤 샤넬의 초상>을 보고 있노라니 혼란스런 시대와 상황에서 사랑의 진가를 제대로 보지 못해 일생 일대에 한번 만나기 어려운 소울 메이트와 헤어지고 얼마나 큰 후회와 상실감에 빠지게 되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나마 이들은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낼 수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평생 자신만을 사랑해 준 영혼의 반쪽을 잊을 수 없기에 작품으로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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