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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색가방 Jul 21. 2020

이게 다 피자빵 때문이다.

- 신인 시나리오 작가 집필 일기, 세 번째 질문 -

하도 우려먹은 내 이야기 중 하나다. 내 주변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늘 내가 듣는 질문 중 하나의 답변이기 때문이다.     


“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음... 피자빵 때문에요.”
  

부산 여행 중 만난 타자기... 언젠가 타자기를 구입해보고 싶다.

사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글 쓰는 것이 귀찮았다. ‘굳이 팔 아프게 왜 글을 쓰지’라고 할 정도로, 토론할 때도 키워드만 적어두고 즉흥으로 말하는 걸 즐겼다. (그때는 참 말을 잘했는데... 지금은 사라진 것 같다.) 국어 시간마다 선생님들이 시키는 개요 짜기는 정말 하기 싫었다. (이건 사실 지금도 그렇다. 영화사랑 계약한 후, 피디님이 나의 작업 스타일을 듣고 놀라셨으니... 기획안부터 트리트먼트, 시나리오까지 가는 그 단계를 찬찬히 밟았던 1년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정말 어이없게도 피자빵이 시작이었다. 국어 선생님이 어느 백일장에 나가면 피자빵과 USB를 준다는 말씀을 하셨다. 중1이었던 나는 그 말에 혹했다. 참 지금 생각해도 너무 단순했다. 가기만 해도 무언갈 준다는 생각에 혹해서 간다고 했던 것 같다.      


그 백일장은 전국 단위의 꽤 큰 규모여서 우리 동네에서는 1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고등학교에서 진행되던 대회였고, 그날은 심지어 비도 왔다. 그날 살짝 늦을 것 같아 비가 오는 운동장을 뛰었던 기억이 난다. 철벅거리며 뛰어갔던 운동장과 낯선 교실, 남의 책상, 비가 주룩주룩 흘러내리던 큰 창문이 선명하다. 그리고 제시어는 ‘산불’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우리나라 국민이었다면 한 번쯤은 해봤을 ‘산불 금지 포스터 대회’, 또는 ‘표어 대회’, 나는 주로 포스터 대회에 참가했었다. (다시 생각해도 나는 글 쓰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참으로 지루한 제시어라고 생각했고, 같이 갔던 애들한테 ‘어떡해’라고 입 모양으로 속삭였다. 나는 이미 교실에 들어오면서 피자빵과 USB는 받은 상태였으니 목표는 달성했다. 잠시 멍하니 원고지를 내려보았다.      


그러다 정말, 어떠한 이유도 없이, ‘누가 이곳을 아름답다 했는가.’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이 문장을 11년이 지난 지금에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머릿속에 불타버린 산을 보고 있는 할아버지와 그 옆에 있는 소년이 떠올랐다. 동시에 공사장에서 일어난 불이 산불을 일으켰다는 뉴스가 생각났다. 정말 순식간에 작은 플롯을 완성했다.      


‘자연을 사랑하며 산속에서 살던 할아버지와 손자가
재개발 공사로 일어난 산불로 인해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잃는다.’     


글쓰기는 싫어했지만, 다행히도 책 읽기는 좋아했던 나였기에 그 짧은 소설(콩트 정도 되는 길이, 원고지로 12매 정도로 기억한다.)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리저리 읽었던 책에서 사건들을 어떻게 배치했었는지를 떠올렸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맨 처음 떠올렸던 문장은 그 소설의 맨 마지막 문장이자, 제목이 되었다. 그리고 그 소설은 입상했고, 30만 원이라는 그 당시 내게 엄청 큰 상금을 안겨줬다. 전화로 수상 축하한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건, 그렇게 그 소설을 완성하는 내내 내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는 점이다.     

그렇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어느 순간에도 그렇게까지 심장이 뛰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찰나의 순간 심장이 뛰었다는 이유로 계속 글을 쓰고 있다. 이 길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을 수십, 아니 수백 번, 시간으로 따지면 몇 년을 했다. 지금도 하고 있다.

어느 겨울 마주한 기찻길의 모습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BGM – g.o.d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새벽에 노트북을 켜서 내가 하는 것이 글쓰기다.     



오늘의 질문

Q. 여러분은 왜 글을 쓰기 시작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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