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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Aug 23. 2021

월요일, 최근의 삶

현재의 나에게 월요일은 휴일이다.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주말 지난 후유증 월요병이 생긴다는 요일이지만 내게는 주말과도 같다. 그리 힘든 일을 하는 것도, 대단한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아직 출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매일을 보낸다. 거기에 쉬는 날은 더 감사하기 마련이다. 지난주처럼 대체 공휴일이 주말 다음 월요일로 정해질 때면 나에게는 월요일이 원래 휴일이라서 상관없다는 게 좀 아쉽지만.


- 쉬는 날에는 뭘 하세요?


얼마 전 누가 나에게 물었다.


- 글쎄요. 그냥 거의 집에 있어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바로 지난 휴일에 나는 뭘 했던가? 워낙 외출을 즐겨하지 않는 데다가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 만남을 미루다 보니 이젠 외출이나 약속을 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일상이 되었다.


- 그럼 집에 있을 때는 주로 뭘 하세요?


- 음... 책을 읽거나, 누워서 뒹굴뒹굴하거나. 딱 하나 매주 하는 게 있다면 일요일 아침에 TV에서 하는 영화 프로그램을 보는 거예요.


이런 질문을 주고받아 본 지가 언제인가 싶은 마음과 그런데 나는 휴일에 대체 뭘 하면서 지내는 거지 하는 마음이 동시다발적으로 밀려들었다. 내가 흘려보내고 있는 최근의 삶에 대한 고찰이 시작될 절호의 기회였는데, 나는 그마저 금방 잊어버렸다.




오늘 휴일 월요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우선 2주 전에 떨어진 고지혈증 약을 받으러 병원에 가야 한다. 몇 달간 먹던 약을 끊어도 될지 검사해 보자며 다음에 병원에 갈 때는 금식을 하고 오라고 했다. 꼭 금식 때문 만은 아니지만 이래저래 벌써 2주간 미뤘다. 오늘은 꼭 가려고 어젯밤 맥주 한 잔도 참았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마음이 변했다. 약 안 먹어도 크게 이상 없는데 그냥 가지 말까? 어차피 끊으려고 검사하려던 거잖아. 그동안 너무 착하게 꼬박꼬박 의사 말을 잘 들은 거 아닌가? 꾸물꾸물한 하늘에 나가기 귀찮은 마음이 한몫 보태어 결국 나는 느긋한 아점을 먹고 병원 방문하려던 계획에 빗금을 그었다.


두 번째는 몇 달간 어영부영 이어오던 온라인 세미나의 과제하기.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일정 부분의 책을 읽고 과제를 써야 하는데 하다 말다 몇 달이 지나 이번 달에는 제대로! 해 보려는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매주 갈등하고는 있지만 아직 과제를 놓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아직 글을 한 페이지도 읽지 못했다. 요즘 내가 빠져 있는 어떤 사람 때문이다. 한 오 년 전쯤, 아니 십 년 전쯤에도 나는 어떤 사람에게 푹 빠졌었다. 십 년 전에는 애교 수준이었고 오 년 전에는 내 인생 최대의 '덕질'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이 사십 무렵에 처음으로 팬카페라는데 들어가 보았던 나는 그들의 지나친 열정과 나름의 횡포(?)에 금방 두 손 들고 나왔었다. 하지만 마음이 커지면 그런 것들은 가뿐히 무시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사십 년 가까이 덕질하는 사람들을 1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제대로 덕통 사고가 났던 무렵이었다. 그렇게 남들 하는 거 다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넘치는 팬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던 시절을 지난 것이 사십 대 중반이었다.

그러다 조금 잠잠해졌는데 최근에 나는 다시 어떤 한 '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오 년 전과는 또 다른 패턴으로 '덕질'을 시작했다. 오 년 전만 해도 이 정도로 유튜브 콘텐츠가 넘쳐나지는 않았는데 영상도 넘쳐나지만 '알고리즘'이라는 괴물 앞에 나는 폰을 손에 들고 유튜브 영상을 여는 순간에 바로 그 제물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내가 찾으면 찾을 수도 없는 오래된 자료까지 찾아주니 고맙다고 해야 하려나. 아무튼 요즘 내 시간들은 그리로 흘러간다. 퇴근 후 시간에 그런 사정이니 매주 시간 맞춰 과제하기에 허덕인다. 오늘은 내가 보고 싶은 대로  편집하다가(그것도 또 나름 덕질의 진화라 하겠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내 마음에 걸리는 과제를 지금이라도 할 것인가, 계속 마음이 끌리는 일을 할 것인가. 다행히 빨리 해치우자는 마음이 이겨서 대충 과제를 마쳤다. 얼른 하고 그를 보려는 추동력으로.


이제 세 번째 해야 할 일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쓰기. 바로 지난주에 은밀히(?) 매주 월요일 뭐라도 쓰자고 마음먹어놓고, 물론 나 혼자만의 약속이긴 하지만 오늘 그만두면 다음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 폰을 손에 들었다. 이 폰에서 유튜브 앱을 누르면 내 오늘은 그것으로 끝날 것이었다. 하지만 유혹을 견디고 오늘의 글을 쓰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 사실 아침부터  머릿속에 장애물처럼 걸려있던 해야 할 일이 자꾸만 덜커덩거렸는데, 또 시작하고 보니 어려울 일도 아니다. 무슨 글을 써야 하나 오랜만에 고민 아닌 고민도 했지만 쓰기 시작하면 언제나 넘치는 말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던가. 앞뒤 안 맞고 의식의 흐름 대로라는 게 문제지만.



이제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다음 주 월요일, 내 휴일은 또 어떤 모양으로 채워질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이 일들이 꾸준하게 이어지길 바란다. 언제나 지속할 수 있는 새로운 즐거움으로 채워지길 기대하며.




인간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고귀한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그것의 지속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아카넷, 7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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