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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Sep 08. 2021

일 년 간 변치 않은 망설임

첫 출근을 한 지 꼭 일 년이 되는 날. 신도림역에서 고개를 숙인 채 계단을 따라 리드미컬하게 내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마치 좀비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일 년이 흘러 나는 어느새 무표정과 무감각의 좀비들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매일 건너는 당산철교 위에서 한강과 여의도의 빌딩과 너른 하늘을 황홀한 듯 바라보던 나는 이제 일 년 전 내가 의아하게 여겼던 사람들처럼 감흥이 다. 물론 지금도 다리를 건널 때면 들여다보던 책이나 스마트폰에서 눈을 들어 흘러가는 강의 풍경을 멍하니 보곤 한다. 하지만 그때와 같은 환희, 기쁨 같은 것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일 년 동안 또 달라진 것은 무엇이 있을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노련함이라는 것이 생겼을 것이다. 처음 생각에는 근무 시간이 짧으니 체력적으로 큰 무리가 없을 것이고 대신 나머지 시간에는 내가 원하는 어떤 것에 할애할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처음엔 적응하느라, 일을 손에 익히느라, 안 하던 일을 하는 고단함에 퇴근과 동시에 하루는 마감되다시피 했다. 이제 일 년이면 적응도 끝냈을 시간이고 슬슬 남은 시간들을 활용해 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긴 했다. 여전히 출근 시간에 맞춰 최대한 늦게 일어나고 저녁을 먹은 후엔 아무 생산적 활동 없이 마쳐야 할 마감이 있을 때만 거기에 약간의 시간을 쓰고 아니면 또 무의미한 시간을 흘려보낸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영상 편집을 하거나. 생각해보면 꽤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일정한 시간에 정해두고 하는 루틴이 없다 보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것만 같다. 그것도 어쩌다 마음이 내켜서라기 보다 마감에 쫓겨서다. 그럼 루틴을 정하면 되잖아? 평생 루틴 만드는데 신경 안 쓰고 살았고 이제 와서 하려니 삼 일을 넘기기 힘들다. 아침형 인간이 유행이라고 무작정 따라 하려고 했던 시절처럼 지금 내가 그런 걸까? 평생 루틴 없이 살았으니까 계속 이렇게 살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한 가지라도 정해서 지키려 계속 노력해봐야 할까? 변하고 싶지만 변하고 싶지 않아, 누군가 했던 말이 바로 내 마음인 것이다.




며칠 만에 하늘이 환하다. 오늘 아침 당산철교를 지날 때 보인 하늘은 예쁜 구름까지 머금었다. 자리에 앉아 하늘과 구름과 강을 바라본다. 일어나서 사진을 한 장 찍을까? 그럼 자리를 놓칠 텐데. 아무도 관심 없어 보이는 강 풍경을 사진 찍으면 남들이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시골에서 갓 상경한 사람처럼. 시골에서 갓 상경하면 창피한 건가? 남들이 안 하는 행동을 하면 민망한 건가? 일어나서 자리를 놓치면 아까운 건가? 일 년 전과 똑같은 것이 있었다. 언제나 반복되는 망설임. 나는 언제까지 이 당산철교를 지나 출근할 수 있을까? 오늘은 일어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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