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을 한 지 꼭 일 년이 되는 날. 신도림역에서 고개를 숙인 채 계단을 따라 리드미컬하게 내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마치 좀비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일년이 흘러 나는 어느새 무표정과 무감각의 좀비들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매일 건너는 당산철교 위에서 한강과 여의도의 빌딩과 너른 하늘을 황홀한 듯 바라보던 나는 이제 일 년 전 내가 의아하게 여겼던 사람들처럼 별 감흥이 없다. 물론 지금도 다리를 건널 때면 들여다보던 책이나 스마트폰에서 눈을 들어 흘러가는 강의 풍경을 멍하니 보곤 한다. 하지만 그때와 같은 환희, 기쁨 같은 것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일 년 동안 또 달라진 것은 무엇이 있을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노련함이라는 것이 생겼을 것이다. 처음 생각에는 근무 시간이 짧으니 체력적으로 큰 무리가 없을 것이고 대신 나머지 시간에는 내가 원하는 어떤 것에 할애할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처음엔 적응하느라, 일을 손에 익히느라,안 하던 일을 하는 고단함에 퇴근과 동시에 하루는 마감되다시피 했다. 이제 일 년이면 적응도 끝냈을 시간이고 슬슬 남은 시간들을 활용해 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긴 했다. 여전히 출근 시간에 맞춰 최대한 늦게 일어나고 저녁을 먹은 후엔 아무 생산적 활동 없이 꼭 마쳐야 할 마감이 있을 때만 거기에 약간의 시간을 쓰고 아니면 또 무의미한 시간을 흘려보낸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영상 편집을 하거나. 생각해보면 꽤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일정한 시간에 정해두고 하는 루틴이 없다 보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것만 같다. 그것도 어쩌다 마음이 내켜서라기 보다 마감에 쫓겨서다. 그럼 루틴을 정하면 되잖아? 평생 루틴 만드는데 신경 안 쓰고 살았고 이제 와서 하려니 삼일을 넘기기 힘들다. 아침형 인간이 유행이라고 무작정 따라 하려고 했던 시절처럼 지금 내가 그런 걸까? 평생 루틴 없이 살았으니까 계속 이렇게 살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한 가지라도 정해서 지키려 계속 노력해봐야 할까? 변하고 싶지만 변하고 싶지 않아, 누군가 했던 말이 바로 내 마음인 것이다.
며칠 만에 하늘이 환하다. 오늘 아침 당산철교를 지날 때 보인 하늘은 예쁜 구름까지 머금었다. 자리에 앉아 하늘과 구름과 강을 바라본다. 일어나서 사진을 한 장 찍을까? 그럼 자리를 놓칠 텐데. 아무도 관심 없어 보이는 강 풍경을 사진 찍으면 남들이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시골에서 갓 상경한 사람처럼. 시골에서 갓 상경하면 창피한 건가? 남들이 안 하는 행동을 하면 민망한 건가? 일어나서 자리를 놓치면 아까운 건가? 일년 전과 똑같은 것이 있었다. 언제나 반복되는 망설임. 나는 언제까지 이 당산철교를 지나 출근할 수 있을까? 오늘은 일어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