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미역국을 끓인다. 그는 결혼 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내 생일 미역국을 끓여준다. 생일 아침엔 미역국에 쌀밥과 고기반찬은 꼭 먹어야 한다고 내 생일 전날이면 장을 봐 온다. 나는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만 이제는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주지 않으면 서운할 것 같다.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일 때, 남편은 나에게 방법을 물었다. 친정 엄마가 아이들 봐주러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나는 엄마에게 남편이 미역국 끓여준 이야기를 했다. 내가 남편에게 미역국 끓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노라고. 국이 까맣게 되니까 간장을 넣지 말라고 했는데 간장을 넣어서 까만 미역국을 먹었다고. 엄마가 물었다. 미역국을 어떻게 끓이는데? 내가 남편에게 가르치듯 말을 이었다. 먼저 미역을 물에 불려. 너무 많이 넣으면 그릇 바깥으로 미역이 불어 넘치니까 조금만 담고. 쇠고기도 물에 따로 담가 핏물을 빼. 쇠고기는 핏물이 안 나올 때까지 몇 번 물을 버리고 새로 담가야 해. 미역이 적당히 불면 물을 꼭 짜서 핏물을 뺀 고기와 함께 넣고 참기름에 달달 볶아. 미역이 파랗게 변할 때쯤 물을 부어야 비린내가 안 나. 물은 냄비 가득 넣고 이제 팔팔 끓이면 돼. 쉽지? 한참 끓여서 국물이 뽀얗게 되면 간을 해. 맛소금을 넣어도 되고 그냥 소금으로 해도 되고. 간장을 넣으면 국물이 까맣게 되니까 간장을 넣지는 마. 미역국에 파는 안 넣는 거야. 마늘은 마지막에 넣어서 한소끔 끓여. 여기까지 얘기하는데 엄마가 말을 끊었다.
누가 미역국에 마늘을 넣어?
응? 마늘 넣는 거 아니야? 그럼,
미역국에는 마늘 넣는 거 아닌데. 마늘 넣으면 고소한 미역 맛이 다 사라져.
그래? 난 엄마가 끓여 준 미역국에 마늘 넣은 줄 알았는데.
엄마가 피식 웃는다. 엄마는 내가 아이 낳고 산후조리하는 동안 우리 집에서 미역국을 끓여 주셨다. 그렇게 많은 미역국을 먹으면서도 나는 엄마의 미역국에 마늘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몰랐던 것이다.!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뽀얗게 우러난 미역 국물에 조그만 하얀 마늘 알갱이들이 없었다는 것을. 계속 먹으면 질린다고 고기 넣고 끓였다가, 조개 넣고 끓였다가, 그냥 미역만으로 끓였다가 했던 엄마의 미역국. 그러고도 어딘가에서 한 번 먹은 미역국에 들었던 마늘 조각이 인상에 남았나 보다. 아, 어쩐지 맛이 좀 이상했어. 나는 늘 먹었던 엄마의 미역국에 익숙해져서 그 맛보다는 조금 달랐던 맛에 더 강렬하게 반응했던 것이었다. 여태 그것도 몰랐느냐는 엄마의 타박에 나는 조금 민망하고, 미안해졌다. 엄마의 손맛을 몰랐다는 것에. 그처럼 나는 엄마의 비법을 별로 알지 못한다.
어느 날 엄마가 전자레인지에 약밥 하는 법을 배웠다며 들뜬 목소리로 내게 방법을 전화로 불러 주었던 날도, 오렌지 드레싱을 오렌지 주스로 하는 쉬운 방법도 있다며 각 재료와 비율을 메모지에 적어 나에게 전해 주었던 것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쳤다. 이제와 생각하면 나는 정말 무심한 딸이었다. 엄마에게 전달받고 한 두 번은 해 먹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그 비법들을 잊어버렸고, 엄마의 메모지도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 없다. 나에게 주려고 모았다면서 전해 준 낡은 파일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잡지에서 모아둔 요리 스크랩이었다. 그때의 엄마에게는 중요했던 것일 텐데. 엄마의 마음을 알아보지 못했다. 엄마가 아프시고 난 뒤였나. 엄마가 우리에게 자주 해주던 육개장을 남편이 좋아하던 생각이 나서 엄마에게 방법을 물었다. 엄마는 ‘육개장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면서 네가 해 먹긴 힘들 거라 했다. 그러면서 그냥 나가서 한 그릇 사 먹으라는 말을 덧붙였다. 음식이나 요리에 취미가 없는 딸을 생각해서였을까. 이제는 엄마가 끓여주던 육개장이나 선짓국이 그리울 때 생각한다. 내가 끓여 먹진 못해도 엄마의 레시피를 물어보기라도 할 걸. 이제는 묻고 싶어도 물을 수가 없는데.
우리 가족의 생일은 모두 10월이다. 나와 아이들은 양력으로, 남편은 음력으로. 나는 생일이라고 따로 음식을 거창하게 하지는 못해도 미역국은 꼭 챙긴다. 일 년 치 생일 미역국을 한 달 안에 다 먹는 우리 가족은 이제 모두 알까? 엄마가 미역국에 마늘을 넣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