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들의 추억 천국, 글쓰기여 영원하라!
문득 궁금해졌다. 김밥이 메인에 자주 보이는 6월 넷째 주. 좋은 글은 모아보고 싶어 한 곳에 모아봤다.
한동안 예쁜 김밥 사진과 감칠맛 나는 글로써 밤낮 가리지 않고 많은 브런치러들의 김밥 식욕을 자극해주었으며, 오늘은 김밥이나 말아볼까- 하는 요리 욕구를 샘솟게 한 글들, 우리 가족 혹은 나의 김밥에 얽힌 추억을 자극해준 글들. 그 글들을 모아보니 우리네 삶 속에 은근슬쩍- 하지만 매우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김밥의 위엄과 진한 존재감을 새삼 체감한다.
맞다, 김밥- 만만치 않은 음식이었지. 나도 김밥에 관한 추억이 있지.
어릴 적- 5살쯤인가 친구들의 예쁜 김밥 도시락 사이에서 내 도시락은 완두콩 섞인 흰 밥에 소시지였다. 그날부터 소풍 김밥이 싫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소풍날 김밥을 싸간 적이 없다.
예쁘고 정갈한 친구들의 김밥 도시락과 대비되게, 딱딱하게 식은 그 찬밥이 먹기가 싫었던 어린 마음에, 소풍 김밥 도시락이 싫어진 것. 친정 집에, 그 흰 밥 도시락이 먹기 싫어 울상을 지은 사진도 앨범 어딘가에 아직도 남아있다. (그날의 찬 밥을 먹기 싫어 울상이었던 표정, 얼마나 웃긴지..)
엄마가 왜 흰밥을 싸주었을지 다 커서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일을 하던 엄마가 아마도 매우 바빴거나, 먹고 사느라 바빴던 울 엄마는 소풍 날을 깜빡했음에 틀림없다. (엄마가 속상해할까 봐 이런 말,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왜 그 당시에 흰밥을 싸주셨냐고 질문해본 적도 없어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소풍 날을 깜빡하는 것은 워킹맘에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임을 이제야 이해한다. 혹은 여름날 김밥이 상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다른 음식으로 대체해주신 엄마의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알 리 없는 5살, 꼬맹이는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소풍 김밥을 싸간 적이 없었다. 엄마에게 절대로 김밥을 싸지 마시라고 극구 당부한 후, 소풍 당일 날 항상 파리바게트에 들러 샌드위치를 사갔다.
초중등 시절에는 단순히. 어린 날의 그 추억이 싫어서, 차가워진 밥이 싫어서였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었을 즈음에는 김밥보다 샌드위치가 오히려 더 좋았다. 차가워진 김밥을 먹는 것보다도 먹기 수월했고, 샌드위치는 깔끔하게 쓰레기까지 처리까지 할 수 있으니, 가벼워진 가방만큼 일하는 엄마를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홀가분한 마음에 늘 소풍날이면 엄마에게 부탁을 했더랬다.
엄마, 제발 소풍날에는 김밥 싸지 마세요.
(그래서 엄마는 소풍날에-만. 김밥을 안 싸는 대신 평일에 자주자주 김밥을 싸주셨다.)
아마 브런치 메인 글들이 아니었다면 나의 오래된 추억 속의 김밥 이야기는 세상에 꺼내지지 못할, 마음 속에 상처와 추억의 중간쯤, 그리고 성장 일기 어딘가쯤에 먼지 쌓인 채 잠자고 있었을 이야기였을 것이다.
김밥 글을 통해 다른 이의 글을 읽는 이유가 단순히 '잘 쓰는 글은 어떤 글일까?', '많이 읽히는 글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만을 분석하는 것은 아님을 깨닫는다. 사는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고, 댓글로 쓰인 또 다른 이들의 생각을 더해 사고의 폭을 확장해가는 일. 그 과정 속에 나의 성장 과정도 돌아보고, 내 삶을 조망해보며, 사람 사는 이야기, 거기에 내가 사는 이야기들을 보태어 삶을 더욱 진하게 우려 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글쓰기가 지닌 힘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글쓰기가 지닌 힘을 믿고 오늘도 마음 서랍 속 추억을 뒤적거려보기도 하고, 하이에나처럼- 글감을 찾아내듯, 내 삶에 충실할- 하루를 시작한다.
글쟁이들의 추억 천국, 글쓰기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