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20으로 알람을 해주나? 뭔가 이상한데? 보지 말자. 그래 봐야 내일 되면 다시 리셋된다. 부질없다.
싶으면서도 내 손가락은 이미 알람 창을 누르고 있었다. 솔직히 살짝 기대도 했다.
아직은 새벽 5시.
오메 뭔 일이래. 20이 아니라 이처언??
딱 1초 놀랐고, 2초 만에 바로 나를 다독였다. 속지 말자. 들뜨지 말자. 별 일 아니다. 내일이면 다시 0으로 돌아간다. 별 일 아니다... 딱 1초 놀랐고, 2초 만에 바로 나를 다독이던 이른 새벽. 결국 한 시간쯤 이부자리에서 뒤척이다 결국 벌떡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았다.
우띠- 또 브런치에 속았다. 브런치의 밀당 기술에 말렸다. 한참 자고 있을 새벽 시간에 노트북을 켜다니.
글쓰기. 책임감의 무게감이 더해진 고독한 취미를 지속하기 위해.
브런치에 입문하기 전, 10년 간 내 글쓰기의 또 다른 이름은 '고독한 취미'였다. 출판사에 투고를 하거나, 원고를 작성하는 단계에서는 당장 내 글을 읽어봐 주는 이도 없었고, 알아주는 세상도 없는 고독한 시간들이었으며, 누군가에게 알려지기를 크게 바라지도 않았기에 그저 글을 쓰는 시간들을 순수하게 즐겨왔다. 그런데 브런치에 미완성인 글을 내어놓게 된 이후부터의 내 글쓰기는 '고독한 취미'라는 수식어에 '책임감의 무게감이 더해진 '이라는 서술어가 하나 더 붙인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당장 오늘 새벽에도 내가 뭘 써놨더라.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끄적여놨더라- 라며 내 글을 다시 읽어보았고, '다 지워버릴까? 부끄럽다.'라는 생각을 서른네 번쯤 했다. 해밍웨이의 '초고 쓰레기 설-'에 의하면 내 글들은 아직은 shit- 상태인데. 차려놓은 것 없는 식탁에 손님들만 잔뜩 초대해놓은 민망함이랄까. 아직 갈 길 먼 미완의 글들을 발가벗겨 세상에 내놓으려니 부끄러움이 앞서서 '그냥 브런치를 끊을까?' 싶은 생각까지 3일에 한 번쯤은 하고 있다.
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shit.
초안은 shit-이다.
해밍웨이 초고 쓰레기설- 이 나오게 된 경로와 원문입니다. 초고는 shit이다............... (출처 :https://anthropo.tistory.com/752)
그럼에도 결국 밀당 고수- 브런치님의 성화에 못 이겨, 커피 한 잔 들이키며 지난밤 작업을 하다 만 파일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잠이나 잘까- 싶기도 했지만 누군가 내 초고라도 읽어줄 이가 있고, 나를 다독여줄 브런치 알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위로와 동지애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다. 그 덕에 오늘 하루를 책임감이 더해진 고독한 취미, 글쓰기로 시작한다.
글쓰기라는 고독한 취미를 계속 고수하기 위해서는 글에 책임감을 부여해줄 장치가 필요하다.
-자신과의 약속하기. 단, 자기 조절력이 상당한 수준인 사람인 경우에만 실천 가능.
-정해진 시간에 쓰고, 한 회에 실천할 수 있는 분량만큼의 현실적인, 수치화된 분량을 설정하기.
-함께 쓸 동지들을 만날 기회를 만들기.
-세상에 글을 꺼내놓으며, 자신을 궁지로 내몰기.
-내 글에 대한 부끄러움도, 부족함을 알아채는 것도 결국 내일의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임을 잊지 말기.
조회수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에게 조회수란.
브런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은 오늘이 두 번째이다. 한 번은 한 달 전쯤. 브런치에 처음 글을 올리고 잠을 자고 난 다음 날. 처음으로 내 글을 읽어준 사람들이 10명, 20명을 넘어가면서 몇 백 명 이상이 되었을 때(고수님들께는 쉬운 숫자이겠지만 저에게는 감지덕지한 숫자라^^) 그날 하루는 주식창을 하루 종일 보는 사람처럼 정신이 브런치님에게 팔려있었다.
그 후, 만 2일도 못지나 다시 조회수가 평소대로 바닥으로 쭉- 내려올 때쯤, 나는 다시 평정심을 찾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그것 봐. 잠깐의 이벤트였어.'라고 현실을 자각했다.
외장하드에 글을 쓸 때와 브런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내 삶에 변화된 것이 있다면 똑같은 일상을 살면서도 수시로 좋은 글을 찾아 읽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어찌해야 꾸준히 롱런- 조회수가 가능한 글을 쓸 수 있을까? 독자들이 좋아하는 글은 무엇일까? 요즘 트렌드에 맞는 도서와 목차 구성은 무엇일까? 쉽게 잘 읽히면서도 읽고 난 후에 배부른 글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대중성과 깊이까지 모두 갖춘 글의 작가님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고민해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때로는 조회수의 노예가 되었나? 글쓰기 목적의 순수함을 잃은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 '독자와 나를 위한 글쓰기'를 위한 고민의 시간이 늘어난 것이라고 하고 싶다.
시청률을 신경 써야 하는 연예인도 아니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면서. 좋아서 쓰는 글이면서도 나도 모르게 조회수를 들여다본다. 하지만 그 자체를 글쓰기에 대한 순수함을 잃었다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조회수'란 내 글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하는 계기를 주기도 하고, 잠자고 있을 나를 일으켜 쓰는 일을 지속하게 하는 힘을 부여해준다. 삶에 대한 성찰의 과정을 글로 옮기며, 더 나은 삶을 살겠노라 다짐하는 시간을 선물해주는 기분 좋은 긴장감, 그대 이름은 '조회수.' 오늘 하루도 '조회수'라는 녀석이 주는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시작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