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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 Apr 21. 2022

무쓸모?-엄마가 야식을 먹는 이유.

우린, 할 수 있을 거예요. 엄마니까요.

절박한 Me time

나도 결혼 전엔 다이어트를 위해 밤 6시 이후에 금식하는 것이 어렵지 않던 나름 마른 여자였다. 하지만 아이 둘을 낳고 나니 지금은 밤 12시 넘어서 먹는 야식을 너무 사랑하고, 야식 시간만을 기다리는 푸근한 아주머니가 되었다. 애기 둘을 키우다 보니 나에게 단식이란, 아이가 잠든 후, 단시간에 마시듯 먹는 밥이 되어버렸다.


연예인 엄마들은 출산하자마자 몇 달 안 지나서 출산 전의 체중을 회복했다며 늘씬한 몸매를 선보이더구먼, 지금 내 몸은... 쩝.


새벽 2시. 지금 이 순간, 아이들과 신랑은 모두 밤잠에 깊이 들었다. 난 이 시간만을 기다린다. 모두가 코를 고는 것을 확인하면 난 당당하게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을 찾아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온다. 아이들에게 방해받지도 않고, 신랑에게 핀잔을 받지도 않으면서 편안하게 주전부리를 음미하면서 먹을 수 있는 시간은 밤늦은 이 시간밖에 없다.


혼자 숨죽여 야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이 쾌감이란. 내일의 육아를 위해서라면 빨리 잠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체력이 허용하는 날에만 즐길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은 쉽게 포기가 안 된다. 비록 다음날 피곤함과 부은 얼굴, 처진 뱃살을 감수해야겠지만 당장 오늘 밤 혼자 누릴 수 있는 자유 시간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잠을 잘 수가 없다. 하루 종일 육아에, 살림에 치이다 보면 체력이 바닥나서 아이들 잠잘 때 같이 쓰러져 잠들어버리기 때문에 어쩌다가 내 체력이 남는 날, 그날은 무조건 야식을 먹으면서 온전한 me time을 즐겨야 하는 때이다.      


그냥 즐기지 왜 야식을 먹냐고? (에이. 우리끼리는 다 알면서-)

야식은 단어 그 자체만으로도 존귀한 존재다.     


낮동안 바쁘고 지쳤던 몸과 머리를 모두 정지시키고 한껏 널브러지는 밤. 멍-하니 오늘 하루 뭐 했나.. 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하기도 하고, tv 채널을 돌리며 피식- 실없이 웃어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결국은. 내 마음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함을 느끼는 시간이 바로 늦은 밤이다.

 

웃고 떠들고 바삐 움직이는 것들 다 빼놓고 내 마음속에는 딱 한 가지 생각만 가득하다.


SO WHAT? 그래서 뭐? 이렇게 하루가 갔네. 난 뭘 하며 살고 있는 걸까?
이래 사는 게 맞나? 이대로 계속 살면 되나? 예전엔 무슨 꿈을 꿨더라.
그 열정들은 지금쯤 내 맘에 있긴 한 걸까. 에라 모르겠다.
그냥 먹고 잠이나 자자.


이런 의식의 흐름 탓에 야식을 먹는다. 무언가 부족하고, 내 안에 뭘 채워 넣고 싶은데 질적인 무언가를 채워 넣기엔 애기 엄마로 사느라 체력도 바닥나 있고, 시간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니 일단 위에 양식이라도 쌓아두고 잠이나 자는 거지. 그렇게 출산 후 아기들을 재우고 밤이 되면 차곡차곡 위의 양식을 채워 뱃살을 쌓아 놓고 나니 어느새 아이가 쑥 커있었다.




나를 채워줄 시간.

나를 돌볼 틈도 없이 잠과 체력과의 사투를 벌이며 신생아 시기를 지나고 나니 제법 엄마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없어지고 있음도 알아차린다. 반짝반짝하던 20대. 결혼 전.


그때 난 무얼 하고 있었나. 어쨌거나 지금은 너무 늦어버렸어~~~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를 흥얼거리며 한숨 푹 쉬고 있다면. 당신도 나와 같은 상황이 구료. 흐흑.      


그래서 내가, 우리가, 애기 엄마들이 야식을 먹는 것이다. 지나간 청춘에 대한 아쉬움, 잠자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내 꿈에 대한 그리움, 꿈조차 없이 하루하루 때우며 사는 것 같은 삶에 대한 체념. 이 모든 감정들을 엄마, 아내라는 이유로 쉽사리 드러내지 못하기에 그냥 일단 먹고, 모두 잊고 내일을 위해 잠이나 자는 거다. 그래야 우리 가정이 유지되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거니까.     


나에겐, 우리에겐, 애기 엄마들에겐 ME TIME이 필요하다. 그 시간에 야식을 먹고 자던, 목욕을 하던, 책을 읽던, 운동을 하던, 멍 때리며 핸드폰을 하건, 어떤 것을 하던지 어쨌든 엄마라서 찾지 못하던 ‘나’를 채워줄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없어지고 내 자존감이 무너지면 육아도, 살림도, 우리 가정도, 내 삶도 모두 무너짐을 애기 엄마들이라면 한 두 번쯤은 경험해봤을 것이다.     


무너지지 말자. 찾자. 채우자.
스스로 세뇌하고 다짐하면서 힘든 육아 터널을 버텨내 보자.      


이런 생각으로 내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려고 선택한 방법은 글쓰기였다. 비록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쓸모없는 워드 파일 조각으로 버려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써내 보자.라는 생각으로 뭐라도 해보려고 노력했다. 마음속에 담긴 것들을 워드로 쏟아내면 언젠가는 정리되고 정리된 생각들이 다듬어질 테고.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도 조금은 덜어지겠지. 뭐라도 되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가끔씩 이렇게 문장들을 졸음 속에 쏟아낸다.     


육아에 지치고 힘든 엄마들, 우리 같이 채워봐요.
그동안 우리 너무 지치고 힘들었잖아요.


야식을 먹으며, 조금 더 나를 찾는 시간.

오늘 밤에도 뭐라도 끼적이면서 반짝반짝했던 우리의 꿈들을 다시 찾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우린, 할 수 있을 거예요. 엄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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