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간의 중환자실 생활로 아빠는 온몸의 근육이 다 빠져 걷지도, 앉지도, 팔과 다리를 들지도 못했다. 엄마와 내가 교대로 병실에서 밤을 새우며 간병을 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오빠가 주말마다 내려와 간병을 도왔고, 이모부가 동해로 내려와 함께 지내며 식구들을 챙겨주셨다. 이모부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분들이 힘을 주셨다. 가족 외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아빠의 지인분들과 제자분들이 먼길을 달려와 함께 걱정하고, 격려해주셨다. 아빠가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또 나에게 아빠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일반병실로 옮긴 지 2주쯤 되니,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 집 근처 병원으로 옮겼다. 한 달 반 만에 이발도 하고, 오매불망 아빠만을 기다리던 강아지와도 재회했다. 미각이 돌아오지 않아서 음식을 잘 드시지 못하는 것만 빼면 빠른 속도로 회복하시는 듯했다. 보조기구의 도움을 받아 걸을 수 있게 될 무렵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20년 7월 18일, 아빠가 집을 떠난 지 57일 만이었다.
우리는 일상으로 서서히 돌아왔다. 평소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았을 일들이 모두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주 촘촘하게, 매 순간 행복을 느꼈다. 문득, 아빠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 가입했던 '뇌질환 환우 모임' 카페가 생각났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얻기 위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뇌수막염 환자 가족들의 글을 찾아보곤 했었다. 이제 내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사연은 기적이었기에 다른 이들에게 힘을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