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일기 - 저희 팀장님이 혼밥을 못하세요...

by 핑크솔트

사실 나는 집이랑 회사가 가깝다.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집에서 밥을 먹고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랬으면 저 제목이 나오지 않았겠죠!!!


박팀장이 회사에 입사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별일이 없으면

박팀장의 점심밥 메이트는 만만한 나였다.

그런 나를 두고 김 과장은 천사 혹은 구원자 혹은 없으면 안 될 존재 라고 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냐면 박팀장은 나보다 두달 늦게 입사했는데

점심시간에 모두들 알아서 먹기 위해 식사 맛있게 하세요~하고 사라지는

그 광경에 당황하다가 마침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보고

같이 좀 먹읍시다를 외쳤고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적응을 잘하게

도와줘야 할 것 같았던 호구의 마음씨를 가진 나는 그 뒤로 그렇게

쭉 박팀장의 점심밥 메이트가 되었다.

박팀장은 혼밥을 싫어한다라고 했지만 못한다 가 맞는 표현이었다.


어느 날 박팀장은 외근이고 다른 팀 팀장님들이 점심 드시러 갈 때

사무실에 혼자 있던 나는 아싸 오늘 드디어 혼밥~! 하고 속으로 기뻐했지만

다른 팀 팀장님들 눈에는 챙겨줘야 할 존재로 보였는지 여러 차례 함께 가자고 권하셨다.

마냥 거절하기도 그랬던 나는 그 틈에 끼어 나름 유명하다는 곰탕집으로 끌려갔는데

회사랑 우리 집이 가까운 걸 아는 이팀장님이


- 어떻게 점심은 평소에 집 가서 먹어?


하고 물으셨고


- 아뇨 저희 팀장님이 혼밥을 못하세요...


나의 대답에 세분의 팀장님이 마치 짠 것처럼 한 단어를 말씀하셨다...

(네 욕이에요)


두 달 전인가.. 어떤 일이 있었고 잘잘못을 따지면 뭐 일정비율로 여럿이 잘못했지만

가장 만만했던 나를 향해 고성을 지르고 에이 씨!! 를 외치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고

그걸 본 오 부장은 당황해서 나를 쳐다봤다.

당시에 나랑 오 부장 밖에 없었는데 순간 나도 나의 진심이 나왔다.


- 아무도 지랑 밥 안 먹어 주는 거 먹어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맨날 만만한 게 나야!!!


그리고 그렇게 나간 박팀장은 12시가 되자 전화를 했지만 나는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도저히 마주 앉아서 밥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예전에 친한 동료에게 만약 내가 퇴사를 하면

그 이유의 90%는 박팀장이다 했는데 그날 그간 쌓인 마일리지가 극에 달했다.

하.. 오늘이 사직서 던지는 그날인가?

점심시간 동안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자리에 앉아 퇴근시간까지 열심히 일만 했고

퇴근시간 30분 전 박팀장은 미안하다.. 하고 사과했다.

이제부터 점심 혼자 드세요 했더니 눈이 커지며 그건 안된다 솔트매니저 없으면

누가 나랑 밥을 먹어주냐 그건 안된다 진짜 미안하다 하는데 랩 하는 줄...

그 순간은 쇼미 더머니 나갔으면 1등까진 아니어도 2등은 했을 것 같다.


그나마 밥 메이트에서 벗어나는 때가 1년에 두 번 우리 애들이 방학일 때였다.

애들 밥 챙겨줘야 합니다 하고 호다다닥 도망쳐서 집에서 아이들이 잘 있었는지

확인하고 밥도 먹고 한 번씩 안아주고 다시 호다다닥 뛰어와야 하지만

그 편이 박팀장이랑 밥 먹는 것보다야 낫다.

어김없이 올해도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박팀장은 밥 메이트를 찾아야 하는데

아무도 먹을 사람이 없었다. A매니저는 점심시간마다 병원에 갔고

김 과장과 오 부장은 사무실 바로 위층이 집이었다.

(우리 회사는 일반적인 사무실 건물이 아니다 이 사연은 나중에...)


- 대체 애들 개학이 언제야?

- 8월 마지막주요

- 하..........


그냥 1월에 다른 사이트에 있는 이팀장님이 너 우리 팀 올래? 하셨을 때 네!! 할걸..

왜 네... 니오!!! 를 외쳤을까.... 그때의 나의 등짝을 한 대 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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