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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Dec 15. 2023

신점 보고 적성 발견한 여인

세계적으로 이름 날리는 방법

"자기야! 혹시 들었어? ■■마트 위층에서 신점 보는 분이 오셨어. 나도 봤는데 세상에 하는 말마다 딱딱 들어맞아서 나 소름 돋았잖아. 조만간 우리 신랑도 데리고 가서 같이 또 보려고. 근데 그분이 강원도에서 오시는 거라 매일 계신 건 아니고 아직 정식 매장은 내지 않아서 카페나 점포 빈자리에서 봐주시는데, 사람들이 아주 줄을 서더라고. 얘기할 게 많은 사람은 1시간 넘게도 봐주고 별 것 없는 사람은 1시간 내로 끝나나 봐. 5만 원인데 진짜 돈값하고도 남아. 자기도 안 봤으면 얼른 가서 보고 와. 연락 안 하고 가면 대기하느라 몇 시간 기다릴 수 있으니까 이 번호로 미리 전화해 보고 가."


뜬금없는 동네 엄마의 신점 타령에 무슨 소린가 싶었다. 대학생 때 사주카페에서 만 원인가 주고 딱   번 본 게 전부인데 웬 신점? 한번 점집에 빠지면 매사 무슨 일만 생기면 점에 의존하다 패가망신당하니 절대로 사주 같은 건 보지도, 알지도 말라는 엄마의 신신당부를 철저히 지켜온 사십 평생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엔 그 금기를 깨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홀린 듯 전화기를 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리도 용하다는 '그분'께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신점을 보고 싶어서 전화한 사람인데요, 혹시 이번 주 금요일 4시쯤 예약 가능한가요?"

"오 당연하죠. 이번 주 금요일 4시로 예약 잡아드릴게요. 장소는 그 카페에서 뵐게요."


신점 보는 분이라고 해서 뭔가 매섭고 날카로운 말투일 거라 생각했는데 굉장히 상냥하고 밝은 느낌이라 긴장이 좀 가시는 듯했다.


오늘은 내 생애 첫 신점을 보는 디데이인 금요일 오후 4시. 휴대폰으로 벨이 울렸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벨라님, 제가 지금 고객님 뵈러 열심히 운전해서 가고 있는데요 오늘 참 이상한 일의 연속이네요? 분명히 하루가 멀다 하고 자주 찾아간 곳인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내비게이션이 계속 저를 다른 곳으로 알려주고 있어요. 경로를 이탈했다며 재탐색을 하면서 자꾸 이상한 곳으로 가니까 저 지금 너무 헷갈려요. 뭔가 벨라님한테 못 가게 하려는 기운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어머 그래요? 사실은 저희 엄마가 점은 절대로 보지 말라고 항상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혹시 그것 때문 아닐까요?"

"아, 그런데 이게 어머니의 기운은 아닌 것 같고 뭔가 다른 일로 인한 기운 같아요. 뭐 암튼 제가 30분 정도 늦을 것 같아서 기다리실까 봐 미리 전화드렸어요. 도착하기 10분 전에 다시 연락드릴 테니 그때 나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기분이 좀 찜찜해지기 시작했다. 별생각 없이 호기심에 한 번 보려던 것뿐인데  '막는 기운'? 괜히 본인이 늦을 것 같으니 핑계를 삼는 건 아닌가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만나보기로 했다.


그분은 나를 보자마자 대뜸 당신은 애초 태어나기를 10살의 몸으로 살 운명이었다며 정신연령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굳이 왜 강조를?) 체력이 딱 10살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무리한 운동은 절대로 하면 안 되고 설거지 하나만 해도 체력이 방전되 집안일도 설렁설렁하란다. 남편에게도 내가 집안일을 힘겨워하는 건 다 태생적인 운명 때문에 그런 거지 절대로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란 걸 꼭 명확히 인지 시키란다. 평소에 청소기 하나 미는 것도 그렇게 귀찮아했던 이유가 나의 게으름이 아니라 체력이 '어린이'라 그랬던 거라 생각하니 완전 납득이 갔다.


또 위장이 약해서 밥 대신 죽을 먹으면 체질상 아주 좋다며 죽 메이커를 꼭 구입해서 내 밥은 따로 해 먹으라 하셨다. 쿠팡에서 얼마 안 하니 내일부터 지어먹으라기에 그 자리에서 결제할 뻔한 내 성급한 손가락. 더 재밌는 건 어릴 때부터 가수가 너무 되고 싶었는데 앞으로 가수를 해도 괜찮냐고 물으니 당신은 청력이 약해 가수로는 대성할 수가 없고 손재주가 아주 타고났으니 판화를 시작해 보라는 것이다. 무엇이든 그걸 파내는 것이 인생에서 아주 길하게 작용하는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처음에는 고무 판화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나무를 파내는 것까지 꾸준히 하면, 조소로 인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다며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하셨다. 내게 숨겨져 있던 새로운 능력이 조소였는지 태어나 처음 알게 된 경이로운 순간이랄까.(그런데 난 지금도 미술이 제일 싫은데 어쩌지...)


 당시 브런치 작가 프로젝트를 신청해 놓은 상태라 혹시 글을 쓰는 일은 어떠냐고 물으니 그 길도 아주 좋다며 꼭 글을 쓰라고, 당신 적성에 맞는 일이라고 응원도 해주셨다. 이후 정말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아직까지는 적성에 맞게 느껴지는 걸 보면 점 기운을 좀 받은 건가 신기하기도 하다. 남편과 사이도 좋고 80세 넘어서까지 사니 일찍 죽을 걱정은 말라는 말씀에 기분이 좋아져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던 것 같다. 그렇게 1시간 조금 넘게 사주풀이를 마치고 기분 좋게 그분과 헤어졌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말에 관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반응을 해주면 그 자체로도 큰 위안을 받는다. 어쩌면 점이든 타로든 이런 류의 사주를 보러 다니는 이유도 뾰족한 묘수나 혜안을 얻으려는 목적보다는 나의 아픔, 슬픔, 고통, 걱정을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함께 나누며 이야기할 사람을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 가족에게 어려운 내 마음을 꺼내자니 그들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망설여지고, 친한 친구나 지인에게 이야기하자니 비밀이 새어 나가거나 혹시 나에게 선입견을 가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남인 데다 일반인보다 더 공감 력이 뛰어나때론 시원한 조언도 날려주는 에게  깊은 속내를 털어놓으면  행위 자체로 위로와 치유가 아닌가 싶다.


신점에 대한 호기심은 한 번 풀어 봤으니 앞으로 다시 보러 갈 일은 없지만, 그래도 몰랐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일깨워주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만들어 준 '그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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