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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Dec 08. 2023

겨울은 수제청의 계절인가 보오

수제청의 추억

따끈한 아랫목, 뜨끈한 곰탕, 따스한 극세사 이불, 따땃한 핫팩, 따듯한 패딩, 뜨듯한 강아지.

'겨울'하면 생각나는, 참 좋아하는 말들이다.




나는 사상체질상 소음인으로 몸이 냉하며 선천적으로 위장기능이 약해, 특히 식(食)에 유의하여야 한단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찬 음식을 먹으면 속이 편하지는 않았다. 물론 수박, 아이스크림, 빙수, 콜라, 에이드 등 찬 음식을 먹어도 그동안 큰 탈은 없었다. 하지만 몸이 피로하거나 찬 음식을 연속 먹었을 경우, 위가 쓰리거나 배가 부글부글 해져서 화장실로 직행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긴 하다.


기관지도 약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즈음이 되면 컥컥 기침을 한다. 그래서 기침이 시작되면 '아, 겨울이 왔구나.' 하고 알 수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어렸을 때 하도 기침을 달고 살아 폐렴인가 의심되어 엄마께서 소아과에 X-ray를 찍으러 자주 다니셨는데 그때마다 폐는 아주 멀쩡하다는 웃픈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 그때도 환절기에 어김없이 기침이 시작되었고 며칠이 지나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근처 이비인후과에 들러 증세를 이야기하니 후두염이다, 인후염이네 하며 독한 항생제가 든 약만 처방해 줄 뿐 먹어도 딱히 차도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을 둘러보다가 모과차 도라지차 가래를 삭이고 기침을 멎게 하는 등 기관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구원의 동아줄을 잡고 싶은 심정에 바로 모과청과 도라지청을 주문해 마셔 보았다. 모과차는 달달하면서도 목으로 넘길 때 간질거리는 답답한 부위를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신기하게도 모과차를 마신 몇 시간은 기침이 거의 나지 않았고 처방약보다 효과 좋은 모과청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도라지청은 진한 흑색의 진득한 제형이었고 물에 타도 도라지 특유의 쌉쌀한 맛이 났지만 기침을 유도하던 자잘한 가래들이 삭여지는 느낌이 어 마음에 들었다.


또 어느 날은 인터넷에서 대추청이 스트레스 완화와 정서적 안정에 좋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가뜩이나 회사업무 더하기 인간들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었기에 곧바로 주문을 했다. 도착한 대추청은 꾸덕한 텍스처의 진갈색이었고 티스푼으로 두 번 떠서 뜨거운 물 2/3컵에 휘휘 저어 타보았다. 과연 어떤 맛일까? 마셔보니 대추 고유의 단맛과 오랜 시간 푹 졸여서 생긴 묵직함도 있었다. 뜨거운 대추차를 호호 불어 마시는 동안 손발에 온기가 돌아오고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몸이 이완되었다. 대추청도 합격이오. 



근데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청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다 우리 엄마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께선 대추차, 유자자, 율무차, 생강차, 꿀차를 자주 타 주셨다. 겨울만 되면 유독 손, 발이 차고 추위를 많이 타는 비리비리한 딸내미를 위해 따스한 기운의 차를 마시고 우지끈 뚝 힘내라는 엄마의 간절한 바람과 사랑의 표현이셨겠지.


겨울이 되면 우리 가족은 식탁에 둘러앉아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시절의 웃음소리가 지금도 들려오는 것 같다. 엄마가 차와 함께 내오셨던 모락모락 김이 나는, 하얗고 보들보들한 단팥 호빵도 얼마나 맛있지. 내가 몸과 정신이 허할 때마다 청을 먼저 찾았던 이유도 다 어린 시절 차와 얽힌 좋은 기억들 때문이리라.



음식에는 추억이 깃들어 있다는 이야기는 참말 같다. 왜냐하면 음식이란 만드는 사람, 시간, 공간이 있어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으며 또한 먹는 사람, 시간, 공간이 짝꿍처럼 붙어 다니며 우리의 일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친정에서 반나절 동안 사골을 푹 고아서 사랑하는 딸에게 갖다 주신 곰국과, 그 국을 좋아하는 육아에 지친 딸이 식탁에 앉아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맛있게 먹었던 그날은 추억의 일기가 되어 훗날 고마운 인생의 한 페이지가  것이기에.


요즘에는 지인이 만들어 준 청귤청과 어느 봄날의  카페에서 마셨던 딸기차에 푹 빠져 있다. 청귤청은 노화방지, 다이어트, 해독작용에 좋으며 딸기청은 피부 미백과 탄력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40대에 더욱 필요한 효능들이라 열심히 마실 요량이다. 앞으로도 맛있고 건강에 좋은 수제청들을 계속 찾아내어 우리 가족을 위해, 그리고 지인들에게도 청의 이로움을 널리 알리고 선물도 할 수 있는, 더욱 넉넉한 사람이 되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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