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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Dec 29. 2023

카레라이스의 당근 퇴치법

섬뜩한 당근

Q: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채소는?

나: 당연히 당근!

Q: 왜 싫어하는지?

나: 어느 날 당근 한 입을 베어 물었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괴상한 느낌을 받고 그 이후로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Q: 괴상한 느낌이란 정확히 어떤 건지?

나: 감전에 당한 듯 온몸이 찌릿하면서 몸서리쳐지는 느낌이랄까.

Q: 누군가 100억을 준다면 먹을 수 있나요?

나: 아 그럼... 일단 먹어보죽든가 말든가!!!(웃음)


이게 뭐 하는 거냐고요? 셀프 인터뷰를 해보았어요. 내가 왜 당근을 싫어하는지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고자 묻고 답해봤는데 인터뷰를 작성하면서도 뒷목이 찌릿찌릿하면서 기분 나쁜 소름이 돋네요. 아 당근은 진짜 저랑 원수인가 봅니다. 최악이에요.


*당근의 효능

당근에 풍부하게 함유된 베타카로틴은 항산화 효과를 내고, 노화 방지 및 암 예방에 도움을 준다. 루테인, 리코펜 성분이 풍부하여 눈 건강에 효능이 있으며 면역력 향상, 고혈압, 동맥경화를 예방해 준다.
(출처: 우수식재료 디렉토리)
출처: 꿀처 카레라이스 (10000recipe.com)


이렇게도 몸에 이로움이 그득그득한 당근을 나는 정말 끔찍이도 싫어한다. 특히나 카레라이스에 들어가는 당근이 문제였다. 당근이 잘게 썰려  볶음밥이나 잡채 등등에 들어가면 그 존재가 잘 느껴지지 않아 아무렇지 않게 잘만 먹는다. 하지만 어릴 적 엄마가 당근, 고기, 감자, 양파를 크게 쑹덩쑹덩 잘라 물에 넣고 익히시다가 카레가루  어 정성스레 만들어 주시던, 그 카레라이스에 들어가는 당근은 정말 참을 수가 없다. 카레라이스를 먹을 때면 혹시나 입 안에 당근이 섞여 들어갈 새라 숟가락으로 열심히 이리 휘적, 저리 휘적대며 당근을 쏙쏙 골라내어 그릇 한쪽에 열심히 모아 놓았다. 혹여 실수로 다른 재료들과 함께 입으로 들어가는 날엔 이건 심각한 비상사태라 즉각 혀를 분주히 움직여서 다른 재료들과 분리시킨 뒤 그릇에  뱉어내는, 나에겐 고단하고 남들이 보기엔 정말 상한 작업을 했다.


결혼 전까지 매번 카레라이스만 먹으면 저러고 있으니 그 모습을 지켜보시는 엄마는 당근까지 다 먹지 이게 뭐냐며 타박을 하셨다. 당근에는 비타민 A가 들어있어서 눈에 얼마나 좋은데 그걸 골라내냐고 뭐라 하셨지만, 이 맛있는 카레라이스에서 딱 봐도 귀찮을 저런 행동을 감수하는 내가 당근과 얼마나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지 제발 헤아려주시길 바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번은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그릇에 모아놓은 당근을 모두 먹으라는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참다 참다 드디어 폭발한 엄마는 다 먹을 때까지 지키고 있을 거니 그런 줄 알으라 하신다. 이건 당근이 내 입으로 잘못 들어왔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한 조각도 넘기기 싫어서 그 난리를 피웠는데 세어보니 여덟아홉 개는 족히 되어 보이는 조각을 한꺼번에 다 먹으라 하시니 진짜 하늘이 노랗다 못해 눈앞이 캄캄했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고민고민하다가 일단은 당근조각을 모아 숟가락으로 푹 떠서 한 입 가득 마구 욱여넣었다.

"이제 됐지? 나 당근 다 먹었다, 엄마!"

웅얼웅얼 제대로 발음도 안 됐지만 일단 오케이사인을 받아내고 엄마가 설거지하시는 틈을 타 곧장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변기에 당근을 뱉기 위해서였다. 퉤퉤!

살 것 같았고 당근이 머물러 간 을 수돗물로 열심히 헹궜다. 휴... 정말 살 것 같았다.


또 어느 날은 다람쥐가 볼주머니에 도토리를 저장하듯 당근 조각을 모두 입에 모아놓기도 했다. 소위 다 먹은 ''해서 그릇을 싹 비우고 나면 엄마의 칭찬을 받은 뒤 뒤돌아 화장실에서 '그 일'을 치르는 것이었다. 완전범죄는 성공했고 이후로는 카레라이스를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었다.


Unsplash의Shashank Hudkar


아이가 없을 때는 당근을 뱉든 버리든 숨기든 내 마음, 내 의지였다. 엄마는 내가 당근 남기는 것을 당연히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너무 싫어하는 것을 아시니 영양 밸런스 상 그래도 아주 조금만 주시거나 버겁지 않도록 작게 잘라서 만들어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설령 당근만 남기더라도 대부분 눈감아주시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보니 이렇게 당근을 골라먹는 모습을 시아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모두 골고루 먹으라 하면서 정작 엄마는 앞에서 열심히 당근을 골라내는 모습은 아니지 않나. 다행히도 시아는 모든 채소를 잘 먹고 내 입맛을 닮을까 봐 걱정했었던 당근 또한 좋아한다. 하지만 여전히 당근은 내가 좋아하지 않아서 당근 단독으로 기름에 부치거나 생으로 잘라먹거나 하는 등의 요리는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제의 카레라이스를 시아 앞에서는 어떻게 먹냐 하면, 엄마가 만들어 우리 집에 가져다주실 때나 친정에서 먹을 때에는 내가 직접 그릇에 소스를 담는다고 하면서 냄비에서 당근을 한두 개만 떠서 넣는다. 내가 만들 경우에는 모든 재료를 작게 썰은 다음 역시나 내거는 예의상 한두 개만 넣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딸에게 진지하게 고백을 했다. 엄마는 다른 채소는 다 괜찮은데 진짜로 당근은 견딜 수가 없이 싫다고, 알레르기,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로 싫다고. 그러니 엄마가 당근을 별로 안 먹고 싶어 해도 이상하게 생각 안 해줬으면 좋겠다고. 시아는 별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속이 후련했다. 당근을 감추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을 속죄하고 다시 자유로워지는 기분이랄까.






엄마는 눈을 흘기시면서도 딸의 건강을 위해 꼭 먹이고자 카레에 열심히 당근을 넣으셨고, 오히려 나는 그런 당근에게서 도망가고자 그렇게도 고군분투한 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나도 아이의 건강을 위해 차마 당근을 빼고 카레라이스를 만드는  못하다니, 참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이 맞나 보다. 이제는 회개하고 애증의 당근을 한 조각이라도 더 먹는 연습을 좀 해보... 려니 힘들다. 그냥 이렇게 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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