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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육성인 연극 <초선의원>

투철한 삶을 살다 간 한 사람을 추억하며

오늘의 연극,


이미 지나간 사람의 온통 육성인 연극!


“시류? 순응? 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시류가 아니고 권력자의 목소리만 시류인 것입니까?”


내 귀에 묻어있는 문장을 긁어냈다. 까맣게 타버린 눈동자를 더듬고 기억이 게워낸 말을 다시 또박또박 읽었다. 연극이 끝나자 배우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안절부절못하다가 세상과 조금 멀어져서 금세 혼자가 되었다.  


연극 <초선의원>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한 남자의 이미 지나간 이야기다. 극 중의 최수호를 연기하던 배우 송용진을 보면서 나는 아래의 문장을 떠올렸다.


“여기에 없는 다른 세계를 만드는 일은 여기에 있는 나를 전부 소진해 버리는 일.”


공연을 보는 내내 심장이 펑펑! 터졌다. 극 중의 최수호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모두가 2016년의 문제작, 연극 <보도지침>에서 만났던 이들이다. 오랜만에 무대와 객석이라는 간격에서 만난 배우 송용진은 이제 더 멀리, 더 높이 날고 있었다. 부러움을 곁들여 진심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신형철은 책에서 ‘시란 인생의 육성이다’라고 적어놓았는데, 밑줄을 그었던 그 말이 떠오르는 순간부터 연극이 끝날 때까지 수없이 그 밑줄을 나는 잡아당겼다. 유진목은 오늘도 내게 속삭였다. ‘나는 시를 쓴다.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 시를 쓴다.’


그런데 희곡이란 무엇일까? 그 모든 것을 용케 담아내고 있지 않은가? 등장인물 인생의 온통 육성이 우글거리며,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를 마냥 그려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나는 내가 몰두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야 함이 더욱 분명해졌다.


나는 이러한 이미 지나간 사람의 온통 육성인 연극 <초선의원>이 엄연하게 여기 대학로에서 막을 올리는 일과, 이런 이야기가 펼쳐지는 소극장으로 찾아온 열렬한 관객들의 눈동자에 박수를 보낸다. 치열하게 살아가던 한 사람의 육성을 이렇게 많은 이들이 경청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감동이며 수척해진 내 마음이 뭉클할 정도로 고마운 일이다. 이제 나는 희곡 <초선의원>을 여기저기 희곡읽기모임에서 함께 읽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메모,

그런 생각 한 적 많았다. 그런 문장이 나오는 희곡이 무대에 올려지기를 많이 바랐다. 무대를 향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앉아있을 때 객석을 향해 꼭 그런 말들이, 투철하게 살다 간 사람의 육성이 터져 나오기를 바랐었다. 그래서, 오늘의 연극을 찾아오는 관객들이 너무 부러웠다. 이런 이야기에 경청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나처럼 뜨겁겠지? 그리고 부끄러운 만큼 나처럼 더디게 식어갈까? 나는 이 연극을 보기 위해 로비에 가득한 관객들이 부러웠고, 관객을 열망하는 내 가까운 연극동료들 생각이 나서 종종 고통이었고, 연극이 끝나자 일제히 무대 위의 배우들을 향해 사랑과 존경을 표시하는 관객들이 부러웠고, 지하생활자로 서성이는 내 삶이 바로 저 위에서처럼, 이제 더욱 원숙해진 저기 저 멋진 배우 송용진처럼 온몸을 땀으로 적실 수 있는 등장인물로 우뚝 설 수 있을까? 해서 나는 부러웠다. 내 눈물의 절반은 그러므로 부러움의 결과다.


나는 총총 걸으면서 메모장에다 적었던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서둘러 내 방으로 향하는 나는 마치 도망자와 같았을 것이다. 쫓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어쩐지 쫓기는 심정인 걸 보면 확실하게, 무엇인가, 속에서부터, 늙어가고 있음이 분명하겠다. 나는 책상으로 돌아와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펼쳤다.


산티아고 노인의 두 문장이 꼭 그의 이글거리는 눈빛처럼 나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지.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어.”


나는 이 연극이 우리가 여기에 머물면서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지난 시간을 기억하며, 잊혀지는 속도보다 더 빨리 나이 들어가고 있는 여기 대학로에서, 계속해서 공연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는 연극이 이렇게 가까운 곁에 있다는 것!


나는 지금에서야 보았지만, 이전부터 이 작품을 보았던 이들에게 은근히 시샘이 났다고 곧바로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했다.


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간이 있다. 무대에 올려지지 않으면 그냥 잊히는 풍경들이 있다. 대학로에서 이런 연극이 계속되기를 소망한다.


배우님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이 작품을 제작하신 분들과 희곡을 멋지게 연출하신 분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초선의원

#오세혁 작

#변영진 연출

#극단

#웃는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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