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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과 촌장 Jul 11. 2021

귀농 삼 년, 넘어지고 낑낑대고

맨땅에 맨몸으로 땅도 빌리고 집도 빌려서 시골살이와 농사를 시작했다고 했을 때 우리가 겪게 될 귀농 생활이 어느 정도 어림잡아지지 않았나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그야말로 좌충우돌에 설상가상. 시골에서 사는 거며 농사짓는 일 모두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일이니 실수투성이에 사고 연발이었지요. 그래도 첫해와 두 번째 해는 그저 열심히 일했어요. 처음 하는 일이니 낯설고 힘든 게 당연하다 생각했어요. 뭐든 삼세판, 귀농 세 해째부터는 좀 수월해지겠거니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골살이 만만하게 보면 큰코다친다는 듯,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펑펑 터지기 시작했어요.         



  


십년감수한 경운기 사고 

큰 사건 사고의 주인공은 바로, 경운기!

사고가 일어나기 몇 주 전에 겨울에 애호박 농사를 지어 보겠다고 900평 고추 농사짓던 하우스를 새로 빌렸어요. 애호박 하우스 땅을 빌리면서 동네 할아버지가 쓰던 낡은 경운기를 중고로 샀지요. 경운기며 관리기가 농사짓는 데 꼭 필요한데 매번 빌리러 다니다 보면 제때 농사일을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많이 불편했어요, 

사고 나기 하루 전만 해도 남편은 경운기 시동을 십여 분에 걸쳐 걸어서 겨우 성공해 놓고는 무척 좋아했어요. 그런데 다음날 오후에 그만 사단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겨울 애호박 하우스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좁디좁은 내리막길로 남편이 경운기를 꺾어 내려가다가 그만 경운기가 한순간 휘청하고 넘어졌대요. 남편은 급하게 뛰어내리긴 했으나 경운기에 다리가 깔려 버렸어요!

남편 혼자서 경운기 운전하다가 사고가 났는데 주위에 사람은 없고, 남편은 옆 하우스에서 농사짓고 있는 강 사장님을 목청 놓아 불렀다고 합니다.

“강 사장님! 강 사장님! 살려 주이소!!!”

하지만 하우스 안에서 열심히 자기 일하고 있던 강 사장님은 느적느적 걸어 나오며 “누가 내 부르나?” 하시다가, 경운기가 넘어져 있는 걸 보고는 “아이고, 와 이카노? 와 이카노!”를 연발하시며 넘어진 경운기를 겨우 세운 후 남편이 일어나 걷는 걸 보고는 “클날 뻔했다. 빨리 병원 가 봐라!!” 했다고 해요.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읍내 정형외과 가서 뼈 사진을 찍어 본 후 다행히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 하여 한숨 돌릴 수 있었어요.

병원에서 다리에 깁스할 것들을 받아 온 남편 말로는, 다리 위로 덮친 경운기와 다리 사이에 틈이 약간 있었고 그래서 뼈가 부러지지는 않은 것 같다고 하면서

“농사를 계속 지으라는 하늘의 뜻인가보다. 그러니까 경운기에 깔렸는데도 뼈가 안 부러졌지!” 하면서 아전인수식 자기 위로를 했답니다. 

그러고는 밤중에 깁스한 채로 자고 일어나서 다음 날 아침에 절뚝거리며 일을 하러 나갔어요.고추 농사짓던 하우스를 정리해서 밭도 갈아엎고 비료도 주고 모종도 심고 더 추워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으니까요. 

그 다음 날도 절뚝거리며 일하러 나가서는 일할 때는 아픈 줄도 모른다며, 준비한 멘트인 양 한 마디 날리고,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는 다리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면서 30cm 정도 갈아엎어도 되는 땅인데 60cm 정도 푹푹 갈아엎었다면서 속이 후련하다, 스스로 뿌듯해 하더라고요.  

함께 일 도와주러 따라갔던 산이에게

“산이야, 아빠 경운기 운전하는 거 봤제? 붕붕 안 날라 댕기드나?” 하며 괜히 폼을 잡아 보다가

“아닌데요, 아빠가 경운이한테 끌려다니던데요.” 하는 냉정한 산이의 평가에 깨갱! 

그러고는 힘센 경운기를 혼신의 힘을 다해 부여잡다가 껍질 벗겨진 손바닥, 그 영광의 상처를 보여 주면서 대일밴드를 찾았던 웃지 못할 일이 있었어요.     

그때 알았지요. 

시골 할아버지들이 왜 그리 파스를 붙여 대는지, 시골에 피부과는 없어도 정형외과와 한의원은 왜 그리 흔한지. 그리고 시골에서 경운이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지를요.

그전에는 시골 도로에서 털털털 가는 경운기를 볼 때마다 느려 터졌다고 하면서 추월해 가기 바빴는데, 사고 이후로는 경운기 볼 때마다 흠칫 놀라요. 경운기, 보기보다 무서운 놈이라고, 조심해야 한다고, 잘못 다루면 큰일 난다고 아는 사람마다 경운기의 실체를 얘기해 주지요.          



낑낑 끙끙잔가지 파쇄기 

그해 겨울에는 무화과밭에 특별한 퇴비를 주기 위한 작업을 했어요. 특별한 퇴비란 겨울을 나기 위해 잘라낸 무화과 가지들을 잘게 부순 것을 말해요. 자연농법에서는 작물에게 가장 좋은 비료는 그 작물 자체라고 이야기해요. 작물은 자라면서 자기한테 꼭 필요한 것만 골라서 먹고 자라게 되는데, 그것을 퇴비로 해서 주면 그 작물이 가장 좋아하는, 그리고 가장 알맞은 영양분이 된다는 거예요.

남편이 자연농법 교육받은 대로 해 보겠다고 애호박 키우는 와중에 또 새로운 기계를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빌려 왔어요. 이름하여 ‘잔가지 파쇄기’, 무게만도 400kg이 넘어요.

덩치는 별로 안 큰데 얼마나 무거운지 운전이 마음대로 안 돼서 쩔쩔매는 남편 옆에서 제가 도와주겠다고 낑낑댔는데 뭐, 웬만한 힘으로는 꿈쩍도 안 하더라고요.     

처음 계획은 잔가지 파쇄기를 하우스 안으로 끌고 들어가 쭉 끌고 가면서 땅에 떨어진 가지들을 파쇄기에 넣고, 잘게 부서진 가지 조각들이 저절로 땅에 떨어지도록 하려는 것이었어요.

내리막 경사가 심한 하우스 안으로 어찌어찌하여 기계가 들어가서 하우스 한 동을 작업하긴 했는데……, 끌고 나올 때 경사길에서 바퀴가 흙에 쑥쑥 빠지고 1시간 넘게 씨름을 했는데도 꿈쩍도 안 하는 게 아닌가요. 결국엔 트럭에 줄을 매달고 운전하여 잔가지 파쇄기를 끌어당길 수밖에 없었어요.


그다음 작업부터 전략 수정! 하우스 안으로 기계 들이고 내고 하다가 날 다 새겠다 싶어, 잔가지 파쇄기는 하우스 밖에 고이 모셔 두고 하우스 안에 널린 무화과 가지들을 수레에 담아 옮기고 붓고 하여 가지를 파쇄하기로 했어요. 

하루 만에 다 끝내기로 생각했던 작업은 작업 방법 수정으로 사흘이나 걸렸어요. 이틀에 걸쳐 무화과 가지들을 다 주워 모은 후에 가지 두세 개씩 잔가지 파쇄기에 넣었어요.

쾡쾡쾡쾡 우르릉, 소리는 얼마나 큰지요, 파쇄된 가지 부스러기들은 신난다는 듯 사방으로 튀어 나가고요.

파쇄기 투입구에는 ‘신체 절단 조심’ 경고 문구가 떡 하니 박혀 있어요. 경운기 사고를 당한 후로는 기계가 무서워지더라고요.

우여곡절 끝에 잘게 부서진 가지 조각들은 다음 날 수레에 담아 무화과 나무들한테 골고루 뿌려 준 후에야 일이 끝났어요.

농업기술센터에 트럭 끌고 가서 하루 대여비 이만 원을 내고 하루 동안 쓴다고 빌려 와서는 사흘 동안 낑낑댄 거에 비하면 가지 조각 양이 기대보다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화과 나무들한테는 더없이 좋은 퇴비가 될 거라 생각하니 뭔가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지요.

비용 대비 성과나 노력 대비 효과가 크지 않을지 몰라도 ‘그렇게 하는 게 좋은’ 방식으로, 처음 가졌던 올바른 마음가짐과 어긋나지 않는 방식으로 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뿌듯했어요.

그런데 잔가지 파쇄기를 반납하고 돌아오던 날, 남편이 기술센터 직원한테 들었다는 이야기가 또 섬뜩했어요. 잔가지 파쇄기 작업하다가 팔 잘리는 경우가 많다고, 헐렁한 옷을 입고 작업하다가 옷이 빨려 들어가 사고 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는 것 아닌가요. 그러고 나서 몇 년이 지나서 상주에서 감 농사를 크게 하는 분을 뵈었는데, 실제로 잔가지 파쇄기 작업을 하다가 팔이 잘려서 장애를 입었다고 했어요. 산이가 다니는 학교 학부모님 중에도 농사 기계 사고로 다리를 잘라내고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는 분이 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지요.      

농사가 그저 흙을 일구고, 풀과 나무를 기르는 일이 아니구나, 요즘 농사는 기계를 만지는 일이구나, 한여름 땡볕에 김매기 하다가 쓰러지는 것보다 기계 때문에 다치고 쓰러지는 일이 더 많을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농사일이 힘들지만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농사일은 위험한 일이구나, 하고 처음 깨달았어요. 생생정보통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농사일로는 짐작하기 힘들지요. 다치고 넘어지면서 막상 겪어 보고서 그제야 알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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