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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과 촌장 Jul 11. 2021

귀농 이 년, 그저 열심히


폭삭 망한 첫해 농사

귀농 첫해부터 큰 결실을 바라지는 않았어요. 초보 농사꾼이 오십 년, 육십 년 농사지은 어르신들마냥 좋은 열매를 맺을 거라 기대하는 게 언감생심이지요. 무화과는 뽕나뭇과 나무라서  그해 봄에 묘목을 심으면 그해 가을에 바로 열매를 딸 수 있어요. 사과나무나 복숭아나무처럼 묘목 심고 3, 4년을 기다려야 되는 게 아니니 큰 장점이지요.

하지만 첫해부터 폭삭 망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빌린 땅에 무화과 묘목을 심었다가 내리는 비 그대로 쫄딱 맞고는 역병에 걸려서는 열매 한 알 맺지 못했답니다. 게다가 겨울에 뿌리부터 얼어 죽은 나무도 많았어요. 그건 우리와 같이 무화과 농사를 시작한 스무 농가가 다 똑같이 피해를 봤어요. 

그제야 농업기술센터에서 무화과 나무과 이 지역에서 겨울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으니 시설하우스를 지어야 좋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때 알았죠. 농업기술센터 말만 믿고 덜컥 시작하면 안 되는구나.

그런데 이제 와서 다른 작물을 심으려면 돈이 더 들어가는데 나무를 다 뽑아버릴 수도 없고 어떡하겠어요. 뿌리가 얼어 죽은 나무는 뽑아내고 다시 심었고, 나무 심어 있는 자리 위에 하우스 파이프를 꽂고 비닐을 씌웠어요. 스무 농가가 다 첫해에 노지에 나무를 심었다가 나중에 부랴부랴 하우스 시설을 했답니다. 우리나라에서 비닐하우스 농법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걸 알지만, 아무래도 작물이 자연의 바람과 햇살을 그대로 맞고 자랐으면 해서 귀농하여 작물과 농법을 선택할 때 하우스 농사는 고려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처음의 다짐 같은 건 이상하게 꼬여 버린 현실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지요.     



     

두 번째 봄에 첫 수확

두 번째 봄, 새로 밭을 일구어 밑거름부터 다시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땅 밑에서 새 가지들이 하나씩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봄바람 휙 부는 동안 가지들도 쑥쑥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한여름 장마가 오기 전 설치한 하우스 세 동 안에서 가지에 열매들이 달리며 신통하게 자라기 시작했어요. 

무화과 가지는 봄부터 자라기 시작하면 서너 달 만에 사람 키보다 더 크게 쭉쭉 자라요. 가지에서 사람 손바닥을 닮은 잎이 나고 잎이 달린 자리마다 초록색 아기 무화과들이 조롱조롱 달려요. 그러다 여름 내내 뜨거운 햇볕을 머금고 열매가 빨갛게 익어요.

거름도 주고 곁순도 따 주고 김도 매주고 하면서 더운 한여름을 보내고 났더니 뜨거운 여름 기운이 가실 즈음에 무화과 열매들이 하나씩 빨갛게 익어가기 시작했어요.

빨갛게 익은 무화과 열매들은 처음엔 단단하다가 점점 말랑말랑해져요. 무화과는 빨갛고 말랑말랑할 때, 무화과 꽃받침이 톡 하고 터지기 시작했을 때가 가장 맛있어요.     

8월부터 10월까지 날마다 새벽에 무화과를 땄어요. 우거진 잎들 사이에서 날도 밝지 않는 새벽에 무화과 따는 일은 쉽지 않아요. 무화과는 무른 과일이라 아주 살살 다뤄야 하고 힘을 주어 잡아서도 안 돼요. 

하지만 톡 벌어진 무화과를 딸 때는, 무화과 열매가 마치 쪽 하고 뽀뽀하는 아기 입술같이 예뻐 보여요. 어제 초록빛이었던 무화과가 오늘 볼그스름해져 있는 것을 볼 때 마냥 신기하고요. 매일 영그는 맛있는 무화과를 따기 위해서 새벽마다 아침 이슬을 밟았어요.      

농사일이 수확하는 일만이라면 할 만할 거예요. 하지만 수확은 일 년 내내 일한 것을 거두는 일일 뿐이에요. 농사는 어쩌면 일이 그리 많은지요, 게다가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어요. 나무든 식물이든 토요일이라고 안 자라고 일요일이라고 푹 쉬는 게 아니거든요. 예전에는 비 오는 날이 농부들 쉬는 날이라고 했다지만 시설하우스는 비 오는 날이 서늘하니 그때가 일하기 더 좋아요. 

하지만 그저 열심히 했어요. 농사를 배워가고 있었으니까요. 겨우 농사 한 해 지어 보고 힘들다고 불평하는 것도 우습잖아요. 귀농 두 번째 맞는 가을에 쓴 일기를 잠깐 펼쳐 볼게요.          


2013년 9월 어느 날 일기 해는 져서 어두운데 농사일은 끝이 없구나      


농사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해 떨어지기 전에 끝마치려던 일은 왜 자꾸 늦어지는지…….


오늘은 무화과들한테 듬뿍 물 먹여야 되는 날인데

해님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오늘은 어제보다 더 일찍 산 아래로 들어가 버렸네.     

깜깜한 하우스 안에서도

무화과잎들은 파릇파릇하고


푸른 잎들 사이에서 촌티 나는 붉은 옷을 입은 남편이

무화과들 물 많이 먹고 잘 자라라고

헤드랜턴 끼고 호스 휘두르며 시원하게 쏴쏴 뿌려 댄다.  

   

그 옆에서는 호스 당기기의 절대 강자 산이가

호스가 꼬이지 않게 호스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고

 

솔이는 종이칼을 꺼내 들며 외친다.

“나는 장군이다! 먹을 것을 내 놔라!”    

 

“그래, 다 끝나간다!”

     

오늘은 해님도 일찍 집에 들어가고

달님도 아직 안 나왔네. 

    

“얼른 집에 가서 밥 묵자!”     

 




2013년 10월 어느 날 일기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아쉬움이 쌓이는 소리

        내 마음 무거워지는 소리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 아버지가 돈버는 소리

        내 마음 안타까운 소리  


가을비가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리던 일요일, 구름이 낮게도 내려앉았다.

우리 농장에도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가 들린다.

하우스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투구닥투구닥 투닥투닥 투다다다다닥

일을 서두르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무화과 가지에 곁순이 어느새 또 돋아나 있다.     

부부 둘이서 낑낑대며 곁순을 따 준 지 몇 주 지나지도 않았는데

곁순들이 새순 돋듯이 쏙쏙쏙 튀어나와 있다. 


제힘으로 쑥쑥 돋아나는 것들이 신통방통할 따름이지만,

그저 두고 보기만 하다가는 무화과 열매들이 잘 영글지를 못하니

곁순이 돋는 대로 제때 제때 따 주어야 한다.

손으로 톡 꺾어서 따 주고 벌써 굵어져 버린 곁순은 가위로 싹둑 잘라 준다.

일요일 오후가 그렇게 또 빠듯하다.     


싹둑싹둑 가위 소리,

따낸 곁순들이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

서걱서걱 무화과 잎 스치는 소리.     

우리 농장의 일요일에도

살아가는 소리, 일하는 소리,

마음 안타까운 소리, 마음 무거워지는 소리가 섞여 든다.     


9월과 가을이 다 가는 소리,

좀 더 쌀쌀한 가을이 다가오는 소리.

그 속에서 내일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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