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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May 13. 2022

천천히 먹기

지금은 다이어트 중입니다

사근사근한 양상추씨를 앞에 놓고 먹고 있었더니 “엄마는 왜 그것만 먹어?”아이가 묻는다.

“응, 살 빼려고.”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아이 낳기 전에도 입버릇처럼 말했다. 지금은 그때의 몸무게가 꿈의 무게가 되어 내 앞에는 초록빛 양상추가 놓이고, 찐 고구마가 놓이고, 데친 두부가 놓인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삼십 분간 걷기, 계단으로 오르내리기, 이틀 동안 아침, 저녁은 해독 주스만 먹기. 7일 동안 탄수화물 끊기. 이렇게 한 달 하니 4kg 감량. 적게 먹는 것에 신체가 익숙해졌는지 점심만 일반식으로 유지 중인 지금은 시작할 때보다 변화의 폭이 적다.


샐러드로 먹을 때의 좋은 점은 아이 먹이랴, 나 먹으랴 정신없던 식사 시간이 여유로워진 것. 아이 먹는 것 봐주면서 손으로 집어먹을 수도 있는 샐러드는 시원한 감촉에 청량감도 느껴진다. 채소의 가벼운 바삭거림으로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간장에 식초만 잔뜩 부어 만든 수제 드레싱의 눈이 번쩍 뜨이는 새콤함.


육아를 하면서 대인관계는 줄어들어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대화가 전부다. 아이 중심의 대화나 모임들.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도 나중에 보자, 미련 없이 미룬다. 내 일, 내 관계, 내 오락. 내 것을 포기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때 육아가 그나마 수월해졌다.


그런데 이상하지. 먹는 것은 미루거나 느긋해지지 않았다. 저녁마다 급하게 들이키는 맥주와 묵직한 안주들. 아까워 남기지 않으려고 싹싹(아이들이 남기는 것까지), 성실하게 먹었다. 맛을 음미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이.


포슬포슬한 노른자, 몽글몽글 흰자.

아삭아삭한 양상추, 시큼하면서 단맛이 도는 파프리카.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이 시원해지는 청량감 가득한 오이.

(오이향이 이렇게 좋았었나)

달콤하다기보다는 달큰하다는 용어가 어울릴 듯한 고구마.

단단함을 버리고 부드럽게 변신한 두부.


느리게,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으니 괜찮은데. 배가 부른 건지, 고픈 건지 느낄 새도 없이 무작정 먹을 때와는 다른 즐거움이 있어, 라면서 진공청소기처럼 음식을 빨아들이는 개인방송 영상을 찾아 틈틈이 뚫어져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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