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의 상상력
손톱 깎기 싫다고 하는 아이를 내 앞에 앉힌다. 가늘고 부드러워 잘 구부러지는 손톱을 작은 손톱깎이를 이용하여 자른다. 손톱 대신 살을 자르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밀고 들어오면 아이의 살이 잘려나간 듯한 충격이 몰려온다. 멀쩡한 아이 손가락을 잡고서 피가 철철 흐르는 손가락을 상상한다. 가만히 있어, 아이 손을 꽉 붙든다. 통증으로 아이는 얼굴을 찡그린다. 심호흡을 깊게 하고 정신을 바짝 차린다. 길게 여유를 두고 손톱을 잘라낸다. 상상이 사실이 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오후의 더운 바람을 맞으며 미용실로 들어선다. 손님이 방금 나간 듯 테이블에 맞지 않게 의자가 놓여 있고 가운이 바닥에 닿을 듯이 걸려 있다.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이 보인다. 정리를 하고 있던 미용사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인사한다.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에 원색 계열의 소품으로 포인트를 주며 밝고 청결한 상태를 유지해 왔는데 오늘은 어수선한 분위기다.
1인 미용실인 이곳은 오픈한 지 3년째다. 오픈 한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다니기 시작하여 온 가족이 이용한다. 1년에 서너 번 보며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둥그런 얼굴에 활달해 보이는 미용사가 내향적인 기질이라 는 것. 우리 옆 동네에 거주한다는 것. 나이 차이가 열 살 정도라는 것을 알고 있다. 미용사는 아이 머리는 안 자른다는 원칙이 있으나(아이 머리를 자르고 난 후 부모의 컴플레인을 경험했다.) 우리 아이들 머리는 가능하다고 하여 이곳에서 잘라 왔다. 친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시간이 흐르는 만큼 쌓아 올린 것이 있는 관계다.
나도는 원하는 스타일이 없는 어린 남자아이라 기존 스타일로 유지하면 되는데 소리는 원하는 스타일이 있다. 미용사에게 사진을 보여준다. 허쉬컷이라는 이미지를 본 미용사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고객님 아이 곱슬이 심한 편이라 이렇게 자르면 관리가 어려울 거예요. 지금처럼 일자머리가 가장 나아요.
괜찮아요, 아이가 원해서 한 번 잘라보려고요.
고객님 아이 머리가 곱슬에 붕 뜨는 머리라서 따로 펌을 안 하고,.....
고객님 곱슬이 심해서 관리를 잘해주셔야 해요.
고객님 아이 곱슬이,.....
커트를 진행하며 미용사는 아이 곱슬에 대하여, 곱슬이 심함에 대하여 어렵다는 표현을 계속한다. 미용사의 높은 음조의 목소리가 다소 날카롭게 들려온다. 사자 갈기 같은 머리라고 나와 남편은 아이의 자연 곱슬을 멋지다고 표현해 왔다. 가을, 겨울이면 안으로 들어가 말리며 차분해지고 여름이면 곱슬기가 두드러지는 아이의 머리 스타일이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소리와 잘 어울린다고. 미용실 의자에 앉아 있는 소리는 머리를 자른다는 것에 대해 설레는 표정이다. 두 눈을 빛내며 긴장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오늘 좀 피곤했나, 고객 컴플레인을 많이 받았나. 미용사의 말을 들으며 나는 혼자만의 생각 속으로 빠져든다.
아이 머리인데 뻗치면 어때요. 붕 뜨면 어떻고. 아이가 사진처럼 자르고 싶다 하니 시도나 한 번 해보는 거지 사진과 똑같은 머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에요. 아이 눈빛을 봐요. 얼마나 기대에 차 있는지. 실망 좀 하면 어떻고 쥐 파먹는 스타일이면 어때요. 아이는 지금 이 순간이 좋은 건데요. 애들이야 어떻게 자르든지 예쁘지. 자신 있게 잘라요. 실력 좋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데 사진에 맞추려고 너무 애쓸 필요 없어요. 가시 돋친 어깨를 톡톡 두들기고 싶다, 옆집 언니처럼.
접이식 건조대 아래 떨어져 있는 수건을 뜨거운 바닥에서 주워 올려 건조대에 잘 펴 놓는다.
소리의 미용실 후기
목요일에 미용실에 다녀왔다. 동생은 많이 자르고 난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자른다.
나도가 자르고 나니 도토리가 됐다. 난 꼬질한 강아지 같아 마음에 들었다.
끝나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