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사는 사람에 대하여

에쿠니 가오리 <개와하모니카><잡동사니>를 읽고

by 북남북녀
이를테면, 돼지 인형에 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당신의 그로테스크함이 난 싫어

에쿠니 가오리 <개와 하모니카> 중에서



이 문장을 읽는데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돼지 인형에 햄이라는 이름을 지어줄 수 있는 사람. 내가 느끼기에는 그로테스크보다는 무신경에 가깝지만.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가 중단했을 때(두 번 시험을 치렀고 두 번 낙방했다.) 같이 사는 사람은 말끝마다 실컷 놀아 좋겠네,라고 말했다. 빈정거리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시험을 준비한다면서 집에서 소설책을 읽거나 가구를 옮기거나 식물을 키우고 있는 내가 빈둥빈둥 노는 걸로만 보인 것이리라.


내 입장에서는 아침마다 도서관에 나가는 수고를 하고 있고 (도서관 분위기에 질려 일찍 집으로 들어오기는 하지만) 시험에 대한 부담감은 언제나 안고 있어 실컷 놀고 있지는 않으니 그 말이 조금은 억울하게 느껴졌다. 내심 쉼이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시간을 (아무 의무도 없는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중이었다. 복잡다단한 마음을 나름 간결하게 쉼이라는 것도 필요한 법이야,라고 말해도 같이 사는 사람은 좋겠네, 실컷 놀아서 놀리듯 말하고는 했다.


같이 사는 사람은 누군가 장례를 치렀다면 장례 잘 치렀어,라고 뜬금없이 물을 수 있다. 상대방을 보니 장례라는 근황이 떠오르고 장례라는 근황은 떠오르는데 ‘장례’라는 사건이 일으킬 감정에 대해서는 떠오르지 않는다. 아빠 장례식으로 내가 힘들 즈음 면전에 대고 네가 얼마나 아빠를 사랑해서 그러냐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안 지는 이제 이십 년도 지난 듯하다.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았으나. 같이 사는 사람은 내가 교복을 입은 모습도 본 적이 있다. 꽤 오랜 시간을 같이 하면서 나는 그에게 이면을 좀 생각해 봐, 판단이 아니라 위로의 말이 필요한 거잖아 말할 때가 있다. 그는 나는 이렇게 생겨먹은걸, 어쩔 수 없어 라거나 사람은 변하지 않아라는 굳건한 철학 내지는 의지를 비추고는 한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우리는 아이 두 명을 키우고 가족을 이루고 산다. 살다 보니, 특히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매사 빈둥대고 틈만 나면 책을 손에 드는 나와 달리 틈나는 대로 집안을 청소하고 아이들과 어울려 적극적으로 노는 그를 보고 참 건강한 사람이네,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정착하기까지는 몇 번의 쾅쾅 문 닫힘이 있었고 텔레비전 리모컨도 여러 번 부서졌다. 지글지글 타는 프라이팬 위에서와 같은 요란한 분란을 거쳤다. 그는 지금도 내 공무원 수험생활을 실컷 논 기간으로 생각하고(표면만 본다면 맞는 이야기) 나는 잠이 많고 게으르고(이렇게 자는 사람은 처음 봤어) 쓸데없는 사람(재주가 없다)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종종 내뱉고는 하지만 그런 말들에 이제 기름에 튀겨지는 튀김처럼 화르르 튀어 오르지 않는다.


같이 사는 사람이 하는 말이 맞는 부분이 있네, 싶은 건 오랜 기간 함께 지내온 시간일 거라 생각한다. 그 시간 동안 그의 관점과 내 관점은 섞이고 어느 것이 누구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어져 버렸다. 이제는 내가 나를 생각할 때 그도 아니고 나도 아닌 두루뭉술한 사람이 됐다. 시간의 무서움이다.


냉장고에

있던 자두를

내가

먹어버렸다오


아마 당신이

아침식사 때

내놓으려고

남겨둔 것일 텐데


용서해요, 한데

아주 맛있었소

얼마나 달고

시원하던지.


다름 아니라.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냉장고에 있던 자두를 먹고 미안해서 아내에게 시를 써서 전달하는 남편. 귀엽다.

생활이 된 사랑이다. 사랑의 결론은 헤어지거나 결혼하거나이고 우리는 결혼했다. 사랑은 생활이 됐다. 생활이 된 사랑은 ‘사랑’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나 이 시를 읽으니 생활이 된 사랑도 귀여운 부분이 있다. 서로를 알아서 편안하고 무리 없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개와 하모니카><잡동사니>를 읽으니 더 그렇다. 사랑해도 독차지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쓸쓸함, 고독감이 두 소설에서 다 묻어난다. 사랑해도 쓸쓸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 사강의 소설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다. 사랑해도 사람은 자신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사랑이라는 것으로 자신을 던지고 싶으나 던져지지 않는다는 것. 사랑이 자신을 조금 가려주기는 한다는 것. 그 시간은 짧거나 곧 지나간다는 것.


얼마나 달고 시원하던지. 생활이 된 사랑은 이 말에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 고독, 쓸쓸함보다는. 자두가 달고 시원하게 무르익어가듯 생활이 된 사랑은 때를 따라 무르익어간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의 과일처럼.



나는 같이 사는 사람이 쓸데없다 말하면 또 저러네, 심드렁해지고

같이 사는 사람은 내가 당신은 정말 유용해,라고 말하면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진심으로 칭찬하는 건데)

말하자면 우리는 스스로의 모습에 자신 없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흐르고 같이 사는 사람은 내 쓸데없음에 가끔 감탄하고(쓸데없이 글을 쓰네)

나는 그의 유용함에 언제나 감탄한다. (당신은 정말 쓸 데 있어. 애들도 잘 돌보고)

같이 사는 사람은 그 말에 여전히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그의 말처럼 그는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쓸 데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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