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색 철사끈에 찔리면

어른이 된다는 건

by 북남북녀

조용한 새벽, 리드미컬한 소리가 들린다. 칙칙칙칙, 칙칙칙칙 작은 기차소리 같다. 얼마 전 아래층 화장실에서 누수가 된다고 해서 화장실 바닥을 다 뜯어내는 공사를 했다. 그 이후로 화장실 변기에서 기차 소리 같은 소리가 꽤 길게 들린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변기 안 부품을 교체해야 한다는데. 한 여름밤 개구리가 개굴개굴 울듯 변기가 시도 때도 없이 칙칙칙칙 울어댄다.


울음 하니 생각나는데, 새벽에 자다가 눈을 뜬 적이 있다. 사람 울음소리가 들려서. 작은 사람이었다. 어린 여자아이. 남편은 출장으로 집에 없고 아이들은 태어나기 전이었다. 바깥의 도로에서 비추는 불빛으로 밤중에도 환하고 자동차 경적 소리가 어느 때나 들리는 곳이었다. 어른이 옆에 있어 앙 하고 시원하게 터지는 울음이라기보다는 울음을 참으려 하는 흐느낌에 가까운 울음이었다. 사랑하지 않을 거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말소리도 간간이 섞여 들었다. 아무리 들어도 실재 소리가 아닌데(그렇다고 꿈도 아닌데) 내게는 들리는 울음소리. 바깥의 경적소리와 함께. 난감하네 싶으면서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나는 무슨 이유로 저렇게 서럽게 울었을까(울고 싶었을까) 생각했다. 혼자 침대에 누워 내게만 들리는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소리야, 피아노 학원에 들어간 아이를 잠깐 불러냈다. 친구들은 놀이터에서 놀다 갈 모양인데. 그럼 나도 조금 놀까 아이가 말해서 학원에 양해를 구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삼십 분간 놀고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평상시보다 일찍 학교가 파하는 금요일. 어제 내린 비로 하늘이 파랗다. 햇살이 맑고 투명하다. 바람은 또 얼마나 살랑살랑 부는지. 그냥 피아노 학원으로 들어가기에는 아까운 날이다. 반 친구들은 학교가 파하면 학원으로 곧 가기 때문에 오늘 같이 일찍 끝나는 금요일 같은 경우가 아니면 놀 시간이 없다. 놀이터에 가면 친구들이 누가 있나 눈 크게 뜨고 찾는 아이라서 놀이터에 친구들이 있다니 놀아야지 하며 학원을 나선다.


소리는 놀이터 한복판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잡기 놀이를 한다. 깔깔깔, 깔깔깔. 아이들 웃음소리가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섞인다. 웃음소리에도 굴곡이 있다. 하하하, 하하하. 그 모양을 보는 엄마들이 한 번씩 꺼내는 이야기가 있다. 저렇게 뛰기만 하는데 뭐가 재미있을까라는. 규칙을 알기에는 다들 어려서 서로 술래를 하라며 뛰기만 한다. 고삐 풀린 망아지들 같다. 놀이터 한편을 휘젓고 다닌다. 친구들이 같이 있으면 뛰기만 해도 재미있는 모양이다. 실컷 뛰어 논 아이의 얼굴이 벌겋다. 물을 들이키며 엄마, 오늘은 힘들어서 학원에 못 가겠어한다. 금요일인데 그럼 오늘은 쉬자 하고 들어오려는 찰나, 둘째가 누나 친구의 장난감에 푹 빠져 울음이 터졌다. 헤어지는 마당에 그 장난감과도 헤어져야 하니. 앙 하고 울음 터진 둘째를 어르며 안고 소리는 가방을 메고 셋은 집으로 들어온다. 투명한 햇살 맞으면서.


“올바르게 행동하면 마음의 응어리가 없어지는구나, 그렇게 느꼈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어른이 된다는 건>에서.


나는 올바른 행동에는 열심히 뛰어노는 것도 포함된다는 생각이다. 깔깔깔 기분 좋게 웃는 행동, 타인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행동, 잘했다고 칭찬의 말을 건네는 것, 친구의 무거운 짐을 함께 들어주는 행동, 상대방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듣는 것 등. 미소를 띠고 하는 행동이나 바라보게 하는 일이 다 올바른 행동이지 않을까 싶다.

남을 위한 일뿐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웃게 하는 일까지도.


내 올바른 행동에는 새벽마다 책 읽기가 있다. 이것은 나 스스로를 흐뭇하게 한다.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타인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거 같은 재미가 독서에는 있다. 속이 시원하다. 서럽게 울던 아이를 진정시킬 수 있을 만큼. 새벽에 울던 아이를 다독거릴 수 있을 만큼은. 책은 그렇다.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진다.


소리도 낮에 친구들과 어울려 깔깔깔 웃었으니 그 주 동안 쌓인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은 풀어졌겠지,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얹어졌겠지 생각한다. 처음 하는 학교생활과 배워야 하는 여러 가지 것들.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공부해야 한다는 부모의 채근 속에서 아이라고 마냥 즐겁지 많은 않겠지 싶어서. 어려도 응어리가 맺힐 수 있으니까, 어쩌면 어려서 더 맺힐 수도 있는 거니까. 자신도 모르게.


어제 아침에는 빵 묶는 금색 철사끈에 두 번째 손가락을 찔렸다. 체했을 때 따는 것처럼 동그랗게 피가 솟아올랐다. 따끔한 통증. 이 정도는 괜찮다 싶은 통증. 이 정도의 통증이야 이제 괜찮다. 비일비재하게 뜬금없이 벌어지는 일들. 화장실에서 칙칙칙칙, 지금도 들려오는 기차소리처럼. 이 정도의 일은 순서대로 풀어낼 수 있는 어른이 됐다. 빵 묶는 금색 철사끈에 찔려 피를 보더라도 마음의 응어리가 생기지 않는 어른이. 아래층 집에서 누수가 되면 순서대로 연락해서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어른이 됐다.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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