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를 만나다

by 북남북녀

지렁이를 만나면 아이는 화단으로 옮겨주길 원한다. 아이 눈에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의 위기감이 느껴지는 걸까. 무서워서 자기 손은 대지 못하고 꼭 엄마가, 엄마가 하기 때문에 나는 반강제적으로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옆 화단으로 옮겨준다.


파란 하늘에 높이 떠 있는 해와 살랑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 이파리들 사이로 내비치는 해의 일렁임을 보면서 싱그러운 날이네, 했다. 아이와 놀이터를 나왔으나 뜨겁게 데워진 미끄럼틀을 타지 못해 벤치에 앉았다. 아이는 뜨거운 우레탄 바닥의 놀이터를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러더니 갑자기 엄마가, 엄마가 소리친다. 지렁이 한 마리가 우레탄 바닥에서 꿈틀거린다. 작은 나뭇가지를 집어 옆 화단으로 지렁이를 옮겼다. 서너 걸음 뒤에 또 한 마리의 지렁이가 보인다. 이번에는 말라가는 개미 밥이 되기 직전의 지렁이다. 역시나 엄마가, 엄마가 라는 말에 그 지렁이도 화단으로 옮긴다. 얼마 못가 아이가 또 지렁이야 한다. 이번에는 화단 쪽에서 몸을 쭉 밀면서 놀이터 바닥으로 내려오는 지렁이다. 지렁이가 왜 놀이터 바닥 여기저기에 놓여 있을까 의아했는데 밤새 비가 왔다는 생각이 스친다. 동시에 얼마 전 수목 소독 관련 관리사무소의 방송도 떠오른다. 수목 소독 약제가 밤새 내린 비로 땅속으로 스며들었나, 독성에 지렁이가 버티지 못하고 수풀 가득한 땅을 떠나 놀이터 바닥 쪽으로 기어 오는 걸까. 지렁이에게는 저쪽 땅은 독성이 가득한 땅이요, 이쪽 땅은 햇빛으로 타들어가는 땅이다. 독성 가득한 땅에서는 탈출했으나 이쪽 땅도 살 수 있는 땅은 아니다.


우레탄 바닥 쪽으로 몸을 쭉쭉 늘이며 힘차게 내려오는 지렁이를 보니 지금 세계의 생물은 이런 때인가, 싶었다. 인간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사고에 노출되어 역시 힘차게 움직이고 있다. 백신이 등장했으나 그 움직임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알지 못한다. 지금 힘차게 쭉 뻗는 행위가 살 길인지, 죽을 길인지.


네모나고 하얀 곳이다. 가운데 갈색 원목 테이블이 놓여 있다. 친구 네 명이 의자에 앉아 큰 그릇 속 하얀 죽을 떠먹는다. 어디선가 날아온 모기 같은 생물이 죽 그릇에 빠져 허우적댄다. 네 명의 친구들은 숟가락으로 모기 같은 생물을 떠냈다. 테이블 위에 그 작은 생물을 올려둔다. 작은 생물은 기운이 빠졌는지 움직임이 미미했다. 작은 생물을 바라보고 있는 네 명의 친구들은 그 생물이 살기를 바랐다.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네 명의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기 같은 생물은 점차 변해가기 시작했다. 몸집이 점점 커지더니 날개를 가진 하얀 비둘기가 됐다. 하얀 비둘기가 된 모기 같은 생물은 푸드덕 날아 나뭇가지에 앉았다. 네 명의 친구를 바라본다. 안도감, 네 명의 친구를 바라보는 비둘기를 보면서 안도감이 마음속에 퍼져갔다. 따뜻한 물속에 있는 듯한 기분 좋은 느낌으로 잠을 깼다.


모기 같은 생물의 살려는 의지가 있었고, 네 명의 친구의 살려주고 싶은 에너지가 만나 모기 같은 생물은 변화했다. 하얀 비둘기로. 이제 죽 그릇 같은 곳에는 빠져 죽지 않을 만한 힘과 모습으로 변신이 일어났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사소해 보이더라도 그것은 변화를 일으키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지 많은 지렁이는 살 길로 몸을 뻗을 거고 사람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하며 변화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 힘차고 강한 생명으로. 도처에 살려주고 싶은 에너지는 넘치기 때문이다. 강력한 생명을 품은 나무 하나, 길가의 흔해빠진 돌멩이 하나에도 살리려는 의지, 살려는 의지는 스며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모기 같은 미미한 생물이 하얀 비둘기로 변신하는 과정, 지금은 그런 때인지도 모른다. 살리려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일 하나에도 기적은 일어난다. 위기의 순간은 변화되는 과정이야,라고 꿈은 말해준다. 진정으로 바라본다면, 선의를 행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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