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젠장, 정말 엿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에스가 불을 탁하고 끈 것이다.
에스의 방은 창문이 없어 칠흑같이 어두웠다.
동공은 확장되고 아드레날린은 빠르게 분비되어 심장은 방망이질 치듯 쿵쾅 대고 있었다.
오늘 어스름한 저녁 에스의 집에서 공포의 순간을 맞이한 이유는 우연이었다. 왜 엄마는 오늘 과자를 사 오라고 보내고 왜 그 시간에 에스는 길을 건너고 있었던 것일까. 빌어먹을 오지라퍼. 왜 남의 집은 덜컥 들어와 가지고 이 사달을 내는 것이냐.
금요일 저녁, 엄마가 시장 근처 전병 과자가 먹고 싶다고 해서 나온 길이었다. 에스는 시장 근처 그러니까 우리 동네 옆 동네 살고 있고, 친구의 친구다. 친하다기보다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 이리저리 오며 가며 자주 마주치는 아이였다. 오늘도 전병 과자점 앞에서 길을 건너오고 있는 에스를 봤다. 에스는 방방 뜬 얼굴의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반갑게 다가왔다. 에스에 대해서 내가 받고 있는 인상은 기묘하다, 이상하다, 의아스럽다 등의 단어와 어울린다. 풍선이라면 공기를 가득히 채워 넣어서 곧 터질 거 같은 위기감이랄까, 팽팽한 가벼움이랄까. 아이들이 슬픈 영화를 이야기하며 감상에 젖어 있는데 갑자기 배설 이야기를 꺼내며 혼자 커다랗게 웃는다든지, 시간 약속을 세 시에 했다면 혼자 다섯 시로 알아들어 연락하면 또 딴말을 한다든지. 우리 집 개가 새끼를 낳았어 같은.
나를 풍선에 비유한다면 축 처진 바람 빠진 풍선 같을 거라서 나와는 상극인 에스를 나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에스는 공부도 잘하고 반에서 항상 임원을 하는 아이였다.
그런 에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길거리 한복판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근 도를 아십니까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에스 때문에 집안에 풍파가 있다는 거였다. 최근 삼촌이 아프고 아버지 일도 잘 안 풀려 집안 분위기가 안 좋은데, 자기 탓이라니 놀라서 에스는 그 아주머니를 따라갔다. 한 건물의 커다란 강당 같은 곳으로 들어가 절을 했다고 한다. 절을 하고 나니까 동행한 아주머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와 제사를 지내야 한다며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단다. 고등학생이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돈이 없다 하니 우선은 매주 일요일마다 나와 절을 하라고 했단다. 에스는 자기 때문에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는다 하며 눈물을 글썽거리고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야 하는데 절도하러 가야 해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거였다.
돈을 내라는 것을 보니 사기꾼인 거 같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해도 에스는 자기 때문에 집안에 풍파가 있다는 말이 마음에 박힌 모양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자기 탓이라는 말만 한다. 망할 도 닦는 아줌마 같으니 성인도 아닌 고등학생을 잡아다 돈을 뜯어내고 싶었을까 그 말에 홀랑 넘어간 에스도 에스지만 당장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에스를 보니 어떻게든지 해야 할 거 같았다.
그 당시의 나는 겁나는 게 가위눌림뿐인 용감무쌍한 십 대가 아니던가. 옆의 언니도 동생도 쿨쿨 잠든 새벽, 혼자 가뿐 숨을 몰아쉬며 다시 잠들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다. 누군가 허리를 꾹 눌렀고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숨을 못 쉬겠는데 언니도 동생도 도와주질 않는다. 해봐..... 해봐.....라는 여성의 간지러지는 소리도 들려온다. 대체 뭘 해보라고? 눈앞이 깜깜해진다. 허리를 누르는 힘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숨은 못 쉰다. 죽을 것 같다.
어느 순간 눈을 뜨면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찌릿찌릿. 막혔던 혈류가 다시 콸콸. 마비에서 몸이 깨는 순간 식은땀이 흐른다. 모든 기가 빨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곳으로. 흐느적, 흐느적.
가위에 눌리며 계속 잔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누군가에게라도 묻고 싶었다. 눌리고 깨고 눌리고 깨고. 주기도문을 외우면 함께 따라 외운다는 우스갯소리를 직접 체험하면서 조롱의 말도 날아들었다. 친구에게 얘기하니까 좋았어? 하 이것 참, 낮도 관여하냐 이제? 하얀 형광등 불빛에 낮처럼 환한 밤의 연속이었다.
밤새 불안에 시달리다가 새벽기도회를 갔다. 집에서 불안에 떠느니 교회에 앉아라도 있으면 섬광 같은 계시가 내려질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었다고는 못 하겠다. 신은 대체로 침묵하지만 그래도 앉아 있는 정성을 봐서라도 가위눌림을 물러가게 하든지, 가위에 눌리는 이유라도 알게 하겠지. 그런 기대가 없었다고는 못 하겠다.
신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는 내 입에서 “그럼 우리 기도하자. 기도 한 번 하고 결정하자”라는 소리가 나왔다. 에스도 일분 정도 생각하더니 그러자고 동의했다. 우리는 에스의 집으로 향했다.
시장 골목길을 돌고 돌아 갈색 기와지붕 집 앞에서 에스가 여기야 한다.
재개발 지역의 주택은 어스름한 저녁 풍경과 어울려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남색 대문을 열고 에스를 따라 들어갔다. 콘크리트 깔린 작은 마당을 지나 마루로 올라가니 쪽 찐 머리 할머니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우리 할머니야 해서 안녕하세요 하는데 할머니는 듣지 못한 건지 표정의 변화가 없다.
에스가 급하게 자기 방문을 열더니 들어가라고 한다. 에스의 방에 들어가 불을 켜니 에스의 원목 책상과 하얀 패드가 깔린 싱글 침대가 보인다. 눈에 방이 익기도 전에 에스가 들어오더니 그럼 기도할까 하고 방 안에 불을 탁 끈 것이다.
불이 꺼지면서 몸이 먼저 가위눌림의 공포를 기억했다. 마비된 듯 자리에 섰다. 그렇다고 불을 켜는 것은 두려움을 내비치는 것이라 싸우기도 전에 지고 들어가는 거 같았다.
몇 년의 가위눌림으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죽지는 않는다는 거다. 죽을 듯한 공포는 지속되더라도.
‘아무리 괴로워도 죽지는 않지. 공포로 까무러칠망정. 눈 뜨면 끝 아니던가.’
까짓 거 나는 다 덤벼라는 각오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에스도 나를 마주 보고 무릎을 꿇었다.
우리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아버지 불쌍히 여기시고 미혹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한참 기도하는 중에 눈을 뜬 건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푸른 불빛이 너울너울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바로 내 눈앞에서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불꽃같은 것이, 홀로그램처럼 보이는 것이 위로 날아가며 사라져 가고 있었다. 눈을 깜박깜박하며 떴다 감았다 계속해도 그 형상은 한동안 계속됐다. 이것은 뭐지 뭐야 꿈인가 가위눌림의 시작인 건가. 악하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게 뭐든지 버텨야 한다고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계속 기도했다.
공포를 덮어쓰고 불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불빛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불빛이 거의 사라지는 시점에 에스가 일어나 불을 켰다. 탁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새초롬한 얼굴의 에스가 말한다.
“이제 됐어. 교회로 갈 거야.”
“그래, 잘 결정했어. 나는 집으로 빨리 가야 해. 엄마한테 과자를 갖다 줘야 해서.”
에스에게 인사하고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한 겨울밤의 공기가 피부에 따갑게 부딪쳤다. 따가운 공기에 살 거 같았다.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만 더 늦게 에스가 불을 켰다면 공포에 온몸이 마비되어 돌처럼 굳어졌을지 모른다.
언젠가는 불이 다 꺼져 온 세상이 캄캄하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래고 한밤중이 된 길을 되돌아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