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난간에 투명한 물방울이

요시모토 바나나 <스위트 히어애프터>를 읽고

by 북남북녀


베란다 난간에 투명한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있다. 비가 내리지만 나가고 싶다. 학창 시절 어느 선생님은 대나무대로 만들어진 파란색 비닐우산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대나무 살에 바스락대는 재질의 파란 비닐을 덮어 만들어진 잘 찢어지던 일회용 비닐우산. 비 내리는 날 그 우산을 쓰면 비 내리는 진동이 대나무를 타고 더 잘 느껴진다고. 투두둑, 투두둑. 대나무살 파란 비닐우산은 아니지만 얇고 검은 철대에 투명 비닐을 씌운 우산에서도 비의 진동이 전해진다. 타다닥, 투두둑. 짹짹짹, 삑삑삑. 빗소리와 새소리로 분주한 비 내리는 아침, 샌들을 신은 발에 빗물이 튄다. 6월의 비인데도 차갑다.


차가운 비의 감촉을 느끼면서 공원 안을 걷는다. 빗물을 머금은 사철나무, 이팝나무가 푸르다. 이파리에는 물기가 가득하다. 나무의 쉬는 숨을 내가 들이마시고 내 숨을 나무가 들이마신다. 같은 공기 안에서 우리는 아무 소리 없이 편안하다. 빗물로 코팅된 바닥은 반짝반짝 빛난다. 비만 내려도 세상은 다르게 보이는구나, 녹색은 짙어지고 본래 지니고 있던 향도 깊어진다. 흙냄새, 나무 냄새, 풀냄새. 황사는 씻기고 먼지는 내려앉은 공기가 몸에 가득 찬다.


<스위트 히어애프터>라는 책을 읽고 나온 후라 이 모든 것들이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저세상과 이 세상에 중간에 있게 된 사람이 나오는 소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남은 자들의 상실의 아픔을 맑은 시선으로 그려냈다. 유령이 자주 등장하는 소설이네 생각했더니 작가의 말에 2011년 3월 11일 대지진 후 쓴 소설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망자가 1만 명이 넘어갔던 지진으로 일본은 큰 변화가 있었다고. 대지진을 경험한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를 향해 썼다고 작가는 말한다.


위로를 건네고 싶었던 거구나 생각한다. 갑자기 저세상으로 갔을 사람들과 한순간에 사랑하는 이들의 부재를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죽음도 어둡지만은 않고 현재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아서. 저세상은 저세상 나름으로 밝은 빛을 간직하고 있을 테니 지금의 살아있음에 감사하면서 살아나가자는 뜻을 담아 손으로 수를 놓듯이 소설을 써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술로 백조가 된 오빠들을 다시 사람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목숨을 위협받는 상태에서 쐐기풀로 옷을 만드는 여동생처럼 글이라는 것은 그런 부분이 있는 듯하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삶을 등진 사람을 삶으로 불러내기 위해. 불행이라는 주술을 깨기 위해, 지금 이곳을 말하기 위해 작가는 글을 쓴다. 한 자락의 위로를 전하기 위해, 먹구름 가득한 나라에 한 줄기 빛을 전달하기 위해서.


불안한 나날 속에서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는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끝에 대해 생각한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 지금이라는 시간이 특별해진다. 끝이 없이 영원하다는 생각이 들면 되는 대로 막 살 거 같은데 삶이 한없이 지루할 거 같은데 지금은 지나가고 나는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눈물이 날 거 같은 절실함이 솟아난다. 지금의 비 내리는 풍경도, 살에 닿는 차가운 비의 감촉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때가 온다는 것은.


끝 이후에 대해 알지 못해서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지 막상 끝난 이후에는 이런 거였구나, 별거 없네라고 여전히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입고 있는 육신과는 안녕이니 조금은 슬플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초록이 무성하게 뻗어나가는 여름도 있고,
그러다 그렇게 춥고도 아름다워 다른 세계 같은 계절이 돌아오고,
붉은 동백꽃과 노란 낙엽을 바라볼 수도 있다.

<스위트 히어애프터>76p


지금 보는 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뿌옇게 안개 낀 것처럼 비 내리는 날조차도.

빗방울로 반짝이는 것들 속에서 지금 나는 아무 소리 없이 편안하다. 수풀의 숨과 내 숨이 섞이고 폐에는 상쾌한 공기가 가득 찬다. 이런 것이 살아 있음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물방울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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