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괴로움에 휩싸여 사는 사람은
아이의 세계
소리가 여섯 살 때였다.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활동적인 소리는 그네를 꽤 높이까지 타는 편이라 소리가 그네 탈 때마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는 했다. 바람은 적당히 불고 해는 뜨겁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갈 시간이라 놀이터는 소리보다 어린아이들 한 두 명 있을 뿐 한산했다. 소리는 어느 때처럼 몸의 힘을 모아 있는 힘껏 그네를 탔다.
그네가 공중으로 붕 떠올랐을 때 서 너살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그네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갔다. 그 남자아이 제외한 남자아이의 엄마, 나, 그네를 타고 있던 소리 모두 놀랐다. 잘못하면 소리가 탄 그네와 남자아이가 부딪칠 상황이었다. 소리는 그네가 공중으로 붕 뜬 상태에서 뛰어내렸다. 소리 입장에서는 자신이 그네로 남자아이를 치지 않을 방법은 그네에서 뛰어내리는 거라고 순간적으로 판단했던 듯싶다.
나는 놀라서 소리에게 뛰어갔다. 소리는 바닥에 주저앉은 자세로 그 아이가 다쳤냐고 물으며 소리 내 울었다. 자신이 뛰어내린 것보다 남자아이가 다쳤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크게 느껴졌다. 남자아이가 다치지 않았다고 말하자 그 순간의 놀람이 생각났는지 안도의 울음이 큰 소리로 터져 나왔다. 소리를 바닥에서 일으켜 세우는데 떨어진 충격인지 다리를 절뚝였다. 가벼운 찰과상도 입었다. 남자아이는 여전히 아장아장 놀이터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다치지 않고 걸어 다니는 남자아이를 본 소리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자신은 절뚝이며 걸으면서도.
나는 그때 이게 소리구나, 생각했다. 떼도 잘 부리고 미운 말도 곧잘 하지만, 말 좀 들어라 라는 얘기도 수시로 하게 되지만 그것은 성장 과정에서 오는 필연적인 갈등일 뿐이고 다른 아이가 다칠까 봐 자신이 타고 있는 그네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것이 소리였다.
지금 여덟 살 인 소리는 어제, 오늘 이틀을 울었다. 어제는 놀이터에서 놀던 친구들이 일찍 집으로 가서 울고, 오늘은 놀이터에서 노는 친구들이 없다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사람을 좋아하는 소리는 사람을 쫓아다닌다. 하교 후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한다.
친구들은 노는 때도 있고 가는 때도 있다. 친구들이 가는 때 소리는 속상하다.
친구들이 없다고 쨍한 해 아래서 눈물을 뚝뚝 떨구는 소리를 보니, 둘째를 안고서 쨍한 해 밑에 서 있는 내 마음속에서는 소리에 대한 불평이 날카롭게 솟아올랐다.
친구들을 쫓아다니기보다 글자 하나를 알면 더 좋을 텐데.
더하기, 빼기 문제를 푸는 게 도움이 더 될 텐데.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으려면 네가 공부를 잘하고 뛰어나면 돼. 그러면 친구들이 너를 쫓아올 거야,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나를 보면서 내가 상당히 찌그러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월>에서 아니 에르노는 인생을 반추하면서 “우리는 확실한 직업과 돈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이 우선 그런 행복을 갖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이야기한다.
<코끼리를 쏘다>에서 조지 오웰은 “아이가 자기 결점을 믿어버리면 그 믿음은 웬만한 사실에도 끄덕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나는 소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소리가 못하는 것을, 못한다고 여겨지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완벽하면, 결점이 없으면 분명한 행복이 올 거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으로(그렇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음에도)
아마도 내가 스스로에게 결점이라고 느끼는 부분을 이미 행복한 소리에게 전가하여 나와는 다른 아이의 미래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직업과 돈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아이가 확실한 직업과 돈을 가지기를, 이 세상에서 번듯한 한 자리를 차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은 누구에게든지 ‘지금’ 일 텐데. 아이에게도 지금은, ‘지금’ 일 텐데. 내가 지금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아이도 '지금' 행복하기를 원할 텐데. 내 시간은 현재에 있고 아이의 시간은 미래에 있는 것처럼 생각돼서 사소한 것들로(사탕 하나에도) 충분히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아이를,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닦달하려 한다. 소리는 자신이 타고 있는 그네에서 뛰어내릴 정도로 타인에 대한 마음이 깊고, 친구들이 없으면 눈물을 흘리는 세계에 푹 잠겨 산다. 그 세계에서 벗어나서 이상한 괴로움에 휩싸여 사는 사람은 나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분명하게.
아이는 일종의 이중적인 수중 세계에 살고 있고,
우리는 기억이나 점술을 통해서만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단서는 우리도 한 때는 어린아이였다는 사실뿐이다.
<코끼리를 쏘다>93p
소리는 저녁 먹고 놀이터를 나가 밤 9시까지 뛰어놀았다. 얼굴은 벌겋고 머리와 옷은 땀에 젖어 축축했다. 그렇게 놀고 와서 하는 말이 또 심심해, 이다. 네 재능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놀기구나, 좋아하는 게 재능이라지. 그 말을 ‘지금’ 너도 살고 나도 살자. 지금 좋아하는 것들로 즐거워하면 충분하지. 미래가 어떻든 즐겁게 다가오겠지, 미래도 그 순간은 ‘지금’ 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