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기, 빼기를 잘해야 하는 이유

by 북남북녀

음악으로도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있다. 이런 게 신경에 거슬린다는 거군, 하며 듣고 있다. 칙칙칙칙 작은 기차소리, 개굴개굴 개구리울음 같은 이 소리. 공사한 화장실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소리.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를 들으며 된장국을 팔팔 끓이고 아이와 그림책을 읽고 간간이 내 책도 읽는다. 칙칙칙칙, 칙칙칙칙. 새벽도, 낮도, 밤도. 신경이 가느다래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할 일을 한다. 솔직히(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이런 게 많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신경을 가느다랗게 만든다. 심한 날에는 스트레스를 왕창 받아서 신경이 끊어질 거 같다. 물론 끊어지지 않고 끊어질 거 같은 느낌 때문에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 정신줄도 놓으면 그만이지만 놓기 전까지가 사람을 벌벌벌 떨게 하는 것처럼. 멈춰, 멈춰 누군가에라도 소리치고 싶지만 공격을 시작한 그것은 멈추지 않는다. 끝을 보려는 듯이. 잔뜩 긴장하게 하거나 불안하게 해놓고 끝을 보기전에 멈추는 것, 그게 고문이지 생각한다.


아이가 A4 용지를 내민다. 2+1,3+1,8+1 더하기 문제가 쪼로록 한 면을 채우고 있다. 엄마, 다 틀렸어 말하며 헤헤 웃는다. 나도 이렇게 웃은 적이 있다. 시댁 어른이 이제 요리 좀 해야지 말해서 헤헤 웃었다. 그럼요, 배워야지요 말하면서. 요리를 배우고 싶어요, 음식을 잘하고 싶어요, 항상 생각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시간이 없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지만 책을 읽고 싶기 때문이고 딱 한 시간 정도를 아침 준비하는 시간으로 배분한다. 된장국에 계란 프라이 사과 두 조각, 주먹밥에 치즈에 사과 두 조각, 볶음밥에 사과 두 조각. 최단시간 음식을 후다닥 준비한다. 음식을 빨리하기 위하여 머리를 굴린다. 머릿속에는 ‘시간이 없다’는 말이 맴맴 돈다.


요리 좀 해야 하지 않겠니라는 말에 시간이 없다는 말이 퍼뜩 떠오르면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감이 오고 말았다. 시간에 쫓기는 이유가 책을 읽고 싶어서였구나 하고. 전업주부가 요리할 시간이 없다니 직무유기네, 라고 생각하면서.


아이에게 A4 용지를 보면서 엄마랑 이 문제 한 번씩 더 풀어봐야겠는데 말하니 엄마 시간이 없어, 나중에라고 말한다. 지금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아이는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뒤로 부쩍 더 그림을 그린다. 학교 다니기 전에는 가족들 위주의 웃음이 가득한 그림이었는데 요즘 그림은 내가 보면 팔로 가리는 그림도 있다. 무슨 그림이야 물으면 대답하지 않고 숨긴다. 아이 역시 내가 집안에서 듣는 칙칙칙 소리처럼 학교라는 곳의 불쾌한 소리를 듣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다. 사회의 한 부분은 개인을 불량품처럼 느끼게 만드는 요소가 있으니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시스템에 대해 말한다. 본래 시스템은 우리를 보호해야 마땅하지만 저 혼자 작동하여 우리를 죽이고,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살해하게 만든다고. 냉혹하고 효율적으로 체계적으로.


가정이라는 시스템 안, 학교라는 시스템 안, 직장이라는 시스템 안,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개인은 멸시당하는 입장에 처해질 때가 있다. 불량한 부속품처럼 느껴질 때가. 내 고유한 영혼은 존중받지 못한다. 시스템 안에서는.


이것 좀 해야 하지 않겠니, 저것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산다는 건 커다란 시스템에 맞춰야 하는 일이다. 필요한 일을 수행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가 있다. 내 영혼은 어디로 가 있는지 모른 채. 침대에 누우면 허망함 한 조각이 가슴에 박힌다. 열심히 살았는데 그 속에 나는 없다.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시간이 없다’는 소리가 머릿속을 맴맴 도는 이유는 내 영혼이 나를 위해 하는 소리일 수 있겠네, 다시 생각한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네가 좋아하는 일들을 수행하라는 소리. 시스템 안에 맞추려 자신을 빼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시스템 안에서 살기 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더하라는 소리일 수 있겠다고.


나는 다시 책을 든다. 칙칙칙칙 소리(신경이 가느다래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의 다 틀린 더하기 문제 A4 용지를 앞에 두고.

아이는 책상에 앉아서 그림을 그린다. 사락사락, 아이의 스케치북 넘기는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네 살짜리는 텔레비전을 틀었다. 텔레비전에서 신나는 체조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신경을 가느다랗게 만드는 소음 속에서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한다. 아이들은 나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즐긴다. 칙칙칙 소음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아이처럼 살아야겠네, 생각하며 책을 읽는다. 귓속을 파고드는 이 날카로운 소음을 어떻게 아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걸까 신기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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