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랑찰랑 보통머리

by 북남북녀

저 앞에서 소리가 걸어온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소리의 머리가 마구 구불거린다. 일명 반곱슬 머리. 학창 시절 친한 친구가 내 앞머리를 보며 눌린 머리네, 말했었다. 놀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보이는 사실 그대로를 얘기했을 뿐이다. 눌린 머리. 비가 오면 더 구불거리고 위로 방방 뜨면서 최고의 부스스함을 자랑하는 머리. 소리는 눌리는 곱슬은 아니고 파마 기구로 만 듯한 동글동글 말리는 머리이기는 하나(길을 가다 보면 아기 소리를 보고 한두 명쯤은 파마했어요, 묻고는 했다.) 나는 결심했다. 소리에게 볼륨 매직 파마를 시켜주기로.


파마를 한 번 시켜볼까 생각은 했었으나 파마약의 유해성과 아이는 아이 다운 게 좋다는 생각에서 실행한 적은 없었다. 더위로 인한 땀과 습도가 높은 날씨로 인해 구불거리는 아이의 머리를 보니 내 학창 시절이 떠오르면서 파마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굳혔다.

(빨간 머리 앤은 길버트가 빨간 머리를 홍당무라고 말해서 석판으로 내리친다. 길버트가 진심으로 사과하는데도 앤은 꽤 오랜 시간 길버트를 무시한다. 어린 시절에는 외모의 어떤 부분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벼르고 벼른 아이와의 미용실행.

“아이가 곱슬이 심하네요. 머리카락이 얇기도 하고요. 좋은 영양을 써야 하니 십만 원은 나오겠어요.”

십만 원이라는 가격에 놀랐으나 반곱슬의 비애와 아침마다 아이의 머리를 붙들고 드라이하는 수고를 덜 수 있으니 까짓 십만 원 하며 대범해졌다. 안으로 잘 말리게, 손질할 필요 없이 해주세요라는 말을 끝으로 소리의 파마는 시작됐다. 심심한 걸 못 견뎌하는 아이라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소요된다는 파마 시간을 걱정했는데 소리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조용하게 파마 시간을 견뎠다. 영양을 넣고 파마약을 바르고 매직기로 펴내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미용사가 어머니, 하며 나를 부르는 시간이 왔다. 구불구불했던 소리의 머리가 찰랑인다. 파마약과 열과 매직기의 힘이겠으나 소리의 머리에서 반질반질 윤이 난다. 소리는 이게 내 머리야 믿기지 않아 하는 표정을 띠면서도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다.


소리의 머리를 본 남편은 다르기는, 다르네 말했다. 십만 원이라는 가격에는 헉 소리가 나왔다. 볼륨매직 파마로 소리의 머리가 눈에 띄게 예쁜 스타일이 된 것은 아니다. 남편이나 내 생각은 보통 머리가 됐네, 이다. 특별하지 않은 단발머리, 윤이 나고 찰랑이는. 특별하지 않은 윤이 나고 찰랑이는 단발머리를 가지고 있는 모든 아이들이 파마 시술을 받은 것은 아니겠으나 소리는 파마를 한 후에 보통 단발머리를 가진 아이가 됐다.


두 시간 여정이 보람 있게 두 주 지난 지금도 소리의 머리는 찰랑인다. 아침마다 드라이하는 수고에서도 벗어났다. 소리가 엄마, 하고 부르면 소리의 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찰랑이는 머리를 보며 저 머리가 십만 원짜리구나, 보통으로 만드는데 십만 원 하고 생각한다.


보통으로 사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보통 옷, 보통 음식, 보통 신발, 보통 학습, 보통 머리.

보통이라 함은 남들과 비슷한 것을 의미하고 남들과 비슷하게 살려면 보통의 것을 사거나 만들어야 하는 소비가 필요하다.(흰머리를 가리기 위해서 나는 주기적으로 염색을 한다. 남들이 쳐다보지 않을 보통 머리를 만들기 위해 주기적으로 돈을 써야 한다.)


아이스크림이 이천 원, 헉(50원짜리 아이스크림도 먹은 기억이 있는데)

대파 한 단이 육천 원, 헉

계란 한 판이 만 원, 헉.

돼지고기 한 근이 이만 원, 헉.

파마 가격이 십만 원, 헉


계산은 못하는데 지출하는 돈은 점점 커지니 소심한 사람이 더 소심해진다. 소리의 예쁜 모습을 봐야 하는데 찰랑이는데 십만 원, 헉하고 있으니.


보통으로 사는데 헉, 하지 않기 위하여 책을 읽어야겠다. 언제나처럼 책은 만병통치약이니.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남편과 나는 과일을 안 사 먹었다.

“과일은 비싸. 과일 주스로 마시자.”

“오호, 좋은 생각이다. 어떻게 그렇게 좋은 생각을 했어.”

아이들이 태어나고 우리 집 냉장고에는 두세 가지 과일이 항상 구비되어 있다.

때마다 다른 과일을 먹는 호사를 누리며 살고 있다.



keyword
북남북녀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주부 프로필
팔로워 531
이전 11화더하기, 빼기를 잘해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