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피스 타로로 읽는 지금 _ wands 3. 의사소통과 자기표현의 기쁨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을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_ 화이트 '네모의 꿈' 중에서
여러 가수가 리메이크 한 예쁜 곡이다. 가사를 적어보면 우리가 하루를 보내는 곳이 다 네모난 곳이구나 새삼 느끼게 한다. 태어나 빠르면 두 살 어린이집부터 길면 대학원까지 긴 시간 교육이 펼쳐지는 공간에서 지낸다.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시간과 교육자의 의도, 교육받는 사람의 필요이다. 쌍방, 다수 사람들 사이에서의 정보가 오가는 것이기에 관계가 생기고 시간 외의 소통과 배움이 오간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 관계가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장소를 떠나면 많은 관계는 끊어진다.
혹시 교육이 소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마더피스 타로 공부하며 예상치 못한 단어의 연결에 놀란 적이 여러 번인데, 그중에 하나가 "교육은 가장 큰 소통이다"였다. 무슨 말인지 너무나 알겠는데 어린 시절 소통하는 교육이 이루어진 상황이 내게 몇 번이나 허락되었나. 매우 슬펐다.
학교 공부가 즐거운 시간은 딱 3년이었고 그 이후 구조와 주입식에 적당히 협력하며 우수 학생이었다가 고등학교 가서는 손을 놨다. 부모에게서 독립하려면 대학을 가야 한다는 절박감에 딱 1년 공부하고 대학은 갔다. 대학을 가서도 학교 공부는 그냥저냥 학점 때우기였고. 내가 원하는 영역을 책과 함께 탐구하고 가까운 선배 동기들과 토론하며, 몸으로 경험하는 것도 스무 살부터였다.. 고 교육 경험을 설명하였다. 나름 잘 지난 시간을 잘 정리하고 객관화한 교육 경험이라고 평소 생각했다.
마더피스 타로의 완즈 3을 만나고 다시 처음 배움의 순간을 떠올렸다. 거기에는 대자연이 있고, 땅 속 벌레들, 이름 모를 풀, 엄마, 아버지, 할머니, 언니들, 동네 아줌마, 할머니, 오일장의 상인들, 친구의 엄마 아빠, 집안 살림하는 나의 어린 친구들이 다 배움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할머니,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 먹고 씻고 자는 시간의 루틴을 알려주었고, 손바닥으로 놀이하는 손치기들, 옛이야기를 통해 온갖 정보와 역사, 야사를 알려주었다.(내가 자란 곳은 할머니의 고향임. 즉 아버지의 외가 동네) 할머니와 같이 천천히 걸어가며 동네의 곳곳을 보고 거기 일제 강점기부터 뭐가 있었는지 그림처럼 할머니의 이야기 따라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다.
벽에 황칠을 하고, 땅바닥에 뒹굴며 놀아도 기다렸다 씻어주던 할머니의 여유는 내가 뭘 해도 괜찮다는 신호였다. 부모님 앞에 서면 난 늘 내가 부족하고 늘 마이너스인데 할머니는 항상 내가 참 괜찮은 아이로 느끼게 했다. 어른들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바보 같은 질문에 나는 늘 할머니라고 답한 것은 아마도 일관된 할머니의 사랑과 수용이 더 양육자로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어머니가 제일 좋다는 딸의 말에 우리 엄니 표정이 완전히 썩은 것도 기억한다. 쏘리, 맘.
wands 3은 왠지 친숙하다. 벽화에는 학교 수업시간에 본 선사시대 동굴벽화가 있고 아이들과 양육자는 그리고 찍고 말하면서 배우고 있다. 교육이라는 한자가 教育 (가르칠 교, 기를 육)인데 나쁘지 않다.(교육이 나쁜 것이 아니라 지금 교육이 엉망진창이라 교육의 의미까지 답답해 보이는 것인지도)
한글로는 배움인데 아이를 배다와 스며들다의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생명을 주고 기르는 것과 습처럼 스며드는 것이다. 타인에게 돌봄과 가르침을 받는 교육보다 한층 더 나의 경험으로 익히는 것이 합쳐진 것이 배움이라고 해석한다.
완즈 3의 아이들은 신나게 손바닥으로 놀이를 하면서 입에서 동그란 말들을 재잘재잘 뱉어내고 있다. 양육자는 안전하게 놀이할 수 있게 불을 비쳐주며 안내를 할 뿐 일방적 가르침을 내리 꽂지 않는다.
이들의 놀이는 자연스러운 의사소통 속에서 정보를 취득하고 대상에 관한 느낌을 거침없이 자유롭게 표현하며 다시 아이들의 가슴으로 원형이 되어 들어간다. 실제 선사시대 동굴 벽화에는 사람들의 손바닥 자국이 많다. 기쁨과 즐거움의 원초적 표현, 박수를 치거나 어딘가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오래전 옛사람들 역시 그랬을지도. 안다는 개념과 의미 부여 없이 놀이 속에서 대화 속에서 저절로 알게 되는 배움의 과정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벽지에 그림을 그리면 혼내기 바쁜 엄마와 벽지에 그려도 아이고 잘한다 하던 할머니의 태도 중 좋은 배움의 안내자는 할머니였다고 생각한다.(엄마, 미안해. 그렇지만 포장을 못하겠어요.)
말과 그림, 몸으로 배우는 행위 속에서 서로 더 깊은 앎이 일어나고 그 기쁨을 거침없이 모두 표현할 수 있는 공동체 속에 있는 아이들이다. 너희들은 참 행복하겠구나, 이 카드를 만날 때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되어본다. 고향집 벽, 거기 온통 그림과 이야기를 채우고 싶던 어린아이가 상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와 대화하면서 그리고 있다. 지켜보던 동생도 크레파스를 들고 지가 좋아하는 뭔가를 뿌까뿌까 돼 내면서 그린다. 지켜보던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살을 붙여준다. 매우 흡족하고 기쁘다. 글을 쓰면서 벌써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 카드가 리딩에 나오면 당신은 양육자인가 아이인가를 물어본다.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는 카드이기에.
직장이나 일, 교육 등 사회적 관계 속에서는 배움을 주고받는 역할 이슈가, 실제 부모 자식 간의 양육 과정에서 자유롭게 소통이 필요할 수 있다. 한편 연인이나 친구 관계에서 의사소통을 더 자유롭게 하라는 조언이기도 하고, 서로가 배움의 길잡이임을 알려주기도 한다. 수평적 관계이기에 좋은 신호와 메시지로 해석한다. 3이란 숫자는 2라는 대극 혹은 내면의 자기 세계에서 구체적 사회적 관계로 나아감을 보여주는데 불 원소 카드인 완즈는 스스로 배우는 2에서 서로가 배우는 관계로 이어지는 과정을 표현한다.
불 원소는 근원적인 자기 에너지이자 활동의 본능 그 자체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관계가 만들어지고 소통이 이루어진다. 영향력을 주고받고 소통하며 문명이 더 커진다. 이것이 불의 에너지의 근간이다. 불이 마치 이성, 개념, 철학, 문명이라고 가부장의 시대에 왜곡이 되었지만, 원래 불은 생명력과 행동을 끌어내는 에너지 그 자체이며 에너지를 잘 써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소통과 관계를 안전하게 이뤄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소통과 교육, 공동체가 키워드로 있는 것이다.
불은 불타오르지만 유지도 잘해야 1년 365일 생을 유지할 수 있다.
관계의 시작점은 서로 배움이다.
2025년 8월 19일
더위가 조금 식은 날,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인생 오십 년에 역대급 힘든 여름이었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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