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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Feb 05. 2022


시에 미친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친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친구였다. 중학교 때까지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문예반이 되더니, 시에 깊숙이 빠졌다. 게임에 빠지듯 시에 중독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때 우리반에 58명의 학생들이 있었고, 그 친구의 석차는 57등이었다. 유도부가 58등이었고.


친구집에 자주 놀러갔다. 2학년 겨울 방학 때 친구 어머니가 내게 긴히 할 말이 있다 하셨다. 내가 가장 친한 친구니, 공부해서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아들을 설득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한겨울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앞에 놓고 나는 말했다. "네가 왜 너의 인생을 시에 바치려고 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그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일단 대학에 가야 한다. 네 시를 위해서"는 뻔한 논리를 전개했다. 오랜 침묵 후 친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 3때 친구는 열심히 공부했다. 전문대에 지원했지만 떨어졌고, 직업학교에 입학했다. 시를 더 잘 쓰기 위해 선택한 공부였는데, 친구는 쇠를 깎기 시작했다. 몇 년 뒤, 보쉬라는 회사에 들어가서 쇠를 깎고, 또 작지만 다른 회사의 중책을 맡아 쇠깍는 일을 전담했다. 2년 전에 회사를 만들어 혼자 쇠를 깎는다. 친구는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에 어쩌다 한 번 만난다. 지난 30년 동안 통화할 때마다, 만날 때마다 나는 말한다. "....다시 시를 써야지....." 친구는 30년 동안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그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제 저녁 장례식장에 갔다. 오랜만에 친구와 후배들도 보았다. 보고 싶었던 후배인 김언수 작가도 참으로 오랜만에 반갑게 만났다. 대치동에서 학원을 한다는 선배, 제주도 정착을 준비한다는 친구, 금융업계에서 잘 나가는 친구, 사법 고시만 바라보다 어두운 길로 들어선 친구...다양하게 살아가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장례식장에서의 이야기들은 재미있다. 대체로 죽음이라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니까, 삶의 본질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웃고 떠들어도 다 안다. 우리는 곧 다 죽는다는 걸. 삶이란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생각하며 자신만의 죽음을 오래 오래 준비하는 시간이다.


내 가장 친한 친구, 시에 미쳐, 공부도 대학도, 자신의 삶도 모두 포기한 친구, 모든 것을 시에 바치기로 맹세하고 진심으로 실천했던 친구. 내가 아는 어떤 누구보다 시를 사랑했던 친구.


말수도 적고, 자신의 감정을 남 이야기하듯 표현하는 친구. 화를 내거나 흥분하는 걸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언제나 깊이 사색하는 표정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친구.


첫째 아이가 중증 뇌변병이라 평생 힘겹게 돌봐야 하는 상황을 담담히 말하며, "그 애는 내 삶 최고의 선물이야!"라고 담담히 말하던 친구. 단 한번도 아이 때문에, 고된 삶이 힘겹다고 토로하지 않은 친구. 말하지 않아도 나는 그 친구가 왜 그렇게 힘겹게 쇠를 깎는지 안다.


시를 포기하고 쇠를 깎는 친구.


어깨가 구부정해지고, 글씨를 잘 읽지 못하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부스러기조차 남아 있지 않을때쯤이면 친구는 다시 시를 사랑하게 될까?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코로나 때문에, 이 정부 때문에 사는 것이 말이 아니라고 토로하는 대리 운전 기사의 목소리 너머로 문득 깨달았다.


친구는 언어가 아닌, 자신의 삶으로 시를 쓰고 있다는 걸.


줄곧 그래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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