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프고 나면 훌쩍 큰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 듯하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에 몸살을 심하게 앓고 나면 내가 훌쩍 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몸이 커지거나 똑똑해진 것이 아니라,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성숙된 그런 느낌이었다.
그건 앓는 과정에서는 내 몸이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낫고 나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괜찮아진 내 몸을 바라보며 느끼는 묘한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을 극적으로 느낀 것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고산병에 걸려 죽을 것 같은 상태로 새벽에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혼자 하산할 때다. 분명히 나의 몸과 마음이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의식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한 발 한 발 하산하며 고도를 낮추는 일이 전부였다.
인사불성으로 2시간을 아래로 걸어가니, 정신이 좀 돌아왔고, 다시 2시간을 더 아래로 걸어가니 살 것 같았다. 살아났다. 그때 깨달았다. 나의 몸과 정신을 존재케 하는 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이전보다 훌쩍 나아져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삶을 만들어가는 힘의 바탕은 의지와 노력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무수한 존재들의 힘이라는 걸 그때 확연히 깨달았다. 그런 힘을 신, 자연, 위대한 정령, 무의식, 천성, 선한 의지, 의미, 가치, 무엇으로 불리든 상관없겠다. 일단 무의식이라 하자.
내가 제어할 수 영역의 생각, 의지, 노력 덕분에 무의식 영역에서 에너지가 생기는 지, 무의식에서 먼저 에너지가 생겨 생각, 의지, 노력이 촉발되는지, 둘이서 지속적 상호작용을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때때로 우린 무의식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문제 해결의 영감을 얻고, 깊은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며 삶의 근원적 에너지를 때때로 무의식으로부터 얻는다.
아무리 치열하게 노력해도 번아웃만 될 뿐, 의미, 가치, 보람, 재미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와 뭘 해도 재미와 의미, 성취와 보람을 느끼며 일과 삶이 잘 풀리는 차이는 아픈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낫는 현상과 비슷한 것 같다.
오늘 새벽이 그런 날이다.
한 동안 몸과 마음이 아팠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은 탓이다. 퍼즐은 다 준비했으나 끼워맞추지를 못했다. 무엇을 어떻게 그릴 지 고민에 빠진 탓이다. 고민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에 어떤 유용성을 주는가?라는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없었던 탓이다. 새벽에 눈을 뜨니, 무의식이 내게 말을 해준다. 문제가 풀렸다. 잊어버리기 전에 메모를 했다. 기나긴 밑그림 스케치가 끝난 것 같다.
결과는 별 것 아니지만, 시작, 중간 끝 속에 담긴 의미들을 알아가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간과 끝이다. 일주일 내내 하루 8시간 극렬한 근육 운동만 한다고 해서 근육이 자라는 것이 아니다. 부하로 찢어진 근육의 조직이 서로 연결되며 자라게 놔두는 시간이 필요하다. 낮과 밤처럼. 밤의 힘이 낮을 살아가는 힘의 바탕일지 모른다.
잠만 자도 언젠가 삶의 문제가 풀릴 수 있다. 안나푸르나에서 하산하는 기분으로 살아야겠다. 산에서 내려오면 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 내려간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삶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존재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 중 대부분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미지의 존재들이지 싶다.
그러니 나와 세상을 믿고 훨씬 더 편히 삶을 대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