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 중에 1명은 그림 그리는 걸 꽤 좋아한다. 브런치의 프로필 사진도 아이가 그려준 것이다.
아이는 학교에서 그림을 그릴 때면,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에게 늘 듣는 말이 있다 한다.
'OO야, 미술 학원에 다녀? 어디 학원 다녀?'
그러면, 집에 와서 나에게 이렇게 묻고는 했다.
"아빠! 왜 내 그림만 보면 다들 그렇게 묻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학원에 안 다닌다고 하면 다들 놀래."
아이는 그 말과 반응들이 이상했을 것이다. 학원에 가본 적도 없어서 그곳에서 뭘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였으니까.
그래서 말해줬다.
"모든 사람들이 뭔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꼭 누군가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그래. 그래서 그런 걸 가르치는 분들은 대부분 학원 같은 곳에서 선생님으로 있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물어보는 거야. 신경 쓰지 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OO같은 나이에 혼자서 그 정도의 그림을 그릴 거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그러니까."
그리고 어느 날은, 학교에서 매 년 있는 미술대회에서 아이가 또 상을 타왔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학부모가 그 얘기를 들었는지 우리 아이에게 그림을 어디에서 배웠냐고 물어봤었단다. 그래서 배운 적이 없다고 했더니 믿지 않는 눈치였단다. 진짜로 믿기 어려웠는지 그 학부모는 나중에 놀이터에서 우리 부부와 마주쳤을 때도 재차 물어봤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 학부모의 아이는 동네에서 꽤 유명한 미술 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심사위원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우리 아이가 그 아이보다 높은 상을 타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듯 보였다.
뭐, 그런 평가들이야 심사위원들이 누구냐에 따라서 언제나 엇갈리는 것인데도...
난 미술 경연대회에서 2, 3위보다 못한 1등도 많이 봤었다. 이건 뭐, 미술 대회뿐만이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뽑는 그 어떤 대회 든 간에 다 비슷비슷할 것이다. 다들 그렇지 않은 가? 심사위원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순위가 달라지는 '시상식의 세계'.
아무튼, 우리가 다시 그렇게 말을 해주고 나서야 그 학부모는 수긍을 하는 듯이 보였다.
누군가에게서 배우기보다는 '혼자 그림을 그리는 시간들이 더 많았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우리 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면서부터, 어디를 가든 꼭 그림을 그렸다.
그러면, 지인, 친척, 어쩔 땐 전혀 모르는 사람들 까지도 아이의 그림을 보면서 꼭 하는 말이 있었다.
"아이고, 아이가 그림 그리는 걸 저렇게 좋아하면, 미대에 가야 하니 돈 많이 벌어야겠네. 미대는 돈 많이 든다는 데..."
나 : "......?"
하도 그런 얘기들을 들으니, 아이가 또 묻는다.
"아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데 왜 미대를 가야 하는 거야?"
난 또다시 말해줬다.
"전에 말했다시피 다들 똑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어서 그래. 어쩌면 사회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세뇌를 시켰을지도 모르지."
"......?"
"아빠가 전에 말했었지? 사람들은 뭔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꼭 누군가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그거랑 같아. 예전부터 사람들은 뭔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꼭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대학에 가서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그림 같은 미술계열들은 꼭 미술대학에 가서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렇게들 말하고 있는 거야. 마치 당연한 코스처럼 말이지."
"그럼, 나도 꼭 미대에 가야 해?"
"아니."
"왜?"
"아빠는 그림은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런데 처음부터 누군가에게서 배우고 그런 일들이 오랜 시간 동안 반복이 되다 보면, 그 그림은 창의성보다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평가하는, 아니면 똑같이 따라 하는 수준밖에는 안될 거라고 생각해. 누군가에게서 배운다면 네 그림은 아마 단 기간에 무척 잘 그리는 수준이 되겠지만, 마치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들을 저절로 그리게 될 거야. 하지만, 배우지 않는다면 조금씩 창의성이 곁들여지기 시작하고, 너만의 철학도 생기겠지. 처음부터 그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선입견이나 편견 같은 것들도 없을 거야. 바로 그 미묘한 차이들이 나중에는 네게 특별함을 심어줄 거야. 그 한 끗 차이가 너의 그림들을 특별하게 해 줄 거야.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으면, 네가 좋아하고, 네가 그리고 싶은 그림들을 그려야지, 남이 그려보라고 하는 그림들을 그려야 하겠어? 게다가 평가까지 받아가면서? 그럼, 그림을 그릴 때마다 자꾸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의식하게 될 거야. 그렇게 네 마음에 드는 그림이 아닌, 상대방의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게 될 거고, 점점 그렇게 남을 의식하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그건 너의 그림이 아니고, 상대방의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거나 마찬가지지. OO가 그림을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그건 아니잖아?"
"응. 아니야."
"그럼, 그리고 싶은 걸 마음껏 그리기만 해. 때로는 지치고, 힘들고, 지겨울 때도 있겠지만, 그런 시간들이 없다면 그 무엇도 이룰 수 없다는 것도 국룰이지. 그런 상황들이 올 때마다 누군가에게 배우면서 자꾸 해결을 하다 보면 OO는 절대로 특별해지지 못하고, 제자리만 계속 맴돌게 될 거야. 스스로 해결하는 연습들을 못할 테니까. 지금 당장은 뭘 하든지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나중에는 막힘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하게 될 거야. 그런 경험들이 차곡히 쌓일 테니까.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말고, 그리고 싶은 걸 마음껏 그리기만 해. 그러면 돼."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빨리 잘 그리고 싶은 것이 목적이라면,, 누군가에게서 배우는 것이 제일 빠르고 좋은 방법일 것이다. 입시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우리 아이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할 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입시나 취직을 위해서 그리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능을 위해서 문제 풀이 방법을 배우고 있는 학교는 다니지 않겠다고 스스로 거부했다.
그리고, 학원도 거부했다. 본인도 누군가에게 배우면서 그리기는 싫다면서.
그런 연유로, 1년을 남기고 곧 초등학교를 자퇴한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치른다.
그렇게, 아이는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그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런 결정을 한 아이를 위해서 우리는 부모로서의 할 일들을 할 뿐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을 뿐인데, 왜 미대를 가기 위해서 수년간 입시 준비를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 있나? 아니면, 다들 그 길로 가니까 그냥 따라가는 것뿐인가?
그 수많은 미대를 나온, 그 수많은 아이들은 지금 모두 다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혹시 아는 사람 있나?
미대 입시를 위해서 노력했었던 그 시간들만큼,
미대를 다니며 보냈던 그 시간들만큼,
그 학위를 위해서 들어간 가족들의 돈, 희생, 헌신, 노력들만큼,
다들 적절한 보상들은 받으면서 살고는 있나?
정작 후기들을 알고 싶어도, 그 많은 아이들이 졸업 후에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직 학원이나, 입시 관련 홍보들과 광고들만이 홍수 터지듯이 지겹도록 보일 뿐이다.
설마~,
다들 미술 선생님이나, 입시 학원 선생님들로 있는 건 아니겠지? (-,.-)
[ 사진출처 : pixabay ]
[ 6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