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적아빠 Jul 21. 2024

나와 내 자녀들은 무엇을 위한 삶을 살다가 갈 것인가

안녕, 처제들!!

또, 즐거운 일요일이 왔군.(-ㅅ-)ㅋ

비가 온다더니 날씨만 좋네. 모두들 아이들 데리고 물놀이나 하러 나가보자공~♡^^ㅋ


처제들. 오늘은 내가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처제들은 지금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는 거야?

내 자신? 아니면 아이들? 가족들? 그것도 아니면, 이 세상 사람들?


그리고 위에 있는 사진 속 아이들처럼, 우리의 아이들은 또 누구를 위해서, 또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살다가 가야만 하는 걸까?

처제들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살다가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난 다른 가족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가족사진들을 찍은 모습을 인터넷으로 찾아본 적이 있어.

하지만, 그 가족사진들은 그 가족들의 마지막 가족사진이었던 적이 꽤나 있었지.


전쟁 및 쿠데타, 내전으로 인해 가족을 잃거나, 태풍, 지진, 홍수로 인해 또 누군가를 잃거나, 자살이나 타살, 아니면 병이나 사고로 누군가를 또 그렇게 잃고서 두 번 다시는 모두가 모여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던 경우들이 있었어.


맞아. 우리들은 언제나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야.

모든 세상사람들이 나와 내 가족들이 다 함께 나이가 들어서 자연적으로 자연사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아주 먼 옛날부터 누군가가 그랬었지.

죽음을 늘 염두에 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결코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정말로 맞는 말이야.

주위를 둘러보아도 죽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단 하루라도 그냥 허투루 보내는 사람들이 없지.

항상 남들에 비해서 무언가를 늘 더 하고는 했었어. 마치 오늘 밖에 없는 듯이 말이야.


지금 내 곁에서 내 가족들이 아무런 탈도 없이 함께 있어주고는 있지만 앞으로의 일들은 아무도 모르지.

지금 이 시간에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서 매일같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럼, 이런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서 나와 내 가족들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어떠한 삶들을 살다가 가야만 하는 걸까?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고 생각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


먼저 나를 위해서 살아가고.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타인을 위해서.


제일 먼저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첫 번째, 그렇게 살아가면서 가족들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두번째겠지.

나의 보호자이자 동반자인 가족들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생기지도 않을 불행을 미리 끌어당기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주위를 둘러보아도 이런 사람들 꽤나 많지.


그렇게 살아가면서 또 다른 여유로운 마음들이 생긴다면, 타인을 위해서라도 조금씩 행동하는 것이 세번째겠지. 그래야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테니까. 

그렇게 다른 이들도 행복해져야 나 역시도 그들을 보면서 함께 행복해질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지금도 이렇게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내가 보기에는 아주 극소수야. 아주 환장할 노릇이지.


제일 먼저 나를 위한 삶을 살았더라면, 그렇게 계속해서 경쟁의 연속인 삶들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을 거야. 그런 삶들은 전혀 자신을 위한 삶들이 아니니까. 아마도 누군가를 위한, 아니면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들일뿐이겠지.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데 그렇게까지 욕심들을 부릴 필요가 있을까?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더라면, 과연 그렇게 수십 년 동안이나 경쟁을 하느라 그 수많은 시간들을 돈을 좇느라 허비할 수 있었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을 지경이야. 그러다가 어느 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경쟁에서 더 우위를 점하지 못해서, 더 벌지 못해서 땅을 치면서 후회를 할 건지, 정말로 다른 후회들은 없는지 묻고 싶어.


두 번째로 가족들을 위한 삶을 살았더라면, 그렇게 남들을 먼저 생각하고 챙겨주면서 살아가지는 않았을 거야. 요즘도 가족들 보다는 남들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들을 더 신경 쓰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자신에 대한 주위의 평판이나 기대들을 의식하면서 말이야.


가족들에게는 하지도 않는 말투와 행동들을 친구들에게, 때로는 선배들에게, 후배들에게, 애인에게, 썸 타는 사람에게, 직장동료들에게, 상사들에게 까지 하고, 하물며 거래처에게 까지, 요즘에는 SNS에서 까지도 자신들의 이미지들을 만들어가고 있지. 


가족들보다 그들에게 더 잘 보여야 하고, 더 잘 대해줘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가 있을까?

 

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들이 내 곁에서 함께 있어주기라도 할까?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나의 고통과 아픔 등을 함께 나눠 짊어지기라도 할까? 

처제들은 가족들 말고, 처제들이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존재해? 

생각만 말고 진심으로 몇 날 며칠 동안을 쭈~욱 곁에 있어주고 계속 챙겨주면서 말이야.


그리고 세 번째로 타인을 위한 삶을 더 살았더라면, 이 사회는 예전보다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아름답고 발전된 사회가 되었을 거야. 하지만, 지금도 오히려 더 삭막한 분위기들이 연출되고 있는 중이지. 원래는 당연해야 했던 그 아름답고 훈훈한 모습들이 이제는 뉴스에 회자가 될 정도야. 그리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런 삶들을 그리워하면서 살아가지.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변한 걸까?



그럼, 이쯤에서 다시 한번 물어볼게.

나와 처제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삶을 살다가 가야만 하는 걸까?


많은 이들이 그 해답을 찾기를 원해. 그리고 누군가가 진정 가르쳐주기를 원하지.

하지만, 이미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어.

다만 용기가 없을 뿐이고,
확신이 없을 뿐이고,
자신이 없을 뿐이야.


그래서 오늘도 그렇게 그저 사회적 분위기를, 그렇게 또 다른 누군가를 따라갈 뿐이지.


하지만, 처제들.

아이를 낳아서 키우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심도 깊이 한 번 생각해 봐야 해.

'나와 아이들은 이제부터 누구를, 무엇을 위해서 살아갈 것인가를.'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결론은, 이제부터 처제와 처제 아이들의 '인생의 목표이자 가치관'이 될 거야.

그래서 긴 시간 동안 아주 천천히 생각해 볼 시간들을 가질 필요가 있어. 그 무엇에도 휘둘리지 말고, 그 어떤 것에도 현혹되지 말고, 유혹을 당하거나 자신 없어하지도 말고.


중요한 건 먼 훗날 그런 수많은 시간들이 흘렀을 때, 내가 지금 선택한 것을 절대로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오랫동안 신중히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야 하니까.


짧은 순간에 결정지은 것들은 이미 남들도 다 결정지었던 것들이야. 

그리고 그건 내가 아닌, 이미 다른 사람들의 영향력에 의해서 결정된 사항들이지. 나만의 의지와 선택이 아니라는 얘기야.


처제는, 처제가 선택한, 처제만의 결정이 필요해. 

처제의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이건 오직 처제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 사진: Unsplash의 Some Tale ]

[ 20화에서 계속 이어짐...^^ ]

이전 18화 내가 이미 다 가졌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