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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사라져 버린 내가 궁금했을 너에게

by 물고기

안녕, 나야. 너무 오랜만이지. 그동안 잘 지냈어?

나는 잘 지내고 있진 않아. 좀 오랫동안 아팠고, 지금도 아파. 그게 내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이유야. 널 만나러 갈 수도 다른 곳을 돌아다닐 수도 없었어. 공연은 3년 전이 마지막이었어. 기타 하나 매고 여기저기 누비던 나를 기억한다면 지금은 기타를 들고 다니는 것이 상상도 안 간다는 게 놀라울 수도 있겠다. 근데 정말이야. 나는 그런 에너지가 다 사라졌고, 얼마 전엔 거실에 있던 기타도 케이스에 넣어버렸어. 노래? 하고 싶지. 그런데 지금은 할 수가 없어. 기타를 치면 통증이 악화돼서 큰 결심하고 케이스에 넣어 눈앞에서 치워 버렸어.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어. 3년을 넘고 이제 4년이 다 되어 가. 내 인생에서 이렇게 긴 시간이 뮤트 상태로 있을 수 있다는 걸 상상이나 해본 적이 있어? 나는 없어. 내가 이렇게 긴 시간 멈춰있을 거라곤, 일상적으로 하던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해본 적이 없어.


그렇다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거나 죽을병에 걸린 건 아냐. 내 몸에 큰 이상이 있는 것도 아냐.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진 않아도 돼. 병원에선 항상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예전처럼 움직이고 외출하고 생활하는 것들이 힘들어. 예전처럼 지낼 수 없는데 이게 왜 큰 이상이 없는 걸까? 때로는 수치가 어떤 것도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어.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내 상태를 설명하기가 어려웠어. 으레 하는 말로 ‘잘 지내?’라고 묻는데 난 잘 지내고 있지 않았으니까. 난 거짓말을 잘 못하고, 잘 지내지 못한다고 하면 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는 건지 막막했어.


글을 쓰는 걸로 조금 설명이 될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어. 알잖아, 나는 언제고 어떤 상황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야 만다는 걸. 내가 작가가 되고 싶어 했던 거 기억 나? 글을 쓰고 싶긴 했지만 첫 이야기가 나 아프다고 하는 이야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하지만 인생에서 우리가 명확히 알 수 있는 건 거의 없으니까.

아, 나 드디어 학교를 그만뒀어. 축하해 줄 거지? 아파서 그만둔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넌 알잖아.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교사를 그만두고 싶어 했다는 걸. 그걸 벗어나기 위해 오랜 시간 갖은 노력을 했다는 걸. 난 정말 후련해. 절대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일을 결국엔 해내서 내가 자랑스러워.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내가 아파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만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그만둔 건 더 이상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내가 아프다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이 퇴직은 내게 축제라는 걸 너만은 알아줬으면 좋겠어.


할 수 있는 게 많이 줄었지. 기타도 못 치고, 여행도 못 다니고, 장거리 이동도 어렵고 긴 외출도 못해. 지금으로선 할 수 없는 걸 생각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걸 떠올리는 게 더 수월해. 아침에 일어나 식물들을 둘러보는 것, 하루에 한 끼 요리하는 것, 책을 조금 읽는 것, 집 근처를 산책하는 것.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야. 많이 줄었지? 네가 기억하는 나는 일도 하고 공연도 하면서 기타 매고 여행도 다니고 매일 운동도 하는 활기찬 사람이었을 테니까. 온갖 곳을 누비며 종횡무진하던 그 사람은 지금은 없어.


그런 나를 영영 잊어달라고 이 편지를 쓰는 건 아니야. 그런 나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아서 쓰는 편지야.

난 단 하루도 나를 포기한 적이 없었어. 그 긴 시간 동안 내내 나는 나아지기 위해 노력했어. 좋은 치료사 선생님을 만났고, 조금씩 몸이 나아지고 있어. 아주 조금씩이지만 어쨌든 내가 앞으로만 가고 있다는 건 확실해. 이렇게 앞으로 가다 보면 예전의 나를 만나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그동안의 나를 오해하진 말아 줘. 널 만나러 가지 않았다고 서운해하지 말아 줘. 나는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그렇게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널 만나러 갈 거야. 이건 진심이야.

3년 동안 나를 직접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에서 꾸준히 열심히 살고 있었어. 버티고 견디면서 그 긴 시간을 살아냈어.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내 몸이 자유로워지면 우리 차 한 잔 할까? 카페에 앉아 이야기만 나눠도 나는 너무 기쁠 거야. 흘러가버린 시간을 더 이상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 거야. 자유로워진 몸으로 곧 어디선가 만나길 바라. 너무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나는 나를 믿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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