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
플레이리스트를 아무 생각 없이 계속 재생하니 시와 언니의 노래가 가장 많이 나왔다. 두리번거리다가 잘 다녀왔다고 말하고, 그러다 새 이름을 갖고 싶다고 노래했다.
갖고 싶어 새로운 이름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시작하는 듯 새로운 인생
새 이름을 갖고 싶어 - 시와
언니는 새 이름을 갖고 싶다고 했다. 새 이름만 있다면 다시 태어난 듯 새롭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말하자면 새 몸을 갖고 싶다. 새 몸을 갖고 팔짝 뛰어보고 싶다.
'사람 몸은 기계가 아니에요.
고쳐 써야죠.'
기계였으면 이미 버렸겠죠.라고 말했던 것 같다. 내 몸이 기계였다면 이미 버리고 새 걸로 하나 장만했겠지. 하지만 몸은 바꿀 수 없다. 내가 고쳐나가는 수밖에.
일주일에 두 번 몸을 고치러 간다. 필라테스를 하긴 하는데 어디선가 본 것처럼 기구 위를 날아다니거나 몸을 요리조리 움직이진 못한다. 나는 하루에 딱 한 동작을 한다. 그마저도 낑낑거리며 내가 내 몸 하나 못 가누며 후들후들거린다. 절반은 치료를 받고 나머지 절반의 시간엔 몸의 한계를 체험하는 것이 내가 하는 필라테스다.
앉는 법, 서는 법, 눕는 법까지 모두 새로 배우고 있다. 여섯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배우는 중인 것은 내가 아직도 제대로 앉거나 서거나 눕는 게 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내 몸은 뭐가 바른 자세인지 모르기 때문이라는데 그래도 노력하는 게 도움은 된다고 하니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용을 써본다.
올 4월에 다시 센터를 찾았을 땐 내 몸을 아예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이젠 골반을 세우는 것은 조금 터득했다. 골반을 세우면 몸이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다. 물론 골반을 세우는 것 또한 내 몸은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몸을 이렇게 저렇게 누르고 당기고 꺾으면 바른 자세의 내가 된다. 평소의 내 자세와는 팔다리가 달렸다는 것 말고는 같은 점이 없는 것 같다. 제가 혼자서 이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요? 이미 수십 번은 물은 것 같은데 매번 묻는다. 그리고 선생님은 몸이 나아져야 이 자세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지금은 못해요.라고 쿨하게 팩트를 날린다.
지금은 그 바른 자세라는 것이 매우 어색하다. 내 몸이 걔를 몰라서 그렇다고 한다. 대체 언제까지 계속 알려줘야 하지? 난 언제까지 몸을 고쳐야 하지?
H님은 저 얼마나 볼 것 같아요?
(골똘히 고민한 후) 3년?
마음을 비우고 3년을 부른다. 언제 괜찮아지냐고 물으면 그는 모른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요?라고 물으면 그건 다른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 몸은 나 한 명, 내 상황도 나 하나라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다.
올해 몇 살이죠? (벌써 3번은 더 물었다)
서른여섯이요.
그럼 마흔 전엔 나아지게 열심히 해 볼까요?
아니 보통 2-3년 걸렸다면서 마흔이면 4년이잖아요 엉엉이라고 마음속으로만 눈물을 찔끔 흘려본다. 지금의 나로선 빠르게 낫기보단 제대로 낫고 싶다. 빠르게 제대로 낫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런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재활은 보통 아팠던 시간만큼 걸린다고 가정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3년을 아팠는데 1년 만에 낫길 바랄 순 없는 것이다. 오래 아파 그 사이에도 안 좋은 증상들이 추가되고 체력은 떨어져 갔으니 3년은 그냥 3년이 아니다. 무너졌는데 그 위로 파편들이 우르르 쌓이고 또다시 무너지고 무너지길 반복하는 n차 붕괴의 현장이었다.
무너지고 또 무너졌던 몸을 이끌고 센터로 향한다. 가는 것이 힘들지만 일단 가면 조금이나마 나아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둥을 다시 세우고 세우는 일은 꾸준함만이 열쇠이기 때문이다.
인생이 너무 길어요.
아픈 몸으로 필라테스 동작을 하다 혼이 나가버린 내가 말한다.
근데 몸만 나아지면 인생이 살만해져요.
이 모든 과정을 모두 겪은 그가 말한다. 아플 땐 사는 게 고통이고 그런 거 다 아는데 몸만 안 아프면 사는 게 괜찮아진다고. 인생이 살만해진다고.
지금의 나는 매우 살만하지 않다. 이런 몸을 가지고 살만함을 느끼기엔 몸과 정신은 너무 하나다. 몸이 정신이고 정신이 몸이다. 둘은 떼놓을 수 없다.
내가 인생이 너무 길다고 말하는 것은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 지치고 힘들다는 말이다. 인생이 짧아져 이 고통도 짧게 겪고 싶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통증이 없으면 인생이 정말 살만하다고, 정말 살만해진다고 말한다. 인생이 살만해지는 느낌은 대체 뭘까?
그게 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런 게 있다고 하니 끝까지 가보고 싶다. 그의 나아진 환자 a, b, c 중 z라도 되어 눈앞이 깜깜한 미래의 누군가에게 희망의 예시가 되고 싶다. 내가 가장 위안을 받는 것은 나아진 내 앞사람들의 이야기 이기 때문에.
새로운 몸을 갖고 싶다. 그러니까 잘 기우고 꿰매고 고쳐서 만들어낼 나의 두 번째 몸. 새로운 몸만 있다면 다시 태어난 듯이 새로운 시간을 새롭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살만해진다는 그 인생도 한 번 살아보고 싶다.
망설여 보낸 시간 버리고 싶은 습관
혼자서 자꾸만 키워가는 걱정
새 이름만 있다면 다시 태어난 듯이
새로운 시간을 새로웁게 살 거야
새 이름을 갖고 싶어 - 시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