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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Aug 17. 2022

작가 수업 : 아침 글쓰기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 하라는 것이면 왠지 그대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도 멋진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작가 수업』(도러시아 브랜디)이라는 글쓰기의 고전 같은 책을 읽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무의식과 의식의 중간 사이에 있는 글을 쓰라는 내용을 읽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을 쓰라니. 아침엔 주로 꿈에 대해 곱씹어 보거나 잠 기운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잠을 이어나가려 하는 편이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라는 것이 다른 별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이제까지 많은 글쓰기 책을 읽고도 그랬듯 그 조언도 그냥 넘어갈 참이었다.


도러시아 브랜디의 다음 훈련 순서는 일정한 시간에 글쓰기였다. 그 훈련은 앞 장에 나온 매일 아침 일어나 무의식의 목소리를 글로 옮기는 것을 이미 충분히 한 후에 시행하는 것으로 가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일정한 시간에 글쓰기 훈련을 하기 위해 매일 아침 글쓰기를 먼저 해야 할 터였다. 이렇게 귀찮은 일이 있나. 하지만 나는 책장을 넘기다 굵은 글씨로 적힌 한 문장을 보고 그 모든 귀찮은 일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성공하지 못하면 글쓰기를 포기하라’


그녀는 일정한 시간에 글을 쓰는 훈련에 포기할 경우 글쓰기를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더불어 이렇게 덧붙였다.


‘이른 아침에 글을 쓰는 훈련과 아무 때고 글을 쓰는 훈련은 글을 자유자재로 거침없이 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당장 그다음 날 아침부터 아침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잠에서 깨면 아직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꿈결을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꿈 내용이 복잡한 편이기에 꿈이 끝나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린다. 꿈이 얼추 마무리되고 잠이 조금 남아 있어 추가 잠을 자면 딱 좋겠다고 생각되는 그때 나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난다. 누워서 휴대폰으로 글쓰기를 시도해봤으나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괴문자들만 남았다. 적어도 침대에서 일어나야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침대에서 채 열 걸음도 되지 않는 곳에 작은 테이블이 하나 있다. 나는 그곳에서 블루투스 키보드의 전원을 켜면서 아침 글쓰기 준비를 시작한다.


그다음은 아주 간단하다. 아이패드를 열어 메모 앱을 실행시키고 쓴다. 쓰면 된다. 꿈 얘기도 쓰고 어제 산 선글라스를 오늘 다시 조정하러 가야 하는데 왜 나는 안경을 맞출 때마다 매번 다시 조정하러 가야 하는지 내가 예민한 건지 뭐가 문젠 건지 모르겠다고 다 맘에 안 든다고 적는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가슴속에 작은 돌덩어리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적는다. 불안일까, 걱정일까, 기대일까, 그냥 돌덩어리인 걸까. 그게 뭔지 다 모르겠고 그냥 꿈 없는 잠 좀 자고 싶다고 쓰기도 한다. 요새 꿈을 너무 많이 꿔서 피곤하다. 꿈속에서 하도 가야 할 곳이 많아 아침에 잠에서 깨면 이제야 집에 돌아온 기분이다. 꿈 없는 잠이면 좋겠지만 그게 어려우면 평화로운 꿈이라도 꾸게 해 주세요,라고 빌었다가 그나마 평화로운 꿈을 꾸게 됐다고 적기도 한다. 아침 글쓰기는 그야말로 아무 말의 대잔치다.


대체 이런 글쓰기가 어떤 훈련이 된다는 지는 모르겠지만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 이 훈련이 중요하다고 했으니 그냥 적는 것이다. 무의식의 상태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글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무의식을 글 쓰는 팔에 붙잡아 매는 것이 작가가 되는 첫 단계’라고 한다.



난 그 첫 단계를 이제 겨우 일주일밖에 하지 않았다. 얼마 동안 하라는 말은 책을 아무리 여러 번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냥 자다가도 글을 쓰는 경지에 오를 때까지 하라는 소린 것 같은데 그런 의미면 나는 아직 먼 것 같다. 평생 아침에 일어나 키보드 앞에 앉을 것 같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글쓰기라고 한다면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놀라겠지. 사실 나도 놀라고 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새벽 여섯 시 반에 말도 안 되는 말을 타닥타닥 지껄이고 있는 내 모습은 나도 낯설다. 언젠가 이런 내 모습이 익숙해지고 ‘무의식의 비옥한 자양분이 주는 혜택’이라는 게 뭔지 내가 알게 되는 때가 오겠지.


작가 수업은 실로 작가가 되는 수업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 수업에 진지하게 참여해보기로 했다.



(작가 수업은 1934년에 쓰여진 책이다. 일어나자마자 글쓰기는 이후 나온 다른 책의 ‘모닝 페이지 비슷한 개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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