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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Oct 10. 2022

2학년, 냉장고 김치는 아이스 박스
김치가 아니었다.

강변에서 사는 것

-화장실에서 사람이 죽었다


  국민학교 2학년 서부이촌동 시민아파트는 11평짜리로 매우 열악했다. [1] 서울시에서 무허가 판잣집들을 헐고, 철거민을 우선 입주시켰던 아파트였는데, 이를 무주택 일반인에게 공매한 것이다. [2]


  우리 집은 한강철교 기찻길 옆 시민아파트 3층이었고, 화장실이 집 밖에 있었다. 화장실이라 쓰여진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호실 번호가 달린 화장실이 죽 붙어 있었다. 각 화장실은 계단 하나를 딛고 들어가도록 조금 높게 설계돼 있었다.


  볼일 보고 줄을 당기면, 낙차를 위해 머리 위에 설치된 물통에서, 물이 아래로 나왔다. 바로 물이 채워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와 얼굴로 물방울이 튀었다.


  겨울.  화장실 공동 창문엔 고드름이 열렸고, 바닥은 얼음이 얼어 미끄러웠다. 바지를 내리고 쭈그려 앉으면, 엉덩이에 차가운 바람이 닿았다. 김도 꾸물꾸물 올라왔다.


  아파트 다른 동에서, 어떤 노인이 추운 날 화장실에서 돌아가셨다. 차가운 공기에 혈관은 좁아지고, 힘을 주면 혈압이 올라가니 위험했다. 그러니, 힘을 줄 때는 숨을 내뿜어야 했다. 숨을 참고 힘을 주면, 혈압이 상승하니까.



-시영아파트로 업그레이드했다


   열악한 시민아파트에서, 바로 옆 16평짜리 시영아파트로 이사 갔다. [4] 시영아파트에는 화장실이 집 안에 있었다.


   이사 간 후 몇 번씩 옛 시민아파트로 향했다가 새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겨울엔 아궁이에 연탄을 땠고,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동치미 국물을 먹기도 했다. 병약한 엄마 때문에 세탁조와 탈수조가 분리된 2조식 하얀 세탁기도 들여놓았다.


  접지를 위해 전선을 수도꼭지에 묶어 놓았다. 엄마가 내게 세탁을 맡기면, 물이 채워진 후 하이타이 가루를 뿌렸다. 세탁기 바닥에는 동그란 청회색 원판이 좌로 돌다가 우로 돌다가 했다. 세탁이 끝나면 오른쪽 탈수조로 빨래를 옮겼다.


  빨래가 튀지 못하게 고무원판을 덮었다. 탈수 시간을 맞추고 탈수기를 돌리면, 좌우로 흔들리며 쿵쾅쿵쾅 충돌하는 소리가 자주 났다.


  소리가 나면 옷가지들을 꺼내서 몇 번 접어서 차곡차곡 넣었다. 운동화도 내가 비누칠한 솔로 문대고  헹궜다. 그 것도 탈수조에 넣고 돌렸다.  


  

-석유곤로


  우리 집 취사는 석유곤로(石油焜爐, 또는 석유풍로 石油風爐)를 사용했다. [5] 여기에 내가 가끔 불을 붙였다. 똬리를 튼 스텐 손잡이를 잡아 연소통을 올리면 검은 그을음이 붙은 심지가 보였다. 팔각형 통에 담긴 유엔(U.N)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연소통을 닫았다.


  연소통을 좌우로 스윽스윽 밀어 불붙은 심지를 안정화시켰다. 그래도 그을음이 나면 눈이 매워 눈물이 났다. 가끔 가위로 딱딱하고 검은 윗 심지를 잘라 주었다.


  곤로에 핸드 사이펀으로 등유를 넣는 것도 내가 했다. 이 건 재미있었다. 손잡이를 꼭 쥘 때마다 게이지 바늘은 좌우로 흔들리며 F를 향해 움직였다.


  흰색 석유통 바닥에 등유가 남으면 깔대기를 곤로에 꽂았다. 석유통을 들고 기울여 바닥에 남은 등유를 부었다.



-초겨울 강변


   시영아파트 발코니 남서향 창으로는 한강물과 건너편 노량진, 여의도가 보였다. 초겨울 강바람이지만 얼굴을 세게 후려쳤다. 차갑게 넘어가는 해와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뒷 발코니 바깥 누런 풀밭은 비스듬히 꽂힌 벽돌로 둘렸다. 그 앞 철조망 너머로 강변북로 차들이 찬바람을 일으키며 쌩쌩 달렸고, 엄마는 윗눈썹 아래가 쑥 들어간 눈으로 누워있었다.


  해가 떨어지면 강물은 더욱 어두운 색깔로 변했다. 바람 부는 날엔, 덜 닫힌 창문 틈에서 휘힝~하는 소리가 났다. 아직 치렁치렁하지만 뼈만 남은  버드나무 가지들은, 이파리를  떨군 채 해쓱해져 바람 따라 흔들렸다.


  강가는 슬펐고, 커도 이런 곳에서는 살지 않겠다고 속으로 말했다.


-아이스박스와 냉장고 속 김치


  시영아파트 옆라인에는 취학 전 어린 덕신이가 살았다. 우리 집에서는 그 집 아줌마를 덕신이 엄마로 불렀다. 덕신이 엄마는 우리 엄마에게서 조용기 목사 책 <나의 신조>를 빌려가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파트 앞 화단에 겨울 김장 항아리를 묻었고, 여름엔 하얀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넣어 김치를 보관했다.


   7월 제헌절 아침, 덕신 네 냉장고에 우리 김치를 보관해 달라는 심부름을 했다. 가족 나들이에서 돌아와, 김치를 받아오는 심부름을 또 했다. 아줌마는 조금 귀찮아하는 눈치였다.


  막 받아온 김치에 밥을 먹었다. 냉장고 김치 맛이 이런 거였어? 아이스박스 김치와는 달랐다. 열 때마다 삐걱 소리로 자극하는 아이스박스 속 김치가 아니었다. 김치 냄새가 배어 열 때마다 냄새를 풍기는 아이스박스 김치가 아니었다. 겉만 조금 차갑다 만 김치가 아니었다.


  냉장고 안에서

  속까지 시원해진 김치.

  시원한 냉기가 코끝에 닿았다.

  시원한 냉장고 김치가 입술과 혀에 닿았다.

 

  그날 밤 엄마 아빠 다리를 밟았다. 하나 둘 세면서 백번 이상씩 밟았다. 쭉 미끄러지기도 했다. 말하진 않았지만, 내겐 힘든 노동이었다. 밤 10시에는 약 심부름을 갔다 왔다.


  그날은 대체로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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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民(시민)어파트6채 270가구 일반에 公賣(공매)키로, 경향신문, 1969.8.19

[2] 無住宅者(무주택자)에공매,매일경제 1969.08.26

[3] 비싼 市營(시영)아파트, 조선일보, 1967.05.26

[4] 닥아 오는 아파트生活(생활), 매일경제, 1969.05.17

[5] 풍로(風爐), 한국민속대백과사전(한국의식주생활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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